[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지난 7월. 'LG 퓨리케어 웨어러블 공기청정기'가 올해 안에 출시될 것이란 소식에 많은 이들이 기대감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여파로 마스크가 일상 용품으로 자리 잡았지만 숨쉬기가 불편한데다 감염 위험성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공기청정기' 기술이 적용돼 들숨 때 공기 유입을 빠르게 도와줘 일반 마스크와 달리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들 역시 제품 출시 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이 제품은 엉뚱하게도 지난달 말 홍콩과 대만에서 먼저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라크와 두바이, 인도네시아에도 제품이 출시됐다. 한국 기업인 LG전자가 제품 첫 출시국을 우리나라로 택하지 않은 것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신제품이 국립전파연구원에서 전파 인증을 받게 되면 시중에서 판매를 할 수 있다. 'LG 퓨리케어 웨어러블 공기청정기' 역시 신제품이 공개되기 한 달 전에 국립전파연구원에서 전파 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이 제품은 지난 7월 LG전자가 연세세브란스병원 의료진에게 기부한 2천 개만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다. 바로 식약처의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LG전자는 이 제품이 '공산품'인 방역 마스크로 분류되면 향후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지난 9월 '의약외품'으로 판매 승인을 신청했다. 안전성·유효성 등을 제대로 검증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스크는 공산품과 의약외품으로 나눠지며 공산품으로 분류되면 별도 식약처의 허가 없이 판매할 수 있다.
이에 식약처는 일단 'LG 퓨리케어 웨어러블 공기청정기'를 '보건용 마스크'로 인정할 지를 두고 심사에 들어간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마스크의 경우 통상 55일 안에 허가를 내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 달여가 지난 아직도 심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식약처는 55일이 아닌 100일이 심사 기간으로, 상황에 따라 일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결국 대만, 홍콩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정부의 대응이 느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대목이다.
최근 가전시장에는 기존 백색가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장 트렌드와 환경 변화에 맞춰 의류관리기와 캡슐맥주제조기, 탈모치료기, 식물재배기, 신발관리기, 전자식 마스크 등 신가전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는 상태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시장의 흐름을 읽고 대응하기 급급한데 정작 정부 규제 때문에 시장에 내놓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4년 LG전자가 내놓은 '당뇨폰'이다. 이 제품은 세계 최초로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휴대폰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부가 제품의료법상 의료기기로 분류하면서 최종 출시가 좌절됐다. 결국 기업의 혁신이 정부의 규제에 꺾여버린 셈이다.
LG전자는 연내 이 제품의 국내 출시를 바라는 눈치지만 또 다시 '당뇨폰'의 악몽이 재현될까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해외 소비자들은 이미 제품을 구입해 '전자식 마스크'를 경험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정부의 지지부진한 움직임 탓에 신가전을 먼저 경험할 기회를 상실해 버렸다.
많은 국가들이 한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 테스트에 나서고 있을 만큼 한국은 좋은 테스트 베드로 각광 받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나라 기업들은 좋은 제품을 선보여도 규제나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혁신'을 외치는 기업들 사이에서 '혁신' 없이 움직이는 정부 때문에 소중한 기회를 잃고 피해를 입는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시장 흐름을 좀 더 민감하게 읽고 대응하며 규제 완화, 지원 등을 통해 기업의 혁신 성장을 이끌어주는 정부가 이제는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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