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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기업 망한다"…집단소송·징벌 배상제 두고 재계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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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경총, 정부에 건의서 제출…"기업 혁신 활동 저해, 전면 재검토해야"

 [사진=조성우 기자]
[사진=조성우 기자]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정부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키로 한데 대해 우리 법체계와의 정합성,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심층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재계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집단소송으로 제기될 경우 소 제기 사실만으로도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고, 주가폭락·신용경색·매출저하로 회복 불가능한 경영상 피해 입을 수 있다고 보고 충분한 논의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이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6일 법무부에 집단소송법 제정안 및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서를 전달했다.

집단소송법안은 피해자 50인 이상인 모든 손해배상 청구를 집단소송으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상법 개정안은 모든 상거래에서 상인의 위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의 5배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수 있는 규정을 이번에 신설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대륙법을 따르는 국내법 체계상 영미법 체계인 이 같은 제도는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또 미국은 집단소송 남소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들을 보완하고 있는 반면, 정부 제정안은 소송허가에 대한 불복 제한과 함께 남소를 유인하는 원고의 주장·입증책임 대폭 완화 등을 규정함으로써 미국보다 기업의 법적 리스크를 훨씬 더 키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륙법 체계와 영미법 체계는 각각 그 사회의 역사와 철학, 가치관 등이 축적된 결과"라며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현행 법제에 영미법 제도인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전면도입할 경우 예상되는 법체계간 충돌 등 제도 혼용의 문제점에 대한 입법영향평가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총 관계자는 "정부 제정안처럼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그대로 법률로 수용한 사례는 영미법계 국가에서도 드물다"며 "대륙법계 체계에 기반한 우리나라도 유럽이나 일본처럼 미국식이 아니라 공동소송, 제한적인 단체소송제 등 현행 제도들을 보완·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사진=대한상의]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사진=대한상의]

대한상의는 집단소송법안이 미국 집단소송제를 모델로 하면서 미국에는 없는 원고 측 입증책임 경감을 추가했다고 판단했다. 또 이는 민사소송의 입증책임 분배 원리에 맞지 않고 세계적 유례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입증책임 경감은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조물책임법 등과 같이 정보 비대칭성이 큰 특수사안에 도입되는 것으로, 민사상 모든 손해배상책임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소송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다.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에는 집단소송에 있어 원고의 입증책임을 경감하는 규정이 없으며, 미국 법원은 집단소송도 개별소송과 동일하게 원고가 입증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대한상의는 집단소송법안이 특허법상 자료제출명령제도를 차용해 일반 손해배상의 경우에도 기업 영업비밀을 예외없이 제출토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영업비밀은 기술유출 방지 등 각종 법률로 보호되는 기업의 핵심자산으로 민사소송법의 문서제출명령은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제출을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반면 특허법의 자료제출명령은 특허침해소송 등 특수사안에 한해 영업비밀 제출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일반 손해배상책임을 다투는 집단소송에 적용할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대한상의는 남소방지장치 삭제 등 소송요건 완화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했다. 집단소송법안은 현행 증권집단소송법의 '3년간 3건 이상 관여자 배제' 조항을 삭제했고, 소송허가 요건도 미국보다 완화된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인공감미료가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미검증 연구결과를 근거로 코카콜라에 대해 집단소송이 제기되는 등 기업들의 준법경영노력과 무관하게 집단소송 건수는 174건(2010년) → 217건(2015년) → 428건(2019년)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미국 사례를 참고해 적절한 남소방지대책을 선행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집단소송에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집단소송은 사법적 법률관계를 다투는 민사소송 절차로서 복잡한 쟁점이나 손해액 산정 등에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배심제도가 있는 미국도 민사재판에서는 배심제가 거의 활용되지 않아 사실상 소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국민참여재판법과 달리 규정하고 있는 문제도 지적했다. 국민참여재판법은 ▲중범죄 사건만 대상으로 하고 ▲공동피고 일부가 원하지 않으면 배제가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집단소송법안은 ▲모든 1심 사건에 적용하고 ▲피고측의 기피신청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 밖에 집단소송법안은 소급적용을 허용해 법 시행 이전에 생긴 사유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도 집단소송을 허용하고 있는데, 피고의 배상범위 등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헌법상 소급입법금지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경총 역시 집단소송법안이 집단적 피해의 효율적인 구제 도모를 입법취지로 하지만 기업들의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보고 재검토를 요구했다. 또 소송 전 증거조사, 자료 등 제출명령, 주장 및 입증책임 완화, 국민참여 재판(배심원) 등으로 인해 기업의 영업비밀 등 핵심 정보의 유출 가능성이 큰 데다 기업의 신기술, 신제품 및 서비스 개발은 물론 국가 차원의 신산업 촉진에도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총 관계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송대응력이 취약한 중소·벤처·영세 기업들은 막대한 소송비용 등 금전적 부담으로 인해 생존 위협을 더 크게 받고,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며 "법조 브로커, 직업적인 소송원고 등장, 변호사업계의 과당경쟁적 소송, 거액의 합의금을 노리는 외국의 집단소송 전문로펌까지 가세해 무리한 기획소송이 남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 [사진=한국경영자총협회]
손경식 경총 회장 [사진=한국경영자총협회]

또 재계는 징벌적 배상제를 전면 도입하는 상법개정안에 대해서도 법체계 정합성, 해외 사례 등을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건의했다.

전통적으로 대륙법계 국가는 민·형사책임을 구분하여 손해배상은 실제 손해액을 배상하고 형벌과 과징금 등의 행정벌을 따로 부과한다. 반면에 영미법계 국가는 실손해액을 넘는 징벌적 배상을 통해 사적배상 외에 공적처벌 기능도 수행한다.

이에 대한상의는 징벌적 배상제의 불법행위 억제효과 등의 측면만 강조해 대륙법 체계에 영미법 체계를 단순 접목하면 '모든 경제활동주체들에게 과잉처벌위험'을 유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징벌적 배상제를 개별법에 부분 도입하는 차원을 넘어 일반법인 상법에 전면 도입하는 것은 형사제재, 행정제재 등 사전규제에 대한 전반적인 조정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실제 손해를 초과하는 징벌적 배상은 '원고에 과다배상(windfall)'이 돼 남소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배상제가 함께 도입되면 기획소송, 연쇄 도산 등으로 확대가 우려된다.

정영석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기업의 책임경영을 제고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기업들도 공감하고 있다"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택가능한 다양한 대안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고,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경제주체들의 공감성·수용성 및 제도의 실효성이 충족될 수 있도록 입법영향평가를 비롯한 충분한 연구·논의가 선행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경총도 B2C(기업과 소비자간), B2B(기업과 기업간)로 거래된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서 악의적 의도를 가진 소비자나 업체가 소송 제기를 빌미로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소송이 남발되고 악용될 가능성이 현재처럼 특정 분야별 개별 법률에 의한 방식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보고 상법개정안에 반대했다.

또 경총은 이 일로 선진국보다 반기업정서가 훨씬 강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소 제기 대상이 확대되고, 소송 요건이 완화될수록 소송이 남발되면서 국내 기업의 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할 것으로 우려했다.

경총 관계자는 "오랜 기간 쌓아온 글로벌 경쟁력마저 일시에 훼손될 수 있어 기업은 방어적 경영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시장점유율이 높은 대기업 일수록 소송리스크가 훨씬 더 크고, 전국 사업체 약 410만 개 중 99.5%인 종업원 99인 이하 중소·영세 사업체일수록 상대적으로 법률리스크 대처에 매우 취약해 소송 가능성이 시장에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폐업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2개 법안을 동시에 입법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선 "어느 때보다 저성장·디지털 기술 진전에 맞춰 기업들이 전략적인 경영 활동에 집중해야 할 시점에서 오히려 도전적인 혁신기술과 신상품 및 서비스 개발을 주저하게 만들 것"이라며 "팬데믹 장기화로 인한 국내외 경제 및 기업 여건들을 고려해 2개 법안의 동시 입법 추진을 서두르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 각국의 집단적인 피해구제제도에 관한 입법례를 심도 있게 검증·연구하고 변화 추세를 봐야 한다"며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공감대를 형성한 이후 확대 도입 여부를 중장기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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