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반도체·배터리·바이오를 미래 먹거리로 삼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또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인텔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 사업 부문 인수를 통해서다.
과거 부친인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이 눈물을 머금고 접어야 했던 반도체사업의 육성 의지를 다시 한번 내비친 셈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SK하이닉스를 통해 인텔의 옵테인 사업부를 제외한 낸드 사업 부문 전체를 90억 달러(약 10조2천500억 원)에 인수했다. 낸드플래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낸드플래시는 휘발성 메모리인 D램과 달리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날아가지 않는 '비휘발성' 메모리의 일종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에 사진을 저장하고 음악과 동영상을 저장해두고 꺼내 보는 것은 모두 플래시메모리 덕분이다. 흔히 사용하는 USB나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등이 낸드플래시를 사용한 대표적 제품이다.
SK하이닉스와 인텔은 2021년 말까지 주요 국가의 규제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규제 승인을 받으면 SK하이닉스는 우선 70억 달러를 지급하고 인텔의 낸드 SSD 사업과 중국 다롄팹 자산을 SK하이닉스로 이전한다.
이후 인수 계약 완료가 예상되는 2025년 3월에 SK하이닉스는 20억 달러를 지급하고 인텔의 낸드플래시 웨이퍼 설계와 생산관련 IP, R&D 인력 및 다롄팹 운영 인력 등 잔여 자산을 인수한다. 인텔은 계약에 따라 최종 거래 종결 시점까지 다롄팹 메모리 생산 시설에서 낸드 웨이퍼를 생산하며 낸드플래시 웨이퍼 설계와 생산관련 IP를 보유한다.
이번 일로 인텔은 비주력인 메로리 반도체 사업을 정리하고 주력 사업인 시스템반도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중국 다롄에 인텔의 낸드플래시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9.5%로 업계 6위를 차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로 낸드플래시 업계에서 19.4%의 시장점유율로 단숨에 2위로 올라섰다. 기존에는 9.9% 점유율로 업계 5위였다.
또 SK하이닉스는 이번 일로 D램 편중 구조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올 상반기 말 기준 SK하이닉스의 매출 15조8천54억 원 중 D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8%에 해당하는 11조 원 규모였다. 낸드 매출은 3조7천568억 원으로 비중이 23.8%에 그쳤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인텔과 함께 고객, 협력사, 구성원 등을 위해 이번 계약이 원활히 완료될 수 있도록 협력할 계획"이라며 "양사는 최근 DDR5 협력과 같이 지속 성장 중인 메모리 기반의 반도체 생태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속 협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사업, 그룹 미래 먹거리로 '우뚝'
SK가 반도체 사업에 나선 것은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 때부터다. 최 선대회장은 지난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다가 2차 오일쇼크로 사업을 접었지만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지난 2011년 말 하이닉스를 인수하며 결실을 맺었다.
이는 SK가 사업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수출지향형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재계에선 평가하고 있다.
또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후 반도체 소재기업 등을 인수하며 반도체 수직계열화에 나섰다. 지난 2015년 11월에는 OCI 머티리얼즈를 인수해 SK머티리얼즈를 출범시켰고, 2017년 8월에는 반도체용 웨이퍼 제작 업체인 SK실트론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반도체 사업은 SK그룹 내 영업이익 80%를 담당하는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 세계 2위의 경쟁력을 갖고 있어도 삼성전자와 달리 낸드플래시와 시스템반도체가 매우 취약했다. 하이닉스는 지난 2012년 SK그룹에 인수된 뒤 낸드플래시 성능을 좌우하는 컨트롤러 전문 회사인 미국 LAMD를 2천억 원에 인수하는 등 투자를 해왔지만 초기엔 몇 년간 낸드에서 적자를 냈다.
이에 최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SK하이닉스를 통해 지난 2017년 9월에는 일본 도시바메모리에 총 4조 원을 투자, 지분 15%를 확보할 수 있는 권한까지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1위인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경쟁력을 따라 잡으려면 SK하이닉스의 자체 기술력으로 역부족이라는 것이 당시 시장의 평가였다"며 "도시바 반도체 사업 지분을 인수하면서 SK하이닉스의 뒤처진 낸드플래시 메모리 경쟁력도 한껏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최 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지난 2015년 대규모 투자 계획도 밝힌 바 있다. 최 회장은 당시 경기도 이천에 세계 최대∙최첨단 반도체 공장 'M14'를 본격 가동하는 행사에 참여해 "SK하이닉스를 통해 향후 10년간 총 46조 원을 투자할 것"이라며 "M14외에 국내에 두 개의 반도체 공장을 더 구축할 것"이라고 미래 비전을 밝혔다.
특히 총 15조 원이 투입된 'M14'는 이천 본사에 1997년 이후 18년만에 처음으로 구축된 300mm 전용 반도체 공장으로, 축구장 7.5개 면적에 해당하는 5만3천㎡ 규모로 조성됐다. 단일 건물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인 총 6만6천㎡의 2층 구조 클린룸에서는 최대 월 20만 장 규모의 300mm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다.
또 SK하이닉스는 새로운 공장을 경기도 이천과 충청북도 청주에 각각 구축키로 했다. 두 공장을 구축하는 데는 총 31조 원이 투입된다. 여기에 SK하이닉스는 120조 원을 투자해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산업집적단지)' 사업도 추진 중이다.
더불어 최 회장은 최근 반도체·배터리 등 미래 먹거리를 두 축으로 그룹의 전열도 재정비하고 있다. SKC는 반도체 소재사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SK텔레시스·SKC솔믹스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시켜 양사를 합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편입 이후에는 반도체 소재 계열사간 합병 등 구조재편이 예상된다. SKC솔믹스와 SK텔레시스간 합병, SKC솔믹스가 SKC의 반도체 사업부문을 양수 받는 형태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안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또 SK그룹은 최근 미국에 인공지능(AI) 회사 '가우스랩스'를 설립하고 AI를 활용한 반도체 제조 혁신에 나서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사업을 전개하며 파운더리(반도체 위탁생산)·반도체 소재 등으로 범위를 넓히며 힘을 싣고 있다"며 "이 같은 변화는 최 회장이 SK그룹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에 그룹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판단해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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