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서 촉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이달 11일부로 100일을 맞았다.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임에도 일본 불매운동은 우리 삶 속에서 일본 제품을 빠르게 지워나갔다. 이로 인해 일본 제품은 하루아침에 인기 제품에서 '안 사고, 안 입고, 안 먹는' 제품으로 낙인 찍혀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현재의 유통업계의 지도를 바꾸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맥주·화장품 '치명적 타격'…'사실상 퇴출' 수순
불매운동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제품은 맥주와 화장품이다. 13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 맥주의 수입액은 6천 달러(700만 원)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9.9% 감소한 수준이며, 수입 국가별 순위도 부동의 1위에서 28위까지 미끄러졌다.
'아사히'의 빈 자리는 국산 맥주들로 빠르게 채워졌다. 지난 7월 편의점에서 국산맥주의 점유율은 39% 수준이었지만, 8월에는 48.7%로 크게 늘었다. 다만 롯데주류는 롯데칠성음료가 일본 아사히그룹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불매운동의 표적이 돼 이 같은 흐름 속에서도 웃지 못했고, 결국 일본 관련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화장품 분야에서도 일본 제품의 추락은 이어졌다. 일본 본사의 자회사인 'DHC테레비'의 혐한 방송으로 불매운동의 '중심'에 섰던 DHC코리아의 제품은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다. 올리브영을 비롯한 주요 헬스앤뷰티(H&B) 스토어의 매대에서는 물론 온라인 스토어에서도 사실상 판매되지 않고 있다.
SK-II, 슈에무라, 시셰이도 등 일본 대표 화장품 브랜드들의 매출도 크게 하락했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지난 7~9월 기간 동안 이들 브랜드는 적게는 4분의 1, 많게는 절반 이상의 매출 하락을 기록했다. 이들의 빈자리 또한 국내 화장품 업체가 빠르게 채워나가고 있다.
업계는 맥주와 화장품 시장에서 일본 제품이 기존 위상을 회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예상하고 있다. 가격 대 성능비가 애매하고, 고품질 대체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품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맥주나 화장품은 국산 제품도 품질 경쟁력이 높고, 타국산 좋은 제품도 많다"라며 "불매운동이 진정되더라도 일본 맥주와 화장품이 위상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담배·패션, 추락 속 안도의 한숨…위상 회복은 어려워
최악의 상황에 빠진 패션·뷰티 브랜드들과 달리 패션·담배업계에서 일본산 브랜드들은 다소의 회복세 속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다만 차츰 고개를 들고 있는 '샤이재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긍정적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JTI코리아는 이번달 8.03%의 한국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불매운동 시작 전 궐련담배시장 점유율 9%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지난 8월 7.81%, 9월 7.94%에 비하면 어느 정도 회복됐다. 통상 담배가 충성도가 높은 만큼, 1%의 시장 점유율 변동도 큰 의미를 가지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분명한 회복세라고 볼 수 있다.
유니클로도 불매운동이 100일을 넘겨 다소 진정 국면에 들어선 시장 흐름을 타고 50% 할인행사 등 마케팅 활동을 재개함에 따라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가을·겨울 시즌을 맞아 '히트택' 등 유니클로가 높은 경쟁력을 보여 온 제품군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게 됨에 따라 조금씩 매출이 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규 매장도 열리고 있다. 유니클로는 지난 8월 롯데몰 수지점, 9월 엔터식스 안양역사점, 스타필드시티 부천점 등 3개 매장을 연이어 오픈했다. 다만 롯데마트 구리점, 이마트 월계점, AK플라자 구로점 등 3개 매장이 같은 기간 문을 닫아 전체 매장 수는 187개로 유지됐다.
또 ABC마트도 지난달 들어 인천논현뉴코아점, 일산웨스턴점을 새로 열었다. 이와 함께 한양대엔터식스점은 국내 최초의 창고형 할인매장으로 리뉴얼했다.
업계는 JTI코리아, 유니클로, ABC코리아는 나름의 확실한 경쟁력이 있는 브랜드들인 만큼 어느 정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것이라면서도, 과거 수준의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JTI코리아는 상품의 특성, 유니클로와 ABC코리아는 실속 면에서 강점이 있어 어느 정도 불매운동 파도를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불매운동이 생활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인 만큼 완전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불매운동 장기화 될 것…한-일 관계 회복은 서둘러야
전문가들은 이번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기존과는 다른 경로로 확산됐고, 어느 정도 '문화'로 정착되는 단계에 이르고 있으며, 국산품의 품질도 충분히 개선된 만큼 과거처럼 한 순간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고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과거 불매운동이 기득권의 주도였다면, 지금은 SNS 등을 통한 자발적이고 적극적 참여를 통해 펼쳐지고 있다"라며 "이는 결국 의식 변화를 이끌고 구조적으로 장기화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고연령층에게 일본은 벤치마킹의 대상이었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그 정도의 영향력이 없다"라며 "국산 제품의 품질도 상향평준화돼 일본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 것도 불매운동 장기화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불매운동의 열기와는 별개로 한-일 갈등은 최대한 빠르게 봉합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국산화, 우회적 원료 확보, 국제여론 등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가 현재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한일 양국이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인 현실과, 분쟁 장기화로 인한 비효율을 고려한다면 하루빨리 양국 관계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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