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던 계절은 늦봄이었다. '월급 받으면 삼겹살 사 먹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들떠 있는데 월급이 나오질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야 월급의 반절이, 그 다음 월급날에 남은 월급만이 들어왔다. 그렇게 서너 달을 버텼을까, 회사 구성원들이 빠져나가는 썰물을 타고 나도 회사와 이별했다. 급여가 밀린 이유는 흔하게도 오너리스크와 경영 악화였다.
여름 내내 월급을 두고 싸우다가 나와보니 가을이었고 겨울은 금방이었다. 다시 직장인이 되기까지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실업자와 취준생의 사이에서 처음에는 엄마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지,를 고민하다가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할까,하는 생활형 질문까지 가 닿았을 쯤이었다. 그 해 겨울은 무척 추웠고 풍경을 되짚으면 흑백으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해 현대라이프생명 노동조합을 취재할 때도 계절로 시간을 알았다. 현대라이프 사옥은 여의도역에서 금융감독원이며 국회로 출근하는 길목에 있었다. 그 길을 오갈 때마다 노조의 농성 컨테이너 박스와 사무실을 불쑥불쑥 찾아갔다. 안부를 건네고 얻어먹었던 냉수가 녹차 티백으로 바뀌고 나서도 컨테이너는 헐리지 않았다.
당시 현대라이프와 임직원, 보험설계사 간의 다툼은 불안정한 경영 환경에서 출발했다. 취재를 시작한 계기도 낮은 지급여력(RBC)비율 탓이었다. 보험사의 RBC는 곧 재무건전성의 척도다. 현대라이프의 RBC는 금융당국의 권고기준인 150%에서 엎치락뒤치락 중이었고, 현대라이프는 경영 정상화를 이유로 임직원의 3분의 1, 전속설계사의 4분의 3을 내보내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노조는 회사에 경영 책임을 물었고 회사가 그에 답을 하는 데에는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대형보험사인 대만 푸본생명의 품에 안겨 경영 정상화를 꾀하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이미 회사를 떠나거나 떠나보내진 사람들에게 충분한 답이 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 겨울은 지났지만 올겨울에도 노조의 길거리 투쟁 현장에 나갔다. MG손해보험과 새마을금고중앙회 간의 책임 공방 때문이었다. MG손보 노조는 올해 상반기 MG손보의 RBC가 82.39%까지 떨어지자 새마을금고의 직접 투자나 우량 지주로의 매각을 촉구했다.
MG손보는 2013년 그린손보 당시 사모펀드인 자베즈파트너스가 설립한 자베즈2호 유한회사(94%)에 인수됐다. 나머지 6%도 새마을금고 분이다. 새마을금고는 MG손보를 매수하는 대신 자베즈2호 유한회사의 지분을 93.93% 사들이면서 MG손보의 실질적 대주주가 됐다. 사실상의 주인인 새마을금고는 MG손보의 '재무적투자자'라는 해명으로 뒷짐을 진 상태다.
작별했던 그 회사는 나를 처음으로 '기자'라고 부른 곳이었다. 인턴이며 수습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는 말은 곧 내가 이제 기자 지망생이 아니라 기자이며,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라는 뜻을 담는다. 내 이름과 그 곁의 기자라는 글자, 기자가 됐다는 안정감과 떨림, 뜨끈한 윤전기의 온도와 갱지 냄새를 모두 기억한다.
내가 치는 사고를 수습하는 데에만 근무 시간을 다 썼던 초년병이었지만 신문과 기자가 좋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자를 그만두지 않아야지, 하고 결심했지만 회사를 그만둘 만한 어떤 일은 생각 외의 지점에서 찾아왔다. 그래서 회사가 흔들리는 불안감이 노동자의 능력을 얼마나 끌어내리는 지를 어렴풋이 안다.
불안한 겨울에는 볕이 있어도 따뜻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임금 노동자들이 겨울의 볕을 온전하게 느끼는 날은 언제쯤일까. 가까운 날에 이뤄지기 어렵다면 노조의 표현이라도 자유로울 일이다. 올해와 내년 겨울에도 길가의 천막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싶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나야 천막을 찾지 않게 될지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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