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장만한 아파트가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 명의로 등록돼 있는 걸 발
견했다면 정말 황당할 것이다. 법무사와 부동산 중개소를 믿고 모든 걸 맡
겼는 데, 다른 사람 소유로 바뀌어 버렸다면?
물론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선 소유권 변경을 하려면 인감 도
장이 있어야 하고, 또 공증서도 필요하기 때문. 게다가 사람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쫓아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이런 일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이름하여 도메인 도난
사고. 명의 변경이 의외로 간단할 뿐 아니라 직접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슬쩍’ 하기가 그리 어렵지 만은 않다.
올 초 두루넷이 60억원 짜리 도메인을 해킹당한 적이 있었지만, 특히 외국
에선 도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섹스닷컴은 내 것” 치열한 분쟁
최근 미국에선 섹스닷컴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해 관심을 끌고 있
다. 현 소유자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은 스티븐 마이클 코헨. 이 사람은 섹
스닷컴 도메인을 이용해 활발한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재 섹스닷컴이 약 2억5천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의 비즈니스 맨인 개리 크레멘이 원 소유자는 자신이
라며 코헨을 제소하고 나섰다. 크레멘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크레멘이 섹스닷컴을 확보한 것은 지난 1994년. 그는 이 도메인을 가지고
뭔가 그럴 듯한 사업을 벌일 요량이었다. 그런데 1995년 10월 도메인 등
록기관인 네트워크 솔루션즈(NSI)가 느닷없이 소유권을 코헨에게 넘겨 버
린 것이다. NSI가 그렇게 한 건 코헨에게 소유권을 이양한다는 편지를 받
았기 때문.
물론 크레멘은 이 편지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급 도메인을 잘 간수하라”
다소 황당해 보이는 일이지만 이런 도난사고는 심심찮게 발생한다. 지난 5
월 캐나다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 업체인 웹닷넷과 발리 지역 여행 포털 사
이트인 발리닷컴의 도메인이 도난 된 적 있다.
지난 4월엔 후엠아이닷컴 도메인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도메인 소유권 분쟁이나 도난 사고는 주로 상품가치가 높은 도메인에
집중되고 있는 게 특징. 이번에 분쟁의 대상이 된 섹스닷컴이 2억5천만 달
러를 호가하는 초대형 도메인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발리닷컴과 웹
닷넷 역시 최소 10만 달러는 받을 수 있는 도메인으로 평가되었다.
루카스아츠닷컴, 비아그라닷컴, 슬로베니아닷컴, 크로아티아닷컴, 워싱턴
닷컴 등도 한 차례 이상씩 도난 홍역을 치른 적 있다.
의외로 허술한 도메인 관리 체계
이처럼 도메인 도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소유권 이동이 간단하기 때
문. 등기부 등본이나 인감 도장이 필요한 아파트 소유권 이전과 달리 도메
인은 때론 편지 한 장 만으로 소유권을 바꿀 수도 있다.
현재 도메인 이름을 관리하는 기관은 ICANN. ICANN의 데이터베이스에서
inews24.com과 같은 도메인 이름을 숫자로 된 IP 주소로 연결시켜 준
다.
ICANN엔 일반인의 접근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약 80여 개에 이르는 도
메인 등록기관들은 ICANN서버에 접근할 수 있다. 도메인 등록 정보 업데이
트를 위해서다. 물론 단순한 전화번호 변경 같은 수정이 대부분이지만.
이번 섹스닷컴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네트워크 솔루션즈 같은 도메인 등록
대행기관을 속일 경우 소유권 변경은 의외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
이번에 크레멘이 코헨과 함께 네트워크 솔루션즈도 제소한 것은 바로 이런
절차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지는 못했을 지라도 어쨌든 관리소홀의 책임
이 있다는 것이 크레멘 측의 주장이다.
도메인 관리 체계 다시 한번 점검해야
외신에 따르면 이번 주중 섹스닷컴 도메인 소유권의 향방에 대한 판결이 내
려질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물러설 태세를 보이지 않은 채 팽팽하게 맞
서 있는 만큼, 어떤 판결이 내려 지더라도 항소심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이번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결판이 날 것이다. 하지만 도메
인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섹스닷컴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
으로 보인다. 도메이너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김익현기자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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