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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기어VR로 가상 아닌 현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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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훈 삼성전자 C랩 릴루미노팀 크리에이티브 리더

[아이뉴스24 강민경기자] "시각장애인이 가장 즐겨하는 여가활동이 뭔지 아세요? TV 시청입니다."

조정훈 삼성전자 C랩 릴루미노팀 크리에이티브 리더(CL)는 지난 18일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릴루미노'를 소개하며 이 같이 말했다. 릴루미노는 시각장애인의 시력을 보조하는 가상현실(VR) 애플리케이션이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조정훈 CL은 '시각장애인은 앞을 전혀 못 본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조 CL은 인터넷 서핑 중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장애인 실태조사 통계를 접했다. 시각장애인이 TV를 자주 본다는 내용이었다.

조 CL은 "시각장애인 중에서도 무려 92.1%가 여가시간에 TV를 본다는 조사 결과를 발견하고 놀랐다"며 "알고 보니 시각장애인의 86%는 빛과 명암을 구분할 수 있는 저시력인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 CL은 이런 생각에 잠겼다. 시각장애인에게 TV 화면을 어렴풋이 볼 수 있을 만큼의 '잔존시력'이 있다면, 그들의 시야를 더 뚜렷하게 해주는 도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삼성전자의 프로토콜 분석 담당 직원이었던 조 CL이 '시각보조기기 개발'로 눈을 돌린 계기다. 이 때가 2016년 2월이다.

◆가격 부담없는 기어VR로 개발 착수

이후 조 CL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각보조기기 개발을 위해 시장조사에 매진했다. 알아보니 시중에 판매되는 기기들은 가격이 수백만원에서 천만원에 달했다. 시각장애인이 기기 구입을 꺼리는 이유도 비용 부담 때문이었다.

결국 풀어야 할 숙제는 가격이었다. 그러던 중 많은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렇게 떠올린 플랫폼은 스마트폰을 끼워 쓰는 가상현실 헤드셋 '기어VR'이다.

조 CL은 "선입견과는 달리 현재 시각장애인의 71%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 중"이라며 "기어VR은 10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살 수 있기에 좋은 폼팩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어VR을 폼팩터로 개발한 릴루미노 앱은 지난해 5월 삼성전자 C랩 과제로 선정됐다. C랩이란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다. 조 CL은 이렇게 삼성전자 직원에서 벤처기업 리더가 됐다.

릴루미노 앱은 기어VR에 장착된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영상을 변환 처리해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준다.

빛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전맹을 제외한 1급에서 6급의 시각장애인들은 기어VR을 착용하고 릴루미노를 실행하면 기존에 왜곡되고 뿌옇게 보이던 사물을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무작정 찾아가 현장 테스트 진행

팀원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개발은 했지만, 현장 테스트가 문제였다. 일부 복지시설에 연락해 시각장애인과의 만남 주선을 요청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직접 부딪혀야 했다.

조 CL은 "복지관 1층 로비에 조용히 앉아있다가 시각장애인 분들이 지나가면 붙잡고 기어VR을 한 번 써달라고 부탁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무작정 시각장애인 학교인 한빛맹학교에 연락해 현장 테스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 김찬홍 교사 덕분에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기어VR을 쓰고 주변 사물을 보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지난해 10월 두 번째 시제품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조 CL이 깨달은 게 있다. 시각장애인은 단순히 앞이 뿌옇게만 보일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시각장애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조 CL은 "시각장애에는 시야 가운데 부분만 일그러져 보이는 황반변성이 있고, 터널에 들어간 것처럼 시야가 좁아지는 녹내장 등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 또한 개발했다"고 말했다.

황반변성 환자는 릴루미노를 통해 시야가 일그러진 부분에 맺힌 이미지를 시야가 일그러지지 않은 부분으로 옮길 수 있다. 시야가 좁은 녹내장 환자는 릴루미노 앱으로 더 넓은 범위의 주변 환경을 VR 화면에 담을 수 있다.

◆목표는 안경형 시각보조기기

릴루미노팀의 최종 목표는 '안경형 시각보조기기 개발'이다. 시각장애인들이 기어VR을 착용한 상태로 실외 공간을 돌아다니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계속 소진되고, 주변의 시선도 시각장애인에게 부담으로 다가갈 수 있다.

조 CL은 "삼성전자의 C랩 과제는 원칙적으로 1년 후 종료되지만, 릴루미노팀은 안경형태 제품 개발을 위해 과제 기간을 1년 연장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과제 기간을 1년 연장한 경우는 현재까지 선정된 180개 C랩 과제 중 릴루미노팀이 유일하다. 2년간의 과제가 끝나는 내년 5월에는 사업부로 이관되거나, 벤처기업으로 독립하는 스핀오프의 길을 걷게 된다.

조 CL은 "재미를 위한 VR이 누군가에겐 등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CL은 시각장애인이 앞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편견을 깼고, 더 나아가 기어VR이 비(非)시각장애인을 위한 기기라는 세상의 편견과 맞서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는 20일 오큘러스 스토어를 통해 릴루미노를 출시했다. 기어VR 사용자라면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호환되는 스마트폰은 갤럭시S7 시리즈 이후 출시 기종이다. 릴루미노는 라틴어로 '빛을 돌려준다'는 뜻이다.

강민경기자 spotligh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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