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란 기자] "상당수 사람이 '최근 정치 불안이 커서 경제 큰일 나는 거 아니냐'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불안 요소 때문에 괜히 기업인까지 들뜰 필요는 없다. 우리가 '정치가 불안할수록 경제까지 망가지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경제가 나빠지지 않는다."
고(故)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생전 발언 가운데 하나다.
느닷없는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넉달 가량 정국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기업인들이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지 지금 들어도 귀감이 될 만한 말이다. 이런 발언들이 고스란히 모아져 세상에 공개된다.
![1980년 12월 최종현 SK 선대회장이 유공(現 SK이노베이션) 인수 후 첫 출근해,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SK]](https://image.inews24.com/v1/fbbe3b0298f67f.jpg)
SK는 1970~1990년대 한국 경제 성장기를 이끈 주역인 고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경영 활동 일체가 유고 27년 만에 세상에 나온다고 2일 밝혔다.
SK 관계자는 "이른바 '선경실록'으로 불릴 만큼 방대한 사실의 기록은 한국 근현대 경제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사료로 쓰일 전망"이라고 밝혔다.
SK는 그룹 수장고 등에 장기간 보관해 온, 30~40여 년에 걸친 경영철학과 기업활동 관련 자료를 △발굴 △디지털로 변환 △영구 보존·활용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지난달 말 완료했다.
2023년 '창사 70주년 어록집' 제작을 발간하는 과정에서 옛 자료의 역사적 가치를 확인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한 지 2년 만이다.
최 선대회장은 사업 실적·계획 보고, 구성원과 간담회, 각종 회의와 행사 등을 녹음하여 원본으로 남겼다. 이를 통해 그룹의 경영 철학과 기법을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기업 경영의 수준을 높이고자 했다. 이 같은 방침은 SK 고유의 기록 문화로 계승됐다.
이번에 복원한 자료는 오디오·비디오 형태로 약 5300건, 문서 3500여 건, 사진 4800여 건 등 총 1만7620건, 13만1647점이다. 최 선대회장의 음성 녹취만 오디오 테이프 3530개에 달한다.
기록에는 SK 고유의 경영관리체계인 SKMS(SK 매니지먼트 시스템)를 정립하고 전파하는 과정,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 순간에서 임직원과의 토론하는 장면 등이 담겨 있다.
최 선대회장은 1982년 신입 구성원과의 대화를 통해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도 인재라면 외국 사람도 쓰는 마당에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지연, 학연, 파벌을 형성하면 안 된다"며 한국의 관계지상주의를 깨자고 강조했다.
1992년 임원들과 간담회에서는 "연구개발(R&D)을 하는 직원도 시장 관리부터 마케팅까지 해보며, 돈이 모이는 곳, 고객이 찾는 기술을 알아야 R&D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같은 해 SKC 임원들과 회의에서는 "플로피디스크(필름 소재의 데이터 저장장치)를 팔면 1달러지만, 그 안에 소프트웨어를 담으면 가치가 20배가 된다"며 우리나라 산업이 하드웨어 제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SK의 성장 과정도 최 선대회장의 목소리를 통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세계 경제 위기를 몰고 온 1970년대 1, 2차 석유파동 당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최 선대회장이 중동의 고위 관계자를 만나 석유 공급에 대한 담판을 짓는 내용 등이 음성 녹취에 담겨있다.
이 밖에도 타 그룹 총수들과 산업 시찰에서 나눈 대화, 외국담배회사가 한국 내 유통 협업을 제안하자 '비즈니스는 결국 신용'이라며 거절한 일화 등의 이야기가 오디오 테이프에 남아있다.
SK 관계자는 "최 선대회장의 경영 기록은 한국 역동기를 이끈 기업가들의 고민과 철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보물과 같은 자료"라며 "양이 매우 많고 오래되어 복원이 쉽지 않았지만, 첨단기술 등을 통해 품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란 기자(ra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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