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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언쟁은 그만하고, 'K-엔비디아' 토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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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이균성 기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면박을 주는 모습은 이 시대의 상징적 장면이다. 불과 나흘이 지나서 젤렌스키는 트럼프에 완전히 백기투항했다. 무릎을 꿇었다고 해야 할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에서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결국 일시적 휴전에 합의했고, 트럼프의 잇속인 광물협정도 체결하기로 했다.

김훈 책 ‘남한산성’에서 조선 인조 때 이조판서 최명길은 울부짖는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전하, 부디 더 큰 것들도 견디어주소서.” 젤렌스키에게도 최명길이 있었던 것일까. 전쟁 중에 믿음직했던 우군이 갑자기 돌변해 침략자인 적군과 쑥덕거리며 거래하는 상황에서도 고개를 숙이는 것만이 살 길이라 충고하는.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연례 기술 컨퍼런스 'GTC 20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AFP 연합뉴스]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연례 기술 컨퍼런스 'GTC 20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AFP 연합뉴스]

400년의 시차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반복되는 인류사의 이 두 장면은 약자가 단지 살기 위해 강자 앞에서 어디까지 비루해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문제는 이게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트럼프 앞에선 어느 나라 누구든 인조도 젤렌스키도 될 수 있다. 트럼프가 원하는 건 오직 미국의 금전적 이익이다. 트럼프에겐 피로 얼룩진 우크라이나 땅 밑 광물이 수십만 명의 죽음보다 고귀하다.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트럼프 대응을 위한 제1 조건이다. 경제적으로 미국에 맞서려는 중국을 견제하자는 생각은 바이든이나 트럼프나 같다. 그러나 견제 방식은 크게 다르다. 바이든이 이념을 기반으로 한 동맹국을 묶어 공급망을 재편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트럼프는 관세 하나를 들고 일대일로 맞선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동맹국에도 같은 칼날을 겨눈다. 그에게 이념은 허깨비에 불과하다.

바이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독재자로 비판하지만, 트럼프는 그들이 가진 절대 권력을 부러워한다. 트럼프가 중국을 견제하는 이유는 중국의 정치경제 시스템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전통 제조업은 물론 첨단 산업에서도 중국에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푸틴과 거래하려는 이유 역시 두 나라의 산업구조로 판단할 때 얻을 게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바이든처럼 세계를 통으로 묶어 고민하지 않는다. 이념이나 사상으로 진영을 나눌 생각도 없다. 기후변화나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상대를 개별적으로 나누고 그 상대와 잃을 것과 얻을 것만 따진다. 자신의 나라가 압도적 힘을 갖고 있기에 개별적으로 상대한다면 어느 나라와 맞서서도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트럼프식 국가자본주의 실체다.

트럼프가 시장 자유주의자보다 국가자본주의자에 더 가깝다고 보는 데 특별한 근거는 없다. 다만 강력한 정부 주도의 중국 정치경제 구조를 국가자본주의라 부를 수 있다면, 트럼프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바이든과 시진핑, 그리고 바이든과 푸틴은 여러모로 앙숙인 게 맞다. 그러나 트럼프와 시진핑, 트럼프와 푸틴은 이익만 된다면 서로 내통할 국가자본주의자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핵심 국가 세 곳의 지도자가 어쩌면 겉은 다르지만 속은 똑같은 존재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 속이라는 게 ‘국가자본주의’다. 이 생각이 맞다면 ‘국가자본주의’는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화두다. 비슷한 이야기는 많이 있었겠지만, 그 초점을 ‘국가자본주의’에 맞춘 게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새 대통령을 뽑게 된다면 ‘국가자본주의’ 대응법이 더 논의돼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기한 ‘K-엔비디아’는 그 점에서 반갑다. 국가자본주의 추세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 중 하나라 보기 때문이다. ‘K-엔비디아’의 요지는 국민펀드를 만들어 국가가 키워야 할 첨단 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그 과실을 기업과 국민 등 여러 경제 주체가 공유하자는 것이다. 투자 대상은 꼭 AI 반도체가 아니더라도 미래를 이끌어갈 첨단 산업이 두루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거셌다가 잠시 주춤하고 있다. 반론의 핵심은 그 발상이 사회주의적이라는 것인 듯하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그렇다고 논란을 회피할 필요는 없다. 트럼프마저 그렇게 하고 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세계는 급변했다. 신자유주의가 물러갔고 세계무역기구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기업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아졌다. 정부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

미국과 중국, 즉 G2가 사실상의 국가자본주의다. 첨단산업은 이미 국가간 전쟁터다. ‘K-엔비디아’를 치열하게 따지되, 토론은 실증적으로 하라. 더 나은 대안을 내놓고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토론하라. 국가자본주의가 갈 길이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낡은 이념을 해체하고 미국과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에 실용적 대응법을 준비하자는 거다. 대선이 펼쳐지면 어떤 것들이 그런 준비인지 제대로 따져라.

/이균성 기자(seren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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