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역행하는 자진상폐 급증

[아이뉴스24 김지영 기자] 정부가 국내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지만, 도리어 상장을 폐지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업계에선 주주환원 대신 자진 상폐를 택하는 기업이 향후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자발적 상장폐지를 추진하고 있거나 진행한 기업은 총 6곳이다. 지난해 상장폐지를 추진한 상장기업이 4곳이고, 2022년엔 3건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게 늘어난 규모다. 현재 분위기로 보면 연간 역대 최대 규모의 자진 상장폐지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진 상장폐지가 가장 많은 경우는 사모펀드(PEF) 주도의 쌍용씨앤이, 락앤락, 커넥트웨이브, 제이시스메디 등이다. 이들은 각각 한앤컴퍼니, 어피니티, MBK파트너스, 시러큐스서브코 등이 최대주주인 곳이다.

통상 PEF는 상장 기업의 경영권 지분을 인수한 뒤 공개매수를 통해 잔여 지분을 모두 사들여 상장폐지를 추진한다. 이를 통해 자산 매각, 배당 확대, 감자 등으로 투자금을 회수(엑시트)하는 전략을 취하는데, 상장 상태에선 소액주주의 간섭, 금융당국의 강한 규제 때문에 엑시트 전략을 쉽게 짤 수 없어 상장폐지를 결정한다.

PEF의 상장폐지도 과거 대비 부쩍 늘었지만, 최대주주에 의한 상장폐지도 급증해 이목을 끈다. 최근 탑텐, 지오지아 등 브랜드를 운영하는 신성통상이 자진 상장폐지를 위한 잔여지분 공개매수에 나섰고 티엘아이는 지난 2월 지분 38.5%에 해당하는 주식을 공개매수하기로 결정했지만, 지분율 95%에 못 미치는 87.7%만 확보했다. 올해 초에는 대양제지가 최대주주인 신대양제지의 공개매수 이후 상장폐지됐다.

PEF의 상장폐지를 제외하고도 자진 상장폐지가 늘어나는 이유로는 소액주주 권익 강화와 공시 강화에 대한 부담이 꼽히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소액주주의 지분이 많은 회사의 경우 주주환원책과 밸류업 프로그램을 신경 써야 하겠지만 , 소액주주 지분이 많지 않고 오너 일가가 회사의 지분을 대부분 확보한 상태라면 상폐 결정이 오히려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밸류업으로 대변되는 주주환원책에 관심이 없는 회사라면 자진 상폐를 검토하고 있는 기업이 꽤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