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규진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전 나비센터 관장의 2심 이혼 소송 판결이 화제다. 이미 가정생활이 파탄난 두 사람은 이혼하기로 하고, 재산 분할 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문제의 판결은 5월30일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가사 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최 회장 재산 중 35%인 1조3808억원을 노 전 관장에게 분할하라는 항고심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의 판단 근거를 단순화하면 이렇다. 우선 최 회장의 SK(주) 지분 17.73%가 부부의 공동재산이라는 거다. 1심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던 돈이다. 그 다음 노 전 관장이 경영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최 회장 재산 형성에 35%의 기여가 있다고 했다.
이런 판단의 근저에는 노 전 관장의 부친인 고(故) 노태우 씨가 300억원을 최 회장측에 몰래 줘 재산형성에 공헌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또, 이 돈과 더불어 쿠데타 대통령으로 제6공화국 수반이었던 노 씨의 유무형의 도움으로 SK(주)의 주식가치가 커졌다고 봤다.
이 판결은 SK그룹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으면서 또다른 차원의 이슈가 되고 있다. 최 회장이 1조4000억원 남짓한 현금을 마련하려면 지주사격인 SK(주) 주식을 파는 수 밖에 없고, 이런 과정에서 ‘제2의 소버린 사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 회장측의 지분율이 떨어지면 적대적 M&A의 타깃이 된다는 분석에 따라 SK(주) 주가는 지난 30일 장중 15% 급등하기도 했다.
당연히 SK그룹은 발끈했다. 임직원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성장해왔는데, SK그룹이 노 씨의 비호와 지원으로 성장한 부도덕한 기업집단이냐는 반발이다. 이 판결은 2심 재판부가 판결문 내용을 경정하면서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대한텔레콤(현 SK C&C)의 1998년 5월의 주식 가액을 주당 100원에서 1000원으로, 355배로 계산한 최 회장의 기여분을 35.6배로 수정했다. 이어 항소심 변론종결시점인 2024년 4월16일의 주식가액 16만원을 기준으로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의 기여분은 125배, 최 회장의 기여분은 160배가 된다고 고쳤다.
한발 물러서서 물끄러미 이 판결을 보노라면 ‘이건 아닌데’ 하는 의구심이 꼬리를 문다. 세부적인 액면가 산정, 기여분·재산분할 셈법은 복잡하지만, 사실 본질이 아닐 수 있다.
2심 판결의 핵심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노 씨가 SK그룹에 시집 간 딸에게 감춰둔 돈 300억원을 줬고, 국가의 환수를 피한 끝에 현재 이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합법적인 재산분할 금액이 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강도나 사기, 보이스피싱을 통해 탈취한 검은 돈이 비밀 증여를 통해 딸 부부에게 넘어가고, 이 부부가 재테크, 기업 운영 등을 통해 재산을 불리면 깨끗한 돈이 된다는 희한한 결과가 된다.
2심 재판부는 300억원을 받은 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며 형사상 어떤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노 씨는 4000억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 불법자금 임치는 '반사회질서행위'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그 판례는 임치자금의 소유권이 ‘맡긴 자’, 즉 노 씨에게 있다는 것이지, 그 돈 자체가 불법자금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돈을 꽁꽁 숨긴 전두환 씨와 달리 노 씨는 2013년 추징금을 완납했으나, 국민 감정상 SK그룹에 주었다는 300억원이 적법한 돈이라고 볼 사람은 2심 재판부 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노 씨는 쿠데타 전 일개 육군 소장에 불과한 자였다.
불법 비자금 300억원이 나중에 수조원이 됐다면 정부와 사법부는 지금이라도 환수해야 마땅하다. 법적 안정성 차원에서 시효가 지나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그 돈을 딸에게 수십배로 줘서는 안된다.
실제 300억원이 있었는지, 그게 SK의 기업가치를 얼마나 키웠는지, 그리고 재산 분할 비율이 65대35가 맞는지 중요한 쟁점들이다. 하지만, 검은 돈이 존재했다면 노 씨의 돈도, 김옥숙 씨의 돈도, ‘노소영의 돈’도 될 수 없다.
어찌 됐든 2심 판결대로라면 대한민국 사법부는 검은 돈 300억원을 세탁해서 그 딸자식에게 46배로 돌려준 꼴이 됐다. 국민들의 이런 의문과 비판에 대법원은 어떤 답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이규진 기자(sky918@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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