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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동물원에 사는 동물의 진짜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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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은 많은 이들에게 유년 시절의 따뜻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여전히 어린이날의 관람객 인파나 새로 태어난 희귀한 아기 동물은 미디어가 담기 좋아하는 행복한 피사체다.

반면 동물원 뉴스는 잔혹한 극단으로도 치닫는다. 아기 기린과 사막여우 같은 희귀종의 탄생을 축하하는 뉴스가 있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선 수가 많고 번식력이 강해 ‘처치 곤란’인 전시동물을 도축농장에 매각하거나 멸종위기종을 불법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사기도 한다.

또한 맹수의 탈출이나, 인간을 공격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다. 지난 8월 과천 서울대공원 호랑이가 사육사 목을 물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나 2010년 미국 씨월드에서 ‘고래쇼’를 하던 범고래 틸리쿰이 조련사를 공격해 숨지게 한 일이 대표적이다.

에버랜드의 북극곰 통키는 털이 녹색으로 변하고 같은 지점을 왔다 갔다 하거나 머리를 계속 흔드는 이상 행동을 보여 왔다.

애초에 동물원이라는 좁은 공간과 우리나라 기후가 북극곰에게 맞지 않아서다.

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보이는 이상행동 사례는 많다. 한 자리를 맴돌거나 같은 지점을 계속 왔다 갔다 하는 반복 행동, 자신의 배설물을 먹거나 털을 뽑는 등의 자기 학대 행위,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는 무기력한 행동은 야생의 동물에게선 찾아볼 수 없다.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낳은 이상행동으로, ‘정형행동(stereotyped behaviour)’이라고 한다. 수명도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야생의 아시아 코끼리와 아프리카 코끼리가 각각 42년, 56년을 사는데, 동물원 코끼리는 각 17년, 19년을 산다고 한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은 어떤 존재일까? 동물은 야생동물, 가축, 애완동물, 실험동물의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동물원에는 야생동물이 산다. 교통 정체에 인파를 감수하고 동물원에 가는 건 사자나 코뿔소, 코끼리, 기린 같이 흔히 보기 힘든 희귀한 야생동물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갇혀 사는 동물원 동물들의 처지를 ‘야생’이라 하긴 어렵다.

아프리카가 서식지라고 되어 있지만, 아프리카는커녕 동물원 정문 앞도 나가보지 못한 동물들도 상당수다. 지난 봄 메르스로 동물원 낙타들이 격리되던 때, 그 낙타들의 출생지는 과천이라고 떠들썩하게 보도되기도 하지 않았는가.

관람용으로 수익을 낸다는 점에 비중을 두면 ‘가축’에 가깝고, 본래의 야성이 어떠하든 친근하게 느끼고 늘 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선 애완동물의 성격도 있다.

또 실험동물의 성격도 없지 않다. 영국의 런던동물원은 현대 동물원의 원조인 셈인데, 1829년 당대 동물학계가 뜻을 모아 만들며 설립 이유 중 하나로 ‘동물의 기관, 조직, 세포의 기능을 연구하는 동물 생리학’을 꼽았다.

멸종 위기종의 번식과 복원을 위한 동물원의 역할이 강조되는 지금은 이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동물원의 연구 기능은 점점 더 부각되고 있는데, 자연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활용해 첨단 과학의 과제를 해결해가는 ‘생체모방(biomimicry)’ 연구 거점이 되기도 한다. 미국 샌디에고 동물원은 지난 2012년 동물원 중 최초로 생체모방연구소를 세웠다.

야생동물을 보러 동물원에 간다고 하지만, 우리가 동물원에서 만나는 동물은 머나먼 태생이 ‘야생’일 뿐 가축과 애완동물, 실험동물이 뒤섞인 존재인 셈이다. 애초에 동물원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더 자연에 가깝고, 야생다운 환경을 위해 공을 들인 이유도 관람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동물의 행복이 우선 목표는 아니다. 그만큼 동물원 동물들이 야생성을 잃어버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래의 동물원은 어때야 할까? 여전히 인간의 흥미를 위해 동물이 희생해도 좋을까?

최근 높아지는 동물 복지, 동물권에 대한 요구는 생물학계의 오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1960년대 후반 이후 생물학자들은 원숭이, 코끼리, 고래, 돌고래, 늑대 등 여러 종의 동물들을 대상으로 동물의 감정을 연구해 왔다. 그 결과 동물이 행복, 분노 등의 1차적 감정뿐 아니라 애도나 유머, 수치심 등을 느낀다는 결과를 얻었다.

감정을 처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의 방추세포는 한때 인간과 대형 유인원들만 가졌다고 여겨졌지만, 고래들은 인간보다 더 많은 방추세포를 지녔다고 밝혀졌다. 또 동물들도 즐거움을 느낄 때 인간처럼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한다. 인간만 ‘마음을 가진’ 존재라고 더는 우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동물원은 어떻게 인간을 위한 장소에서 동물을 위한 곳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주목받는 동물원의 역할은 멸종위기종을 번식시키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세계 유수의 동물원들이 관람이 아니라 보전을 일차 기능으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의 브롱스 동물원과 오마하 동물원은 종보전센터를 표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공원의 동물원이 서울대 수의대와 공동으로 산양, 수달, 반달곰, 삵 등 야생동물들에 대한 유전자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전주동물원을 사자나 코끼리, 기린 같은 전 세계 동물원의 공통 인기 동물 전시가 아니라 토종 멸종 동물이나 멸종위기종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이런 동물원의 변신 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수백 년간 전시할 동물을 얻기 위해 야생을 파괴해온 동물원이 동물을 보전할 책임기관으로 변모하리란 기대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번식 프로그램이나 연구는 동물원 동물을 더 생산하기 위한 방편이 되리란 지적이다.

살아있는 동물이 없는 동물원은 어떨까? 일본의 오비 요코하마는 ‘대자연 체감 뮤지엄’이라 표방한다. 동물의 생태를 실물 크기의 영상으로 보면서 입체음향과 진동, 바람, 안개, 냄새, 온도 등을 실감나게 느끼도록 만든 곳이다. 이곳은 영국의 BBC 방송과 게임회사 세 곳이 협력해 만들었다.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신개념 동물원들의 등장이 기대된다.

우리에 갇힌 동물이 안쓰러워도 동물원이 없는 삶을 선택하긴 망설여진다. 인간은 점점 자연과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 자연이 그립고, 더 동물을 보고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건 아닌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이 필요한 건 동물원 동물만은 아닐지도.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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