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로 일컬어지는 노무현 정권의 조각(組閣)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국가 정보화의 주무부서인 정보통신부도 신임 장관이 누가 올 지에 대해 안팎의 관심이 높다.
정보통신부의 역대 장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정통부는 지난 1994년12월23일자로 전 '체신부'에서 이름이 바뀌었다. 초고속정보통신의 중요성이 부각되던 시점이다.
장관 수로 보면 체신부 시절에 총 40명의 장관을 배출했고, 정통부 장관은 현 이상철 장관이 8대 째다. 따라서 체신부와 정통부를 합쳐 총 47명이 장관실을 거쳐간 셈이다.(★역대 장관 명단은 별도 표 참조)
불행히도, 6.25 한국전쟁로 인한 화재로 역대 장관들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는 19대 박경원 체신부 장관부터 보관돼 오고 있다.
자료와 통신업계의 입을 통해 당시 장관들의 면면과 업적들을 되돌아 본다.
◆초기...지역 안배, 군출신의 자리용...20일짜리 단명 장관도
정보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친 지금도 정부부처 중 정통부의 위상은 거리 높지 못한 실정이지만 해방후 자유당과 공화당 시절에는 체신부의 위상이 더욱 낮았다. 정부부처 내에서 힘있는 부처가 아니었다.
당연히 군 출신이 많았고 정치적으로 지역안배 차원에서 호남지역, 북한지역 출신 인사 중에서 정권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적 격동기를 대변해 당시 장관들은 단명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4.19혁명 직후에 취임한 오정수(9대) 장관은 60년5월2일부터 6월1일까지 꼭 1개월만에 물러났고, 뒤 이은 10대 최용덕 장관도 2개월21일만에 자리를 내놓았다. 11대 이상철 장관(현 장관과 이름이 같다)은 60년8월23일부터 9월11일까지 불과 20일만에 물러나 체신부·정통부 통틀어 역대 최단명 장관이 됐다.
뒤이은 12대 조한백 장관도 4개월16일만에 물러났으며 13대 한통숙 장관도 5.16 쿠테타로 인해 3개월21일만인 61년5월19일 자리를 내놓았다. 60년5월2일(9대 장관 취임일) 부터 61년5월19일(13대 장관 퇴임일)까지 불과 1년 동안에 5명의 장관이 바뀐 것이다.
◆평균 임기 1년2개월21일
체신부와 정통부를 포함한 역대 47명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2개월21일이다. 최단명 장관은 불과 20일의 오정수(9대) 장관이며 최장수 장관은 26대 박원근 장관으로, 3년3개월(75년12월19일~78년12월21일)을 재임했다.
박 장관은 육사 2기로 중장으로 예편,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있다 체신부 장관이 된다. 반공연맹 이사장과 임경업장군 숭모회 이사장역을 지내기도 했다.
한편 정보통신부 시절 장관 7명의 평균 임기는 1년20일로 역대 평균임기보다도 짧다.
초대 정통부 장관인 경상현 장관이 1년을 못채운 11개월27일만에 물러났고, 2대인 이석채 장관은 재경원 차관에서 정통부 장관으로 왔다가 7개월18일만에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초의 기업인 출신 장관으로 주목받았던 '탱크주의' 배순훈 장관도 당시 삼성차와 대우전자간의 빅딜에 대한 반대의견을 피력한 것이 빌미가 돼 8개월18일만에 자리를 내놓았다.
◆서울 출신이 가장 많아
역대 장관중 공식 자료 파악이 가능한 19대 박경원 장관 이후 총 29명의 장관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 출신이 8명으로 가장 많았다. ▲황종률(20대) ▲이재설(27대) ▲김기철(30대) ▲최광수(31대) ▲오명(36대) ▲이우재(38대) ▲경상현(정통부 1대) ▲배순훈(정통부 4대) 등이 그들이다.
그 다음으로, 전남 출신이 ▲박경원(영광·19대) ▲김보현(광양·22대) ▲문형태(화순·24대) ▲이대순(고흥·35대) ▲최영철(목포·37대) ▲송언종(고흥·39대) 등 6명이다.
인천을 포함한 경기출신은 5명으로 ▲박원근(인천·26대) ▲김성진(인천·33대) ▲이자헌(평택·34대) ▲남궁석(용인·정통부 5대) ▲안병엽(화성·정통부 6대)등이다.
이어 경북 출신이 3명으로 ▲배상욱(28대) ▲최순달(대구·32대) ▲이석채(성주·정통부 2대) 등이며 경남 출신은 ▲윤동윤(부산·40대) ▲양승택(부산·정통부 7대) 등 2명이다.
이밖에 전북 출신이 ▲강봉균(군산·정통부 3대) 1명, 충북 ▲김태동(괴산·21대), 충남 ▲신상철(공주·23대), 강원 ▲장승태(영월·25대), 평북 ▲윤흥정(초산·29대) 등이 각각 1명씩이다.
◆눈에 띄는 장관들
이재설 장관(27대)은 체신부 예산을 100% 증액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전화시설이 통신의 주력이었던 당시에 이 장관의 예산 배증으로 국내 전화 시설은 본격적인 확장기에 접어든다.
31대 최광수 장관은 TDX(국산전전자교환기) 개발의 시작으로 통신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전임 김기철 장관이 TDX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최 장관 때 본격 착수한 것. 최 장관은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김재익씨와 절친한 사이였는데 김재익씨는 최 장관에게 당시로서는 거액인 240억원의 예산을 배정해 전전자 교환기 개발에 본격 나서게 했다.
최 장관 때는 오늘날 KT의 전신인 한국통신공사 설립을 실무적으로 완성했으며 데이콤을 만든 것도 의미있는 사건이다. 이후 데이콤은 국제전화, 시외전화 시장에 잇따라 참여해 국내 유선전화 시장에 본격적인 경쟁시대를 불러온다.
후임인 최순달 장관(32대)은 오늘날 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전신인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소장을 지낸 인물로, 산하 연구기관 출신으로서는 첫 장관이 된다. 이후 ETRI 원장 출신으로 정통부 장관에 오른 사람은 초대 정통부 장관인 경상현씨와 현 이상철 장관의 전임인 양승택 장관 등이 있다.
최 장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대구공고 선배로 TDX 교환기 개발을 적극 지원, 사실상 결실을 맺게 했다. 현 KTF 사장인 남중수사장을 발탁한 사람도 최 장관이었다.
33대 김성진 장관도 전두환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다. 김 장관 때는 전산원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 점이 주목된다. 김 장관은 85년 장관에서 물러난 후 85년 과기처 장관, 86년 과학재단 이사장을 거쳐 87년 전산원 설립과 함께 초대 전산원장에 취임한다.
후임인 이대순 장관(35대)은 전남 고흥 출신. 문교부에서 체신부 장관으로 온 인물로 지역 안배 차원이었다는 것이 정통부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그는 '벽오동 심은 뜻은', '벽오동을 가꾸며' 등 저술활동도 활발히 했다.
36대 장관인 오명씨는 국내 정보통신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최광수, 최순달, 김성진, 이자헌, 이대순 등 무려 5인의 장관이 이어지는 동안 차관을 지낸 최장수 차관이었다. 이 기간 동안 국내 통신산업의 굵직한 족적이 될 전전자 교환기를 개발해 내는데 일등 공신이었다는 평을 듣는다.
88년 말까지 장관을 지낸 오명씨는 그 후 대전세계박람회 조직위원장,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교통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등 화려한 관직을 거쳐 96년 데이콤 이사장으로 업계에, 96년~2001년 까지 동아일보 사장으로 언론계에 몸 담는 등 다양한 이력을 보인다.
오 장관의 후임인 최영철 장관(37대)은 한국일보, 동아일보 등을 거친 기자 출신으로 국회에 진출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인물. 그는 목포에 출마해 낙선하고 장관을 거친 후 다시 도전해 당선되기도 했다. 현재는 서경대 석좌교수로 재임중이다.
38대 이우재 장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사 후배로 육군 통신감과 국보위(國保委) 멤버이기도 했다. 특히 85년부터 89년까지 무려 5년간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사장을 지냈다.
이 장관은 재임 시절 한미통신협상을 주도했으며 통신시장 구조조정과 국제전화시장의 경쟁구도의 원칙을 수립했다. 제2 이동통신사 선정 방침을 결정하기도 했다.
39대 송언종 장관 때는 유명한 '제2 이통 반납'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관계에 있던 선경(현 SK텔레콤)이 제2 이통사업권을 받았으나 여론에 밀려 결국 사업권을 반납하게 된 것. 정부가 사업자를 선정했다가 반납한 첫 사례다.
송 장관은 당시 노 대통령에게 "민감한 사안인 만큼 차기 정부로 넘기자"고 건의 했다가 노 대통령으로부터 묵살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부 정통관료 출신으로 행시와 사시를 모두 패스하기도 한 송 장관은 전형적인 선비형으로 논리를 중시해 당시 체신부 공무원들은 그를 '송조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또 언론에서는 언행이 세심한 그를 빗대어 '송주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40대 윤동윤 장관은 박관용 청와대 수석과 절친한 사이다. 그는 특히 체신부에서 사무관으로 시작해 차관과 장관을 지낸 유일한 사람이다.
체신부나 정통부에서 차관을 지내다 장관이 된 사람으로는 25대 장승태 장관과 오명 장관, 초대 정통부 장관인 경상현 장관, 안병엽 6대 정통부 장관 등이 있다.
윤 장관은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에 발동을 건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김성진 장관시절 전산원을 만들며 시작된 국내 정보화 사업을 발흥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5대 기간전산망 사업이 시작된 것도 이 때다.
윤 장관은 조직 장악력이 뛰어났으며 통신업계에는 형향력이 커 지금도 '대부'로 불린다.
윤 장관 때는 특히 제2 이통사업자에 CDMA기술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정해, 한국이 'CDMA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정책적 기반을 제공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현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KMT)이 민간(선경)에 넘겨지고, 신세기통신(SK텔레콤에 합병됨)을 허가한 것도 이 때다.
통신업계에서는 오명 장관이 TDX라면, 경상현 장관은 CDMA라고 비교한다.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이름을 바꾼 후 첫 장관인 경상현 장관은 MIT 박사 출신으로 기술자 출신 장관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전자통신연구소(현 ETRI) 소장을 8년 하면서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경 장관 때는 PCS사업자 선정방식을 CDMA 단일 표준으로 방침을 정했으며 이 때문에 당시 미국 에어터치 고문으로 있던 칼라힐스가 한승수 대통령 비서실장을 찾아 항의하고 돌아갔을 때 "기술개발에 자신있다"고 청와대에 보고, CDMA 방식을 밀어 부쳤다.
2대 정보통신부 장관인 이석채 장관은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통이었으나 재경원 차관을 거쳐 정통부 장관이 됐다. 말과 글이 뛰어나 당대의 논객으로도 불린 그는 선이 굵고 추진력이 강한 장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장관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후 정통부 장관시절의 PCS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비리혐의에 연루돼 오랜 해외도피 끝에 지금도 재판이 계류중인 상황이다.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으로 있다 장관에 취임한 강봉균 장관(정통부 3대)은 행정통으로 정부부처 내에서 정통부의 위상을 크게 올려놓은 인물로 꼽힌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정책기획 수석, 경제수석 비서관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치는 등 화려한 공직 경력을 자랑한다. 2000년 총선 때 분당에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시고 2002년 군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후임인 배순훈 장관은 '탱크주의'로 유명한 첫 민간 기업 출신 장관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배장관은 공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직을 장악하지 못해 기대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는 98년 김대중 정부가 강력 추진하던 빅딜 정책과 관련, 삼성차와 대우전자간 빅딜의 불합리성을 주장한 말이 화근이 돼 단명했다.
연이어 민간기업(삼성 SDS 사장)출신으로 장관에 취임한 남궁 석 장관은 상대적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이버코리아21'를 비롯한 국가정보화의 주요 정책을 수립했지만 삼성 출신으로 삼성에 유리한 정책을 펼쳤다는 구설수에 오른 것이 흠이다. 당시 관심을 모았던 '인터넷PC'사업을 삼성이 반대해 무산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궁 장관은 그러나 곧바로 국회로 진출 민주당 정책위 의장을 지낸 등 정치가로서 성공적인 길을 가고 있다.
정통부 6대 장관인 안병엽 장관은 경제기획원에서 1급으로 정통부로 발탁돼 차관과 장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현재는 정보통신 대학원 대학교(ICU) 총장을 맡고 있다. 안 장관은 합리적이라는 평가는 받았지만 2GHz 대역의 IMT-2000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동기식과 비동기식 방식을 놓고 과단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ETRI 원장과 초대 ICU 총장 출신인 7대 양승택 장관은 과학자 풍 장관으로 꼽힌다. IT기술에 밝은 그는 기술정책과 관련 소신있는 모습을 보였으나 직설적인 말 때문에 '설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KT민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공로를 인정받고는 있으나 지분 매각에만 서둘렀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고 있다.
◇역대 체신부, 정통부 장관 명단
| 이 름 | 재임기간 | 출신지 | 학벌 | |
| (체신부)1 | 윤석구 | 48.8.4~49.6.13 | ||
| 2 | 장기영 | ~52.1.11 | ||
| 3 | 이순용 | ~52.3.20 | ||
| 4 | 조주영 | 52.3.27~52.10.8 | ||
| 5 | 강인택 | ~54.6.29 | ||
| 6 | 이 광 | ~55.9.15 | ||
| 7 | 이응준 | ~58.9.8 | ||
| 8 | 곽의영 | ~60.5.1 | ||
| 9 | 오정수 | ~60.6.1 | ||
| 10 | 최용덕 | ~60.8.22 | ||
| 11 | 이상철 | ~60.9.11 | ||
| 12 | 조한백 | 60.9.14~61.1.29 | ||
| 13 | 한통숙 | ~61.5.19 | ||
| 14 | 배덕진 | ~63.1.31 | ||
| 15 | 김장훈 | ~63.12.15 | ||
| 16 | 홍헌표 | 63.12.17~64.7.20 | ||
| 17 | 김홍식 | 64.7.22~65.5.15 | ||
| 18 | 김병삼 | ~66.12.26 | ||
| 19 | 박경원 | ~67.10.2 | 전남 영광 | 단국대 |
| 20 | 황종율 | ~68.5.20 | 서울 | 일본 구주 제국대 |
| 21 | 김태동 | ~69.10.20 | 충북 괴산 | 명치대 |
| 22 | 김보현 | ~70.12.20 | 전남 광양 | 서울법대 |
| 23 | 신상철 | ~73.12.2 | 충남 공주 | 일본 육군항공사관학교 |
| 24 | 문형태 | ~74.9.17 | 전남 화순 | 육사 |
| 25 | 장승태 | ~75.12.18 | 강원 영월 | 국민대 |
| 26 | 박원근 | ~78.12.21 | 인천 | 일본대.육사 |
| 27 | 이재설 | ~79.12.13 | 서울 | 서울대 |
| 28 | 배상욱 | ~80.5.21 | 경북 | 대구대 |
| 29 | 윤흥정 | ~80.9.1 | 평북 초산 | 육사(8기) |
| 30 | 김기철 | ~81.3.8 | 서울 | 만주 길림사범 |
| 31 | 최광수 | 81.3.10~82.5.20 | 서울 | 서울법대 |
| 32 | 최순달 | ~83.10.14 | 대구 | 서울대 전기공학 |
| 33 | 김성진 | ~85.2.18 | 인천 | 육사 |
| 34 | 이자헌 | ~86.8.26 | 경기 평택 | 서울대 정치학 |
| 35 | 이대순 | ~87.7.13 | 전남 고흥 | 서울법대 |
| 36 | 오 명 | ~88.12.4 | 서울 | 육사 |
| 37 | 최영철 | ~89.7.18 | 전남 목포 | 서울대 정치학 |
| 38 | 이우재 | ~90.12.26 | 서울 | 육사 |
| 39 | 송언종 | ~93.3.25 | 전남 고흥 | 서울법대 |
| 40 | 윤동윤 | ~94.12.23 | 부산 | 서울법대 |
| (정통부)1 | 경상현 | ~95.12.20 | 서울 | 서울대 공대 |
| 2 | 이석채 | ~96.8.7 | 경북 성주 | 서울대 상대 |
| 3 | 강봉균 | ~98.3.2 | 전북 군산 | 서울대 상대 |
| 4 | 배순훈 | ~98.12.20 | 서울 | 서울대 기계과 |
| 5 | 남궁석 | ~00.2.11 | 경기 용인 | 고려대 경영학 |
| 6 | 안병엽 | 00.2.14~01.3.25 | 경기 화성 | 고려대 정외과 |
| 7 | 양승택 | ~02.7.11 | 부산 | 서울대 공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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