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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배의 와일드카드] 리니지vs허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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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보다 더 노골적이고 음란한 도색 잡지를 만들어 음란물 간행죄로 법정에 서야했던 래리 플린트. 그가 창간한 잡지가 세상에서 가장 저속한 포르노 잡지라는 '허슬러'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리니지'에 18세 이용가 등급을 매김으로써 자의든 타의든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게임을 만든 사람이 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이 일로 인해 사업에 성공한 김택진 사장이 운 좋게도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수호자로 떠오를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김택진사장은 '홍수환론'과 '문화탄압론' 등을 주장하며 우리에게 래리 플린트의 모습을 보여줬다.

"잡놈이 표현의 자유를 지킨다"

래리 플린트는 어린 시절 동생과 밀주를 만들어 팔면서 사업이 무엇인지 배운다.

70년대초 신시내티에서 '허슬러 고고 클럽'을 운영하던 래리 플린트는 술집 경영이 어려워지자 스트립쇼를 광고하기 위해 성인 남자를 위한 소식지를 만들 생각을 해낸다. 물론 누드 사진만 싣는 것은 불법이므로 적당히 기사를 섞은 '플레이보이'지 비슷한 포르노 잡지를 창간한다.

그는 플레이보이 잡지처럼 고상한 척 할 필요가 없다며 여성의 음부를 완전히 노출한 사진을 게재한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면 그들의 성기도 아름답게 지으신 것 아니냐"는 것이 그의 지론.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소매상들이 이 잡지를 드러내놓고 팔기를 꺼려 하는 바람에 허슬러 잡지의 반품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미 열살 때부터 켄터키 산골마을에서 밀주를 팔아 돈벌이에 나섰던 래리는 이대로 물러나지 않는다.

마침 재클린 오나시스가 휴양지에서 전라로 일광욕하는 사진을 입수해 게재한 덕분에 허슬러는 단번에 200만부 이상 매진되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다.

이같은 포르노 잡지를 용납하지 않는 보수적인 주민과 종교인들이 잡지사 밖에서 연일 항의시위를 벌이는데도 래리는 편집 방침을 바꾸지 않는다. 성역을 무시한 그의 잡지 제작으로 그는 음란물 유포와 조직범죄 가담 혐의로 기소된다.

법정에 선 그를 위해 약관의 하버드 법대 출신 변호사 알랜 아이작맨이 시민의 기본권이 위협을 받는 일이라며 변호를 맡는다.

신시내티 해밀턴 카운티 법정에서 검사는 래리가 만드는 잡지가 동성애를 미화하고 산타클로스까지 성욕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등 부끄러운 사진과 그림을 게재했다며 음란에 관한 지역 정서를 해쳤다고 공박한다.

이에 맞서 래리 플린트 측은 허슬러가 다른 성인용 잡지와 크게 다를 바 없으며, 검사의 논고는 수정헌법 1조에 반하는, 풍기단속을 빙자한 검열이라고 반박한다.

래리는 배심원들에게 "버드와이저 맥주를 미성년자가 마셨다고 판매를 금지할 것이냐"고 따져묻는다. 래리의 사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애쓰는 변호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유죄를 평결하고 판사는 래리에게 25년 징역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그는 무죄 석방된다. 신시내티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출판의 자유를 수호하는 시민연합' 집회에서 래리 플린트는 "살인 현장을 찍은 뉴스위크가 퓰리처 상을 받는 현실 속에서 누드 사진을 게재하는 것이 왜 불법이냐"며 '전쟁보다는 섹스가 낫다'고 기염을 토한다.

보수적인 조지아 주에서 사법 당국이 허슬러 잡지 판매상을 단속하고 래리는 그에 맞서 몸소 잡지 판매대에 선다. 그 무렵 애틀란타에 사는 카터 대통령의 여동생이 그를 만나자고 한다.

어느 사이엔가 그녀에게 종교적 감화를 받은 래리는 세례까지 받지만, 그 사이에도 그는 십자가에 결박된 누드 사진을 게재하는 등 계속 성역을 뛰어 넘는다.

그는 1978년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처벌을 면하자는 변호사의 설득을 무시한 채 조지아주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다가 정체 불명의 괴한으로부터 저격을 받고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는다.

신변의 불안을 느낀 그는 무장경호원이 지키는 헐리웃 비벌리힐즈의 맨션으로 이사하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모르핀 주사를 맞기 시작한다. 1983년 통증을 없애는 수술을 받고 래리 플린트는 사업의욕을 다시 불태운다.

래리는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위해 케네디 암살범 찾기에 100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거는가 하면, 존경받는 종교지도자 제리 폴웰 목사가 모친과 동침하였다는 거짓 고백 기사를 잡지에 싣는다.

이 때 저명 기업인인 들로리언이 FBI의 함정수사에 걸려 마약 밀매 현장에서 체포되는 비디오 테이프를 공개한다.

LA 법원의 판사는 마약밀매 현장을 담은 비디오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법정에 헬멧을 쓰고 나타나고 성조기로 기저귀를 만들어 차는 등 기행을 일삼는 래리를 법정 모욕죄로 구속하고 15개월의 정신병원 감호를 명령한다.

한편 버지니아주 로아노크에서는 제리 폴웰 목사가 래리 플린트를 명예훼손을 이유로 4천만달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래리는 그의 잡지 기사를 허락도 받지 않고 전재해 모금 운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맞고소한다.

이 사건의 판결은 래리가 폴웰 목사에게 감정적인 고통을 주었으므로 20만달러의 손해 배상을 하라는 것.

마약 중독과 AIDS 감염으로 부인이 죽고 그와 의견 충돌을 보인 아이작맨 변호사가 사임을 선언한 가운데 워싱턴의 연방대법원에서는 상고심 재판이 열린다. 죽기 전에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는 래리의 진정어린 호소에 감동한 아이작맨이 다시 변론을 맡아 수정 헌법의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벌어진다.

비록 패러디일 망정 공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법적 문제가 아닌 취향의 문제라 할 수 있느냐,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쟁점이었다.

1987년 대법관들은 전원일치의 판결로 래리의 손을 들어준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1조의 정신은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이며, 진리탐구를 위한 초석이 되고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는 토대가 되므로 좋은 의견이든 나쁜 의견이든 전부 들어보기 위해 수정 헌법 1조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린다.

래리는 승소 판결을 받고 "자기 같은 속물이 헌법의 보호를 받는다면 어느 누구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외친다.

"김택진은 자신만을 선택했다"

일시나마 래리 플린트처럼 보였던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영등위와 전면전을 선언한지 보름도 못돼서 타협을 선택했다.

28일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의 게임 방식을 대폭 수정해 '12세 이용가' 등급으로 재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한다고 발표했다. 그로써 그동안 영등위의 등급제가 문화 탄압이라는 주장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후속 조치로 엔씨소프트는 30일부터 리니지에서 문제된 PK(Player Kill)를 줄이기 위해 상대방 캐릭터가 죽으면서 떨어뜨린 아이템을 공격자가 가질 수 없도록 조정하며, 청소년이 장시간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부모와 합의해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도입했다.

이런 김택진 사장의 타협 전략은 리니지의 등급 신청을 영등위에 제출했을 때 이미 노출됐다는 시각이 있다.

만약 아직까지 엔씨소프트가 영등위에 리니지를 등급 신청하지 않고 서비스를 했다면 '음비게법'에 따라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사실 엔씨소프트가 등급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영등위가 매 초마다 벌금을 때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설사 벌금을 내더라도 일정 기간 서비스를 계속할 수 있다면 엔씨소프트로선 2천만원 정도야 큰 돈이 아니다.

그러나, 이 수를 선택했을 때 엔씨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오너이자 현 대표인 김택진씨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자발적으로 리니지에 대한 등급을 신청한 후 영등위가 부여한 등급을 어기고 서비스했을 경우 5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거나 6개월 이내의 영업 정지를 당할 수 있다. 6개월 영업정지는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극형이지만 김택진 사장 개인에겐 해가 없다.

이렇듯 벌칙의 특성을 따져보면서 '리니지는 죽일 수 있지만 김택진은 살린다'는 결정을 내부적으로 내린 후 영등위에 리니지의 등급을 신청한 것으로 분석된다.

어쩌면 김택진 사장은 영등위가 리니지를 18세 이용가로 등급을 매긴 일이 자유를 억누르는 문화 탄압이라는 신념조차 애당초 가지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김택진 사장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강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인간적이어서 그만을 탓하긴 어렵다.

그러나, 70년대 우리의 만화 산업이 그랬듯이 만약 온라인게임 산업이 2002년 9월을 고점으로 이대로 무너지면, 영등위 뿐만 아니라 김택진 엔씨소프트사장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형배 칼럼니스트 elecbass@shinbi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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