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 산업 경제
정치 사회 문화·생활
전국 글로벌 연예·스포츠
오피니언 포토·영상 기획&시리즈
스페셜&이벤트 포럼 리포트 아이뉴스TV

'말하는 원숭이와 소금기둥 그리고 불비…바벨에 새긴 묵시록'

본문 글자 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보르헤스 문학 콜렉션 바벨의 도서관 4권은 레오폴도 루고네스의 '소금기둥'이다.

보르헤스는 '시의 운율을 닮은 환상 소설'이라고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보르헤스는 환상소설 가운데 몇 편 밖에 소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할 정도로 루고네스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첫 번째 선택한 단편소설은 '이수르'. 보르헤스는 이 작품을 루고네스가 아니면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르'는 말하는 원숭이에게 말을 시키려는 인간과 원숭이의 심리전을 다룬 소설이다. 이수르는 말하는 원숭이의 이름이다.

"자바 원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일을 시킬까봐 사람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수르라는 원숭이가 바로 이에 딱 맞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은 집요하게 원숭이의 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어르고 달래고 협박도 하지만 원숭이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주인은 '원숭이가 말을 하지 않게 된 과학적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주인은 원숭이를 말하게 하기 위해 집요한 시도를 한다. 첫 번째 주인은 원숭이의 음성기관을 발달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농아에게 발음 훈련을 시키는 과정처럼 입술과 혀를 훈련시킨다.

주인은 이수르의 입술을 집게로 잡아 늘이기까지 했다. 이래도 효과가 없자 주인은 이수르에게 음성학 교육을 시켰다. 원숭이가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 , 즉 농아보다 더 뛰어난 초보적 발음능력을 갖고 있어서 농아보다 장점이 더 많다고 주인은 확신했다.

원숭이가 음식을 탐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감자 , 포도주, 코코넛, 우유, 등 하나의 주모음이 두 번 반복되는 단어들을 선택해 이수르에게 훈련시켰다. 청각과 음성기관이 큰 효과가 없자 주인은 촉각을 동원한다.

주인은 이런 시도가 실패하자 차츰 완력에 유혹을 느끼고 적대감까지 느끼게 된다. 어느 날 요리사한테 원숭이가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고 주인은 전해 듣는다. 요리사는 원숭이가 한 말 중 침대와 파이프라는 말만 기억했다.

주인은 엄청난 감동에 몸을 떨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주인은 원숭이가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더욱 분노에 사로잡힌 주인은 원숭이 이수르에게 무턱대고 채찍질을 해댔다. 주인이 얻어낸 것은 원숭이의 눈물과 절대적인 침묵 뿐이었다. 원숭이는 '말'에 가까워서인지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결국 원숭이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치매우울증에 걸린다. 이수르는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뇌에 가해진 비정상적인 충격으로 인해 신체의 유기적 통일성이 와해돼 버렸다. 원숭이는 모진 학대를 견디지 못해 슬픔에 빠져 있는 흑백혼혈아 같은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원숭이는 죽어가면서 주인이 간절하게 그토록 원했던 말을 한다.

죽어가는 원숭이는 주인공한테 희망을 준다. 그러나 그 희망은 마지막이었다. 이수르는 과학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집착을 낳고 그 집착은 결국 말하는 원숭이를 죽인다는 이야기이다. 원숭이가 자유의지로 말을 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 대가는 컸다.

루고네스는 인간의 교만과 우월의식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또 다른 단편소설인 '소금기둥'은 교만한 수도사가 신의 영역에 도전하다 재앙을 받는 이야기이다.

도력이 높은 수도사는 어느 날 악마에게 속아 소금기둥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인근에서 가장 신심이 두터워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던 수도사는 악마의 간교한 혀 앞에서 무장해제 상태가 된다. 사실 소금기둥은 접근해서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신이 소금기둥을 만든 것은 인간에게 죄를 지면 어떻게 처벌 받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사실 은수자인 이 수도사가 소금기둥을 찾아간 것은 도력을 과시하기 위한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가장 괜찮은 수사 소시스트라토는 신의 저주의 봉인이 있는 곳인 땅에 들어가 신에게 버림받은 사람을 구제하려다 재앙을 맞이한다.

이 작품은 이수르와 마찬가지로 우월의식과 집착이 빚는 그릇된 욕망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루고네스는 전반적으로 세계관이 비극적이며 말세적이다. 환상이 절정을 이루는 작품 '압데라의 말'은 새롭고 기이한 체험을 하게 한다.

이 소설은 말이 반란을 일으켜 사람을 해하는 이야기이다. 인간화된 동물의 비극적인 최후를 그린 이수르처럼 이 작품도 동물의 인간화가 빚는 끔찍한 결말을 보여준다.

또한 소설 불비는 묵시록에서 예언한 종말의 그날을 그대로 묘사한다. 세상이 떠나갈 것 같은 온갖 신음을 내뱉고 울부짖으며, 지옥의 악취를 풍기며 수많은 사람이 불타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다.

루고네스의 환상은 기발하고 기존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 '프란체스카', '줄리엣 같은 할머니' 등은 루고네스가 환상 뿐 만이 아니라 섬세한 사랑에도 뛰어났음을 알려준다.

신화와 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불비', '압데라의 말', '소금기둥' 등은 '환상의 압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책의 발견-다산몰 CBC뉴스 유수환 기자 press@cbci.co.kr




주요뉴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alert

댓글 쓰기 제목 '말하는 원숭이와 소금기둥 그리고 불비…바벨에 새긴 묵시록'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댓글 바로가기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TIMELINE



포토 F/O/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