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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금지된 자료' 왜 공개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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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승부수" 판단했을 수도…판사 조치에 관심

[김익현기자] 삼성과 애플 간의 역사적인 특허 재판이 시작부터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31일(현지시간) 공개 금지된 증거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때문이다.

새너제이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격노하면서 사태 파악에 나섰다. 외신들에 따르면 고 판사는 삼성 쪽 대표 변호사인 존 퀸이 이번 자료 배포에 연루돼 있는 지 파악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이번에 삼성이 공개한 자료에는 "소니 제품을 참고해서 아이폰을 만들었다"는 니시보리 신의 증언이 들어 있다. 또 아이폰 공개 전인 2006년에 이미 삼성이 F700폰을 개발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삼성으로선 회심의 카드가 모두 담긴 자료인 셈이다.

당연히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삼성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관련 자료를 공개했을까?

◆'디스커버리 프로세스' 때문에 못 써먹게 된 자료

이번 자료는 루시 고 판사가 세 차례에 걸쳐 배심원들 앞에서 공개하지 말라고 통보한 것들이다. 판사 입장에선 삼성의 이번 조치가 굉장히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국내 일부 언론들은 "편파적인 재판 진행"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을 연상케한다고 비판한 곳도 있다.

물론 미국에서 열리는 재판인 만큼 삼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는 있다. 그 부분은 삼성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담당 판사가 이번 재판을 일방적으로 애플에 유리한 쪽으로 끌어가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다소 성급하다.

그 보다는 한국과 미국 간의 사법제도 차이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아는 것처럼 미국은 배심원들이 판결을 하는 법 체계를 갖고 있다. 또 철저하게 당사자 중심 주의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송 관련 자료나 증언을 확보하는 이른바 '디스커버리 프로세스(Discovery Process)'가 다소 엄격한 편이다. 소장에 적힌 내용을 뒷받침해 줄 각종 자료들을 시한 내에 제출해야만 한다.

디스커버리 기간 중에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자료를 확보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질문서' '법정 선서 증언' 그리고 '사실을 인정하거나 부인하라고 요청하는 문서' 같은 형태다.

루시 고 판사가 삼성 측에 니시보리 신 등의 증언 자료를 배심원들에게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디스커버리 프로세스' 때문이었다. 자료 확보 시한을 넘겨서 제출됐다는 것이다.

판사 입장에선 삼성이 자료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 대해 당연히 격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 차례나 공개 요청을 기각한 자료를 언론에 배포해 버렸기 때문이다.

◆삼성 "애플의 부정확한 변론은 허용하면서..."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제기된다. 삼성은 왜 그토록 무모해 보이는 조치를 취했을까?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선 31일 재판 진행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선 IT 전문 매체인 더버지가 비교적 상세하게 전해주고 있다.

애플 측 변호인들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삼성 F700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자 삼성쪽 변호인단을 이끌고 있는 존 퀸 변호사가 문제가 된 자료를 법정에서 활용하지 못하도록 한 결정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삼성 측의 이 같은 요청에 대해 루시 고 판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너무 자주 재고를 요청한다면서 존 퀸 변호사에게 착석하라고 요청했다.

더비지에 따르면 이 부분에서 판사와 삼성 측 존 퀸 변호사 간에 설전이 오갔다. 존 퀸 변호사가 루시 고 판사에게 "이번 재판의 쟁점이 뭐냐?"면서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루시 고 판사는 "당신을 제재하지 않도록 해 달라. 부탁이다."고 경고했다.

삼성이 문제가 된 슬라이드 16장을 언론에 배포한 것은 이 일이 있고 난 뒤였다. 삼성 측은 보도자료와 함께 관련 사진을 배포하면서 재판부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출했다.

삼성 측은 "애플이 배심원단에 부정확한 변론을 하는 것은 허용하면서 삼성이 사건전말을 들려주는 것은 막는 다"면서 기각된 증거는 삼성이 아이폰의 디자인을 베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규명하는 문건"이라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법정에서 이슈가 되었던 사안인 만큼 파장은 엄청났다.

더버지는 "삼성이 관련 자료를 언론에 뿌렸다는 사실을 안 루시 고 판사는 격노했다(livid)"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자료 공개에 존 퀸 변호사가 연루돼 있는 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사실을 뻔히 예상했을 삼성은 왜 자료를 공개한 것일까? 일단 삼성 쪽의 공식 해명이 나오고 있지 않는 만큼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어느 선에서 자료 공개를 결정했는지도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은 해 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삼성 입장에선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카드다. 아이폰이 독창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삼성 역시 아이폰을 베낀 것이 아니라는 두 가지 주장 모두를 뒷받침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구슬이 서말이라고 꿰어야 보배인 법. 배심원들 앞에서 그 자료를 공개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결국 판결을 하는 것은 배심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삼성 측이 전격 공개를 결심한 것일 수도 있다.

계속 이어질 소송전을 염두에 둔 조치란 해석도 가능하다. 잘 아는 것처럼 이번에 대상이 된 제품은 갤럭시S와 갤럭시S2, 그리고 갤럭시 탭 10.1 같은 제품이다. 갤럭시S3 같은 최신 제품은 아직 재판 대상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아이폰은 소니 제품을 참고해서 만든 것"이란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더버지 "항소 염두에 둔 조치일 수도"

반면 더버지는 삼성이 판사가 기각한 자료 공개를 계속 물고 늘어진 것은 항소를 염두에 둔 조치라고 분석했다. 애플이 승리할 경우 항소를 할 명분을 축적하는 데 더 없이 유리한 자료들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칼은 루시 고 판사에게 넘어갔다. 판사 입장에선 유례 없는 항명으로 비칠 수도 있을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 쪽에서 이번 자료를 공개하는 데 어느 선까지 개입됐는지도 중요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삼성 변호인단의 리더인 존 퀸 변호사가 재가한 사안일 경우엔 그 파장이 훨씬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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