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현기자] "대한민구 대기업 중에서도 불과 두세 곳만 기술수지에서 흑자를 보고 있다. 2010년 기준 기술무역수지 적자가 69억달러에 달하는 등 외려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들도 아직 기술적으로 취약한 상태다." (이현순 CTO클럽 대표)
"정부가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에 9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는 정부가 지원하는만큼 대기업도 함께 '마중물' 역할을 해달라는 의도가 있다. 90억원 지원하면, 90억원 투자하는 매칭펀드 형식 말고 좀 더 큰 규모의 투자를 해달라."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출연연·대학의 연구방향이 기업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이 부족한 것은 아이디어다. 출연연·대학에서 창조적 연구를 하면 현재 3% 수준인 R&D 예산도 늘어나고, 혁신의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을까." (신미남 퓨얼셀파워 대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김도연, 이하 국과위)는 23일 서울교육대학교 종합문화관에서 '과학기술 100분 토론회'를 개최하고 '정부와 민간의 R&D,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주제로 산업계·정부 출연연·대학·정부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날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염재호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은 "우리나라 R&D 정책의 패러다임이 변할 시점에서 마련된 자리"라고 운을 띄웠다.
염재호 국과위 위원은 "10대 상장기업에 투자되는 정부 R&D 예산이 10조원을 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주면 실패확률이 높으니 편의성·잠재성장력 등 기회비용에서 대기업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맞다'는 측과 '이미 연구인력이 충분하고 예산도 확보된 대기업을 굳이 국가가 지원할 필요가 있냐'는 이야기가 함께 나오는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대기업 측 입장을 대변한 이현순 CTO클럽 대표는 "대기업들이 연구비가 부족해서 국가연구과제를 수주받는 것은 아니다"며 "대기업의 정부 R&D 프로젝트는 협력업체들이 개발하는 부분을 지원하고 공동개발을 통해 나온 완성품을 구매해주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현순 대표는 "현대자동차에서 정부 R&D 예산을 받아 진행했던 국내 최초 전기자동차 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정부에서 할당한 90억원 중에 83억원을 다시 부품업체로 발주했고 나머지 7억원은 프로젝트를 평가하는 비용으로 지출했다"며 사례를 소개했다.
심미남 퓨얼셀파워 대표는 "정부의 기업 R&D 지원 예산은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하는 문제보다는 어떤 분야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방식과 분야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며 논의의 틀을 바꿨다.
심미남 대표는 "그간 정부 R&D가 빨리 상용화할 수 있는 IT·기계통신·정보화 분야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개발에서 상용화 할 때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분야, 국민의 채 1%도 연관되지 않은 분야 등에 기업이 참여해서 연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심 대표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부문의 예를 들어 "2001년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일부 부품 개발부터 시작했던 부분이 개발 시작 10년만에 민간 주택에 기술이 상용화돼서 적용되고 지적재산권까지 확보했다"고 말했다.
심미남 대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지원방식을 달리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현재 대기업들은 R&D 투자로 인한 전체 조세감면 효과의 60%를 보고 있다. 대기업은 조세지원 방식으로, 중소·창업 기업들은 직접 지원을 해주는 방식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중기 정부 R&D 예산 지원 차별화해야"
산업계·학계·출연연·정부 모두 이 같은 지원방식의 다변화에 대해선 한 목소리를 냈다.
이연희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식도 인프라를 지원하는 방식과 기업의 개발비를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며 "삼성의 경우 특허담당 지원 인력이 60여명인데 비해 중소기업은 어느 나라, 기업을 통해서 수출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인프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연희 교수는 "대학에 정부가 R&D를 투자하면서 산업화를 기대할 때, 소비자에게 배달되는 수준이 아니라 기업이 원재료, 중간재료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진척되는 연구에 대해서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현순 CEO클럽 대표는 "현재까지 정부가 기업에 R&D 투자를 지원한 것은 신사업의 조기정착에 상당히 기여한 부분이 있다"며 "중소기업 투자의 경우 기술저변을 확대해서 생태계를 구축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역시 "기업이 지원하더라도 중소기업의 인큐베이션 비용이 여전히 크다"며 "중소기업이 양질의 R&D 인력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마련해야 될 때"라고 아이디어를 더했다.
박계현기자 kopil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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