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공간에서 수줍던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는 적극적인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다. 수줍음 많이 타는 내성적인 사람이 거대 커뮤니티를 무난하게 이끄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익명성’이란 말로 설명한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이 용기를 준다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의 저자인 황상민 교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외친다.

사이버 공간에서 개인은 자신의 물리적인 모습은 드러내지 않을 지 몰라도, 심리적인 모습은 현실공간보다 더 명확하게 그리고 더 많이 드러낸다는 것. 따라서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 모습이나 행동을 무차별적으로 드러내는 원인은 익명성이 아니라, 현실과 다른 자기 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이버 커뮤니티 역시 그 성격에 따라선 현실 공간 못지 않게 예의가 지켜지고 있는 곳이 무수히 많다는 점에서 황상민의 이 같은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이버 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사이버 공간에 관한 참신하고 강력한 주장을 담고 있다. 저자는 타성에 젖은 기존 접근법을 버리고, 심리학자 특유의 코드를 통해 사이버 공간의 문법을 읽어 낸다.
저자가 보기에 사이버 공간은 현실공간의 자기 모습과는 다른 자기를 만들고 표현하려는 욕구가 분출되는 세계이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네트워크 게임은 물론이고 채팅, 전자게시판, 개인 홈페이지, 나아가 전자상거래까지도 ‘역할 놀이(role play)’로 해석한다.
저자는 사이버 공간에서 전자상거래나 주식 거래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잘 짜여진 극본에 의해 진행되는 재미있는 놀이와 흡사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누가 어떤 이유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느냐에 따라, 참가자가 수행하는 놀이와 역할이 달라진다.
비즈니스 모델 역시 비슷한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그 내용이 이전의 이야기와 어떻게 다르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이나 역할을 하는가를 설득력있게 풀어내면 그 것이 바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것.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사이버 공간의 행동 가능성과 사용자들의 심리 분석을 통해 성공적인 인터넷 비즈니스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10억원 가량의 개발비가 투입된 사이버 가수 다테 쿄코, 국내 최초의 사이버 가수 아담 등 초창기 사이버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간 특성 및 네티즌의 심리를 제대로 읽지 못한 때문이다.
같은 차원에서 최근의 ‘포털화 움직임’ 역시 전형적인 오프라인식 접근법이라고 비판한다. ‘이 곳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살 수 있습니다’란 모토 속에는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현실 공간의 생각의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 공간에서는 ‘한 곳에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이 훨씬 편리하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은 다르다. 포털 사이트는 이동할 필요가 없다는 편리성보다 지나치게 많은 행동 가능성 때문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많다.
저자는 사이버 백화점을 지향하다가 행동 가능성이 손상된 대표적인 사이트로 아마존을 꼽고 있다. ‘사이버 서점’을 표방할 당시만 해도 행동가능성 면에서 어떤 사이트보다 뛰어났던 아마존은 책 이외의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되레 고객들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 닷컴 비즈니스에 정통한 입장에선 '지나치게 심리적인 접근'이란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의 코드를 읽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닷컴 거품이 가라앉은 지 2년 여. 이제 인터넷 공간은 더 이상 엘도라도가 아니란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오프라인으로의 회귀’를 외치는 목소리들도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사이버 공간은 ‘황금알 낳는 거위’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척박한 황무지’는 더더욱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비즈니스를 통해 배신감을 느낀 것은 사이버 공간의 특성을 제대로 알 지 못한 채 자기 기준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이버 공간의 행동 가능성에 주목하라고 외치는 저자 황상민의 주장은 경청할 가치가 충분한 것 같다.
‘인터넷 세계의 인간심리와 행동’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인터넷 비즈니스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교과서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황상민 지음, 김영사 1만900원)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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