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수 자동차칼럼리스트]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유가 시대이다 보니 연비가 좋은 차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인연비만을 무턱대고 믿다간 큰 코 다치기 일쑤. 공인연비를 참고하되 자동차를 꼼꼼히 살펴 정말 연비가 좋도록 제대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역사상 유래없는 초고유가로 인해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이달엔 연비 좋은 차 즉, 기름 적게 먹는 차를 고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이렇게 말하면 ‘방법이고 뭐고… 그냥 공인연비 좋은 차 사면 되지!’라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실은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국산차의 경우 연비테스트 조건이 현실과 맞지 않아 공인연비라고 표기된 것보다 실제 연비는 더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인연비를 맹신하기보다 모델별 특징을 잘 살펴 좋은 연비를 낼 수 있도록 제대로 만들어진 차를 고르는 안목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하다.

휘발유 엔진 + AT = 최악의 연비
연비가 좋으려면 우선 연료를 직접적으로 소모하는 엔진의 배기량이 작을수록 유리하다. 즉 3.0L 엔진보다 1.6L 엔진이 연료소모가 적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엔진만 떼어내 비교했을 때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어떤 연료를 쓰며 어떤 변속기와 조합되는지, 차의 무게가 어떠한지 등 여러가지 변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1.6L 디젤 엔진에 6단 더블클러치 변속기를 물린 폭스바겐 골프 1.6 블루모션의 연비(21.6km/L)가 1.0L 가솔린 엔진에 4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한 기아 모닝(19km/L)보다 좋은 것이 단적인 예다. 이건 어디까지나 공인연비 기준이므로 경험상 실제 운행 시엔 그 차이가 더욱 벌어진다.

이와 같이 연비가 좋으려면 우선, 휘발유보다는 디젤 엔진이 낫다. 별도의 점화플러그로 연료를 태우는 휘발유 엔진보다 높은 압력에서 고온으로 폭발(압축착화)시키는 디젤 엔진의 효율이 훨씬 높은 건 상식. 현재 선진 메이커를 중심으로 점화플러그가 필요 없는 고효율의 압축착화 휘발유 엔진을 개발 중이지만 아직 상용화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기준으로 보면 디젤 엔진의 효율을 능가하는 휘발유 엔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비에 있어서 엔진 다음으로 중요한… 아니, 엔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변속기다. 변속기는 엔진의 힘을 구동계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우리가 흔히 ‘자동변속기’라고 부르는 AT는 효율이 가장 떨어지는 메커니즘이다. 수동변속기(MT)나 더블 클러치 변속기처럼 기어와 기어가 직접 맞물리는 방식이 아니라, 한쪽 프로펠러로 바람을 일으키면 마주보는 프로펠러가 따라서 돌아가는 원리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힘이 전달되다보니 동력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AT는 잦은 변속보다는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달릴 때 그나마 연비가 좋아지지만 MT나 더블 클러치 변속기는 일정한 속도로 달릴 때는 물론 막히는 시내 구간에서의 잦은 변속 상황에서도 AT보다 높은 동력효율을 보여준다. 특히 더블 클러치 변속기는 MT의 효율성에 AT의 편리함을 더한 것으로 향후 변속기의 주류 메커니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AT보다는 MT를, MT보다는 더블 클러치 변속기가 달린 모델을 고르는 것이 연비향상을 위해서는 훨씬 유리하다.
현재 시판 중인 국산차 중에는 현대 벨로스터가 유일하게 더블 클러치 변속기를 옵션으로 고를 수 있도록 되어 있을 뿐 국내 메이커들의 더블 클러치 변속기 개발과 상용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반면 폭스바겐과 아우디, 포르쉐, 미쓰비시, 람보르기니 등은 국산차들보다 한발 앞서 더블 클러치 변속기를 자사 모델에 적용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휘발유 엔진(LPG 포함)에 AT가 달린 차를 사면서 연비가 좋기를 바라는 건 과대망상 내지 샤머니즘(?)에 가깝다는 소리다. 더군다나 차량을 주로 운행하는 지역이 대도시라면 더더욱. 좋은 연비를 위해서는 디젤엔진에 더블 클러치 변속기를 조합한 모델이 최선이고, 정 휘발유 엔진을 고집하고 싶다면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은 모델을 고르는 것이 그나마 차선책이다.
차체중량 가벼울수록 유리

연료소비를 줄이는데 있어서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의 효율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차의 무게다. 1.8L짜리 엔진을 얹은 로터스 엘리스가 페라리나 포르쉐 같은 고성능 스포츠카 뺨치는 성능을 뽐낼 수 있는 비결은 극단적으로 경량화한 차체 덕분이다. 엘리스의 무게는 860kg으로 경차인 모닝(900kg)보다도 가볍다. 즉 동급의 비슷한 모델이라면 중량이 가벼운 쪽이 연비가 좋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타이어 폭을 줄여 노면과의 마찰 에너지를 낮추는 방법으로 연비를 향상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노면과 맞닿는 타이어 면적을 적절히 확보하는 것은 달리고 돌고 서는 자동차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타이어 폭을 줄이면 연비는 분명 좋아지지만 차체를 노면에 지탱하는 타이어의 접지면적이 좁아져 원활한 제동과 운동성 제어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즉, 비슷한 성능과 연비를 지닌 자동차라면 순정 타이어 폭이 넓은 쪽이 좀 더 제대로 만든 자동차란 소리다.
타이어 폭을 줄여 연비를 향상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꼼수’에 속하는데, 국산차 특히, 경차와 소형차 중에 이 같은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수입차 중엔 한때 푸조와 연비 전쟁을 벌였던 폭스바겐이 2.0L 디젤 엔진을 얹은 5세대 골프에 15인치 타이어를 순정으로 끼웠다가 오너들 사이에서 엔진과 차체의 성능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와 달리 적정 타이어 폭을 유지하면서 회전 및 구름저항을 낮춰 연비향상을 꾀한 제품들은 주행안전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추천할 만하다. 한국타이어 앙프랑, 금호 에코윙, 넥센 N블루에코, 브리지스톤 에코피아, 미쉐린 에너지 세이버, 컨티넨탈 에코 플러스 시리즈 등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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