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마니아의 관심은 온통 아이폰5에 가 있다. 그들만 그런 게 아니다. 경쟁사들도 아이폰5 출시시기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아이폰5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 투자자들도 별로 다를 게 없다. 애플 신제품은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그래서 주가를 조작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퍼트리는 루머가 아닌 한 아이폰5 출시시기를 예측하는 기사를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아이폰5가 애플의 6월 행사와 궤적을 같이 할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애플은 아이폰5에 대해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6월 행사에서 아이폰5를 발표할 것으로 믿으려했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이 행사에서 아이폰 신제품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올해도 그러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이폰5 6월 출시설의 근거는 애플의 신제품 발표 관행 말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근거 박약한 믿음을 흔든 사람은 미국의 애플 전문가인 짐 달림플이다. 그는 애플 소식통의 말을 근거로 6월 행사에서는 어떤 하드웨어 제품도 발표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플이 보낸 6월 행사 초청장도 이 행사가 iOS와 맥 OS X 등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치러질 것임을 암시했다.

흰색 아이폰4 출시설은 아이폰5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거가 또렷하다. 지난 3월14일 애플의 필립 쉴러 부사장은 16세의 한 애플 팬이 트위터에 올린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번 봄에 흰색 아이폰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4월13일엔 블룸버그 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4월 안에 출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구태여 쉴러 부사장의 발언이나 블룸버그의 보도를 부정해야 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에 앞서 출시 여부를 놓고 몇 달 전부터 온갖 소문이 자자했던 미국 버라이즌용 CDMA 아이폰4의 경우 지난 2월10일 출시됐다.
출시가 확실시되는 흰색 아이폰4와 CDMA 아이폰4는 짐 달림풀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다. 또 애플이 아직 아이폰4를 죽일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읽힌다. 사실 아이폰5의 출시는 아이폰4의 죽음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아이폰5가 나온다고 아이폰4가 전혀 팔리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수요의 대부분이 아이폰5로 옮겨갈 것 또한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애플은 아직 그럴 생각이 없고 아이폰4의 시장을 확대할 여지가 더 큰 시점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흰색 아이폰4에 대한 수요가 크리라는 것은 어렵잖게 짐작된다. CDMA 아이폰4도 마찬가지다. CDMA 아이폰4는 1차적으로 1억 명에 가까운 미국 버라이즌 가입자를 목표로 한 것이지만 아직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는 확대 공급되지 않은 상태다. 이 시장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JP모건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 53억 대의 휴대폰 가운데 5억6천만대가 CDMA 칩을 갖고 있다. 또 작년에 팔린 14억대의 휴대폰 가운데 약 6분1이 CDMA 폰이다. 이미 만든 제품을 왜 이 시장에 팔지 않겠는가.
미국 어느 전문가의 주장처럼, 단지 2~4개월 동안 팔려고 이들 제품을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는 게 합당하다.

스티브 잡스의 기본적인 생각을 되짚어볼 필요도 있다. 그는 지난 3월2일 아이패드2를 발표하면서 애플은 단순한 스펙 경쟁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애플은 새로운 쓰임새를 창조해내는 반면 경쟁사들은 PC 시대와 마찬가지로 일부 부품만 갈아 끼워 새 제품이라고 우긴다고 비판했다. 스티브 잡스가 나서서 새로운 쓰임새를 설명한 정도가 아니면 신제품이라고 말하기가 민망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CDMA 아이폰4 발표회를 스티브 잡스가 직접 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건 아이폰4의 통신 칩 하나를 갈아 끼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흰색 아이폰4 또한 스티브 잡스 특유의 설명 없이 지나갈 공산이 크다.
좀 과도한 상상일 수도 있지만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애플은 아이폰4에 비해 ‘혁신’이라고 부를 만한 아이폰5의 요소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혹은 그것을 찾아낸 뒤 개발 등에 몰두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그 혁신의 요소를 찾아내고 구현하는 데 종전에 비해 시간이 길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IT 전문가 마르코 아멘트는 이를 ‘수확 체감(diminishing returns)’이란 말로 설명했다. 혁신을 거듭할수록 혁신의 요소를 새로 찾아내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아이폰4는 어쩌면 요새 유행하는 말로 애플이 만든 스마트폰의 ‘종결자’와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지난해 아이폰4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만든 제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안테나 수신 문제가 우려됐음에도 박박 우겼을 만큼 잡스는 이 제품의 디자인에 감동했다. 앱과 터치스크린이란 새로운 쓰임에다 최상의 디자인까지 결합했다. 더 바랄 게 없는 일이다.

그런데 또 새로운 뭔가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아이폰5의 문제는 그것이다. 애플 철학대로라면 아이폰4에서 숫자 하나를 올려 아이폰5가 되려면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이 필요하다. 그 답이 아주 명확하다면 아이폰과 그 일련번호마저 버린 새 이름이 등장할 것이고, 스티브 잡스가 나설 만큼이라도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면 아이폰5가 될 것이다. 문제는 역시 그 새로운 쓰임새가 무엇이냐는 데에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의 IT 전문지 씨넷이 최근 재미있는 기사를 내보냈다. 소비자가 아이폰5에 바라는 20가지의 새로운 기능을 정리한 것이다. 새로운 게 20가지나 된다면 스티브 잡스가 설명하기에 참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실제로 그 내용을 보면 대부분 스펙에 관한 소소한 업그레이드 사항들로 채워졌다. 스티브 잡스 말로 하면 '반(反) 애플적'이다. 그래도 눈여겨 생각해볼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4G’와 ‘NFC’에 관한 것이다.
4G야 이동통신망을 업그레이드해 통신 속도를 크게 높여주는 기술이니 향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다. 문제는 시점이다. 아직 4G망 구축 사업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폰4를 죽이면서까지 서둘러 이 기능을 업데이트한 신제품을 내놓을 까닭이 있을까. 더구나 애플은 품목이 단출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아직 쓸 수도 없는 미래의 4G망을 위해 4G 휴대폰을 미리 구매해야 한다. 그건 낭비다. 사양보다 쓰임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애플의 경영과 맞지 않는 일이다.
NFC는 10cm 이내에서 이뤄지는 근거리 무선 데이터 통신을 말한다. 여러 용도가 있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해 상점 등에서 결제할 때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보이는 기술이다. 스마트폰을 전자지갑처럼 쓸 수 있게 되니 스마트폰의 활용도를 크게 확대할 수 있는 수단임에 틀임없다. 문제는 아직 스마트폰의 NFC칩을 읽을 리더기를 설치한 업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당장에는 별로 쓸 모 없는 것이다.
4G는 통신 속도를 크게 높여준다는 점에서, NFC는 활용도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향후 반드시 채택할 수밖에 없는 필수 요소들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모든 스마트폰에서 쓸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환경들 때문에 아이폰4는 아직 죽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 점에서 실제 쓸 모보다 스펙만 부풀린 상상의 아이폰5보다 지난 2월14일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로 소란을 피웠던 속칭 ‘아이폰 미니’의 올 여름 출시가 더 애플다울 지도 모른다. 아이폰4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않고서도 저가 아이폰으로 사용자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쓸 모를 키우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이폰5의 단서는 6월6일 발표될 새 iOS에서 찾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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