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창작물을 통해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온 일본 위인 사카모토 료마의 인기가 <료마전> 방영으로 올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심각한 경제 불황에 놓인 일본이 새로운 경제대국 일본 건설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막부 말기에 일본을 근대 국가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한 영웅 료마에게 투영하기 때문이다.

일본 근대 국가로 이끈 인물로 31세에 요절
사카모토 료마는 1836년 토사(지금의 코치현)의 하사(하급무사) 가문에서 태어나 막부 말기에 일본을 근대 국가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가장 크게 평가 받는 업적으로 나가사키에 ‘가메야마샤츄(龜山社中)’ 라는 무역 단체를 설립한 것인데, 이것이 이후 ‘해양대’로 발전했다. 이 해양대가 바로 미츠비시그룹의 전신이다.
료마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것은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젊은 나이에 이룬 업적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살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료마와 함께 했던 유진지사나 해양대 대원들은 이후 메이지 정부의 요직을 맡아 제국주의 일본의 핵심 인물들이 되었지만 료마는 유신 직후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일본을 근대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순수함만이 남고 그 이후의 분쟁과 침략의 역사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은 깨끗한 인물로 남게 된 것이다.
NHK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료마전>은 매회 2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 행진 중이다. 료마 역에는 현재 일본 최고의 인기 탤런트라고 할 수 있는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기용되어 여성 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드라마 방영과 함께 일본에서는 크게 료마 붐이 일고 있어, 연일 료마를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료마와 관련된 이벤트, 의류, 팬시상품 쏟아져
료마 붐에 힘입어 료마와 관련된 이벤트가 곳곳에서 열리고 료마 여행 상품들도 많이 눈에 띄고 있다. 교토의 ‘료젠 역사관’에서는 1월3일부터 5월5일까지 ‘대 료마전’이라는 전시회를 개최 중이다. 사카모토 료마와 관련된 각종 유품과 당시 역사들을 재현한 밀납 인형 등을 전시하는 료마 전시회다.
JR 서일본에서는 ‘료마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이벤트를 개최해 코치현의 료마와 관련된 주요 역에서 휴대전화로 이벤트 사이트에 접속하면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또 ‘canau피아’라는 사이트에서는 사카모토 료마의 일생을 테마로 하는 연속 여행 상품을 판매중이기도 하다. NHK의 드라마 <료마전>의 시나리오 진행에 맞춰서 2주에 한 번씩 1박2일 또는 2박3일에 걸쳐서 료마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당시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이다.
료마를 주제로 한 각종 의류와 팬시상품들도 속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료마의 명언들을 써 놓은 벽걸이천부터 료마 스티커, 료마 손수건, 료마 지갑, 료마 열쇠고리, 료마 부채, 료마 머그컵, 료마 가방, 료마 티셔츠에 건전지를 넣으면 료마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걸어 다니는 료마인형까지 수많은 상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료마의 고향인 코치현에는 료마 덮밥, 료마 카스텔라, 료마 커피 등 무엇이든지 료마의 이름을 붙여서 팔고 있을 정도로 료마의 인기는 대단한 것 같다. 막부말의 주요 인물들은 본래 대중적 인기가 많기는 하지만 사카모토 료마 만큼이나 다양한 상품들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없다.
국가의 위기를 구하는 구세주 이미지 투영
과거에도 몇 번이나 사카모토 료마 붐이 일어났지만 2010년 들어서 다시 사카모토 료마 붐이 일고 있는 것은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며칠 전 자민당을 탈당해 신당 창설을 표명한 하토야마 총리의 동생 하토야마 쿠니오 전 총무상은 자신이 여당에 대항할 세력을 규합하는 사카모토 료마가 되겠다고 말했다. 정치가의 입에서 료마가 거론된 만큼 그가 지닌 상징적 의미는 크다.
과거 일본에는 몇 번의 료마 붐이 일어났는데, 가장 먼저 료마 붐이 일어난 것은 1883년 코치의 <토요신문(土陽新聞)>에 연재되었던 ‘사카자키 시란’의 연재 기획 ‘칸케츠센리노코마(汗血千里駒)’에 의해서였다. 이 연재 기획으로 인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 료마는 일본 근대화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서 추앙받게 된다.
이후 다시 료마 붐이 일어난 것이 1901년 청일전쟁 때였다. 당시 코우켄 황태자비가 꿈속에서 료마를 보았다고 했는데, 이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크게 승리해 일본의 호국신으로 추앙받을 정도였다. 이후 다시 한 번 료마 붐이 크게 일어난 것이 1960년대 초반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에 의해서였다. 경제 급성장 시기에 놓였던 일본은 새로운 경제 대국 일본 건설이라는 의지를 료마에게 투영했던 것이다. 그리고 2010년 심각한 경제불황에 놓인 일본은 다시 한 번 료마의 힘을 빌리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일본인들에게 있어 사카모토 료마는 국가의 위기를 구하는 구세주와 같은 이미지인 것이다. M
/글|김상하(일본 전문 에디터) kori2salj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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