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사태 이후 금융위기 여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올해, 금융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외형확장과 성장, 해외진출에 골몰하던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규제 아래 리스크관리,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성장'을 외치던 목소리는 줄어들고, '소비자 보호'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금융계 내에서도 '위너(승자)'와 '루저(패자)'가 단숨에 바뀌게 됐다.
◆뜨는 별-키코에 울고 미소금융으로 부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서민들을 위해 500만~1천만원 사이의 소액을 대출해 주는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사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극히 소규모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부터 '서민 챙기기' 모드로 전환한 정부 방침에 따라 미소금융사업이 본격 출범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이 미소금융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 저신용 서민들의 '스타'로 떠올랐다. 12월 들어서만 11개 대기업·금융회사가 미소금융재단을 설립했으며, 지역 미소금융재단 서립도 본격화됐다. 김 이사장의 중앙재단은 지역재단이나 사설 미소금융재단의 지원 업무를 맡게 된다.
미소금융 사업의 규모는 일반 은행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지만, 그간 무분별한 대출경쟁으로 서민들의 반감을 샀던 금융회사들의 이미지를 친서민적으로 전환시키는 데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 태산LCD로 인한 '키코(KIKO)' 사태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보며 위기설까지 나도는 등 체면을 구긴 하나금융지주의 이미지 역시 크게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3분기 키코 손실로 인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체면을 구기고 시장의 신뢰도 크게 잃은 바 있다.
그러나 하나금융은 올해 경제회복 기조에 힘입어 흑자로 전환하고, 증자를 통해 M&A 시장에 뛰어드는 등 공격적인 경영행보를 걷고 있다. 하나카드의 지분을 SK텔레콤에 넘기며 통신 금융 컨버전스 서비스의 시동을 걸었고 스마트폰 전용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등 소비자보호뿐 아니라 공격적 경영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는 별 -파생상품 손실에 몰락한 '검투사'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황영기 회장은 금융계에서 '검투사'로 불리며 공격적인 경영의 대표주자로 불려 왔다.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100조원대였던 은행 자산을 취임 이후 두 배로 불려 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해 부동산 담보대출을 크게 늘려, 우리금융을 업계 1위의 지주사로 성장시킨 것도 그의 공이다.
그러나 그 시절 투자했던 고위험 파생상품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부도위험이 큰 모기지채권에 투자하는 CDO·CDS 등의 파생상품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 결국 우리은행에 1조원 이상의 손실을 입혔다. 정상적인 과정이 아닌, 내부리스크 관리체계를 무시한 독단적인 투자판단이었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결국 그는 금융당국에게서 중징계에 해당하는 '직무정지' 처분을 받고 스스로 KB금융지주 회장직을 물러나게 된다. 이를 두고 금융계에서는 "재직시절의 투자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관치금융'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당시 정부가 금융회사의 과감한 투자를 장려한 만큼 이를 따른 황 전 회장을 징계한 것은 정부 스스로 '희생양'을 만들어 면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몰락'은 그간 성장에 치중해 왔던 금융 패러다임을 내실 위주·안정성 위주로 돌리고, 금융회사에게 이익창출 뿐 아니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시발점이 됐다.
◆뜰까? 질까 '오락가락'
올해 주목받았지만, 아직 확실히 입지를 굳히지 못한 금융계 인물들도 눈에 띈다.
강정원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는 황영기 전 회장의 빈 자리를 성공적으로 이어받았으나, 선임 절차에서 잡음이 빚어지며 행보가 불확실해졌다.

특히 최근 금감원 조사 결과 후보 선정 과정에서 사외이사들이 거마비 과다 수령, 인사청탁 등의 불건전행위를 저지른 혐의가 포착되며 금융당국이 사외이사 제도 개혁 방안을 마련 중이다. 사실상 KB금융지주에 대해 금융당국이 견제에 나선 셈.
아직 회장으로 정식 선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년 회장 선임을 위한 임시 주총이 열릴지 여부도 불확실하고, 또 선임된다 해도 내년 중순 부터 시작되는 금감원 종합감사가 남아 있어 '산 너머 산'이다.

김봉수 신임 한국거래소 이사장(최종후보)은 11년만의 민간 출신 이사장 선출로 화제를 모았다. 애초 공무원 출신들이 이사장직을 독점해왔으나, 금융위에서 민간 출신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결국 순수 증권맨 출신인 그가 이사장을 맡게 됐다.
김 이사장은 쌍용투자증권 기획실장, 선경증권(현 SK증권)자산운용담당 이사, 키움증권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온라인 증권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거래소 이사장을 맡는 영광을 안게 됐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도전과제도 만만찮다. 거래소 조직 개혁으로 '방만경영'이라는 주홍글씨를 떼어내야 하고, 조직 통합 이후에도 여전한 노조간 분열도 해결해야 한다. 전임 이사장의 경영공백을 메꾸고 사실상 중단된 사업들에도 힘을 실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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