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국제해킹방어대회 종료를 앞둔 오전 10시 1분전.
간소한 점수차로 엎치락 뒤치락 순위다툼을 하던 한국팀과 스페인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상금 2천만원과 세계 최고 해킹 고수 자리를 건 양측의 한 치 양보없는 싸움이 이어졌다.
그러나 잠시 후, 한국팀에서 기쁨에 찬 함성과 함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스페인팀에서는 아쉬움이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7·8일 양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코드게이트2009' 국제해킹방어대회에서 한국팀인 씨파크(CPark)가 1위를 차지하는 순간 이었다.
이날 오전 10시까지 꼬박 24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대회는 스페인팀과의 치열한 접전끝에 한국팀의 역전승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4시간 동안 거의 한숨도 못잤어요. 인터뷰 끝나면 바로 씻으러 가려고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씨파크팀 팀원(김우현, 박찬암, 조주봉)들은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씨파크팀 조주봉 씨는 "2위를 한 스페인의 우비우비판다스팀은 해커들 사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팀이라 대회 초반부터 막강한 경쟁상대로 생각했다"며 "대회 종료 1분 전에 가까스로 역전승 한 것"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날 씨파크팀은 2,060점으로 1,920점을 기록한 스페인의 우비우비판다스팀을 간발의 차로 따돌리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1,485점을 획득한 포항공대 PLUS팀은 3위를 차지했다.
특별 초청팀으로 본선에 참가,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데프콘 2회 연속 우승팀 l@stplace팀은 아쉽게 순위 안에 들지 못했다.
사실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씨파크팀은 국내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전문 해커로 구성된 팀. 국내 해킹동아리인 '와우해커' 멤버, 해킹 친목도모회 '해커스드림(HSD)' 멤버는 물론 국내 대표 보안회사인 안철수연구소 직원으로 이뤄진 것. 세계 최대 해킹대회 '데프콘'의 한국 대표로 참석한 실력자이기도 하다.
씨파크팀의 해킹 수준을 묻는 질문에 스페인팀의 한 해커는 "나이도 어린데 대단한 기술을 지녔다"며 치켜세울 정도. 그도 그럴 게 씨파크팀의 김우현, 박찬암 씨는 각각 서강대, 인하대의 컴퓨터과에 재학중인 학생이다.
씨파크팀 김우현 씨는 "기존에 해커라고 하면 타인의 시스템에 불법으로 침입해 정보를 빼오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며 "음지에 있는 해커를 양지로 끌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대회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해킹방어대회의 가장 큰 차별점은 바로 공격만큼 방어 기술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
미국인 2명과 한국인 11명으로 구성된 국제보안연구그룹 '비스트랩'이 문제 출제와 함께 공격 역할을 맡았다. 참가한 팀은 공격을 막아내야만 점수를 딸 수 있는 형태다.
l@stplace팀 멤버는 "데프콘에서 풀었던 문제들하고 흡사한 수준이었지만, 난이도가 상당해 마지막까지 고심하며 풀었다"며 "대회 시간 내 다 풀지 못한 문제는 인터뷰 끝나고 호텔에 가서 풀어볼 계획"이라며 학구열을 다졌다.
그는 이어 "해커가 공격자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참가자가 방어하는 형식으로 진행해 방어의 중요성을 부각한 점이 인상깊었다"며 "데프콘에 이어 우승을 노렸지만, 방어를 중시하는 게임 방식을 사전에 몰라 멤버 구성에 전략적인 착오가 있었다(웃음)"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세계 유명 해커들 면면을 살펴보면 다들 내로라하는 보안전문가들. 보안업체 직원, 컴퓨팅업체 매니저, 보안 컨설턴트 등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에서 실력을 키우고 있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실력있는 숨은 보안 고수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과 대우에 지쳐 보안업체에서 일하는 것을 꺼려하는 국내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이름을 떨친 해커들이 보안업체가 아닌 유명 포털, 외국계IT업체, 게임회사, 금융권 등을 훨씬 선호한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씨파크팀 박찬암 씨는 "정보보호 사업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안전문가를 전문 기술자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며 "실력있는 해커를 영입,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준다면 보안 사업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소정기자 ssj6@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