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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작가의 러브레터]오르가즘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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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의 일이다.

문학강좌를 같이 듣던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술을 마시며 오르가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의 여자가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난 결혼생활 6년짼데 오르가즘이 뭔지 몰라...씨X...오르가즘이 도대체 뭐야?"

순간 우리는 물론이고 좌우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다른 사람들까지 조용해졌다. 원래가 좀 다혈질인데다 술을 마시고 흥분하면 목소리가 커지는 그녀는 당시 30대 초반이었다.

오르가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던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고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고 있었지만 선뜻 그 솔직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 전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또 한번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착한 남편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27년째 해오고 있는 한 친구가 느닷없이 우리에게 물었다.

"야...니네들은 오르가즘을 느끼니? 오르가즘이 뭔지 알아? 난 아직도 그게 뭔지 몰라. 모르는 거 같애."

우리는 모두 깜짝 놀라 그 친구를 바라보았는데 역시나 하나같이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문득 그 두 여자의 질문이 생각나서 언제나 친절한 답안을 내놓는 네이버에게 먼저 물어봤다.

네이버 백과사전 왈,

오르가스무스[Orgasmus] - 성행위의 절정기에서의 쾌감. 성감곡선의 정점에 해당된다. 엑스터시(황홀증) 또는 아크메(정점)라고 하는 이 극쾌감(極快感)은 남성은 여성에 비해 급속도로 도달하고 소멸하며, 여성은 일반적으로 완만하다. 또한 남성에 있어서는 이때에 정액이 사출되어 성행위의 목적이 달성된다. 사정(射精)에 따라 야기되는 독특한 쾌감이 바로 오르가스무스이다.

"뭔 소리여????"

나도 이제까지 오르가즘에 대해서 많이 떠들어오긴 했는데 막상 백과사전적 풀이를 보니 뭔가 미심쩍고 불만스럽다. 특히 '남성은 정액이 사출되어 성행위의 목적이 달성된다'라니...

남성들의 성행위의 목적은 사정이라는 말씀인데 이 부분이 사실일까라는 의문이 들지만그것은 남성분들이 판단할 문제이니 참견하지 않기로 하고, 여성의 오르가즘에 대한 설명이 지극히 무성의하다는 데에 주목하기로 하자.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일반적으로 완만하다라는 애매모호한 설명 이외에는 별게 없다.

여기서 나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즉, 여성의 오르가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많은 훌륭한 분들이 여기에 대해서 책도 쓰고 논문도 쓰고 연구결과도 발표했지만 남성이 사정하면서 오르가즘에 도달한다는 사실만큼 분명해서 백과사전에 오를 만한 사실은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여성들의 개인적인 경험담에서는 오르가즘에 대한 다양한 고백들이 나온다.

-난 그이와 키스만 해도, 아니 손만 잡아도 오르가즘을 느껴.

이런 밥맛 없는 얘기를 해서 못 느끼는 여자들의 염장을 지르는 여자들도 있고 오르가즘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얼마나 진하게 느꼈는지 책으로 써서 돈도 벌고 욕도 벌고 질투도 버는 여자들도 있다.

나만 못 느끼는 걸까? 내가 느끼는 게 오르가즘일까, 아닐까? 남자들은 사정만 하면 느끼는 오르가즘을 여자는 왜 어쩌다 한번밖에 느끼지 못하는 걸까? 내 남자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못 느끼는걸까? 내 남자가 테크닉이 없어서 혹은 사랑이 부족해서 못 느끼는 걸까? 왜 나만...왜 나는...그 황홀하다는 오르가즘을 못 느끼는 거야? 왜??????

많은 여자들이 이런 의문을 갖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난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까 더 이상 오르가즘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걸까? 우리 중년을 넘어선 여성동지들에게는 가장 뼈아픈 의문 내지 체념이 생기는 것이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런 질문들에 답해볼까 한다. 성적 경험은 매우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나의 답변에 전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선 오르가즘에 대한 지나친 환상과 기대 때문에 오르가즘을 오르가즘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성을 팔아먹기 위해 동원되는 과장된 수사 때문에 여성의 오르가즘은 '매우 특별하고 굉장한'그 무엇인 것처럼 끊임없이 부풀려지고 있다.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감전된 것 같은, 구름을 밟는 것 같은, 뽕 맞은 것 같은, 화산폭발이나 대지진이 몸 속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그런 굉장한 느낌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오르가즘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남자가 테크닉이 없어서 오르가즘을 못 느낀다기 보다는 성의가 없어서 못 느끼는 경우는 많다. 결혼한지 오래된 여자들끼리 흔히 '저 혼자 좋자고 저 혼자 하고 만다'고 남편을 욕하는 것이 그런 예다. 남자들은 의무방어전이니 결재일이니 운운하지만 여자들은 '웃기지 마라...누군 좋아서 하는 줄 아니?' 라고들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다 식어빠졌지만 사랑하고 있었을 때, 신혼 때의 느낌을 회상해 보라. 그 때도 뭐 그렇게 굉장한 건 없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틈만 나면 서로 접촉하고 싶고 안고 싶었던 그때, 당신이 느꼈던 그 느낌 속에는 분명히 오르가즘의 기억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사정만 하면 오르가즘을 느끼는데 여자는 이따금씩 밖에 느끼지 못한다는 것도 그리 정확한 사실은 아니라고 본다. 남자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정을 하지 않고도 성행위를 즐기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여자들은 원래부터 스킨쉽에서부터 성행위의 여러 과정 속에서 섬세하게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단계적 오르가즘이라고 내 멋대로 부르는데, 아까 우리가 밥맛 없어했던 '손만 잡아도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는 사실 엄청 유능한 여자다.

사랑하는 사람과 성행위를 한다면 마음을 집중해서 성의를 다해 기꺼이 감각을 열어놓고 즐거워지려는 준비를 해야 한다. 여자의 오르가즘은 권투선수가 잽을 톡톡 던져서 결국은 상대방을 케이오시키듯이 작은 쾌감들을 쌓아올려서 커다란 쾌감으로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퍼컷이나 스트레이트도 있다.

크고 작은 매가 모여서 그로키 상태로 몰고 가듯이 크고 작은 오르가즘들을 모아서 큰 오르가즘을 이루어내는 것이 보통이다. 상대 선수를 케이오시킬 때 '결정적 한 방'을 날리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때의 느낌을 슈퍼오르가즘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중년을 넘어선 여성들은 오르가즘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답해볼까 한다. '바람난 가족'이라는 영화를 본 분들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 시어머니 역으로 나왔던 윤여정이 간암으로 죽은 남편은 묻고 와서 아들 내외에게 폭탄발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 남자 있다. 섹스도 해.

-누가? 엄마가?

아들은 대경실색하고 며느리는 재미있어 한다.

이어지는 윤여정의 대사.

-그 사람은 처음으로 날 여자로 느끼게 해줬어.

참고로 이 여자의 나이는 60이 넘었다. 작년에 프로그램 때문에 취재했던 65세의 재혼부부는 한시도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다정하게 손을 잡은 채 인터뷰를 했는데 성생활을 하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매일 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말하는 성생활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늙어갈수록 오히려 성생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등을 긁어주고 손발을 덥혀주고 탄력 잃은 내 얼굴에 키스해 주면서 예쁘다고 말해줄 사람. 오르가즘에 대한 갈증을 성의 있게 조금씩 조금씩 풀어줄 사람. 오르가즘은 느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문영심(피플475(http://wwww.people4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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