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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여우같은 SKT 황소같은 K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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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SK텔레콤이다. 통신 바닥에서는 그 지략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빠른 두뇌로 굵직한 통신 정책을 사실상 입안하고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여론까지 좌우한다. 그 바람에 경쟁 회사의 전략가들은 죽을 맛이다. 그들로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르는 사이에 심지어 SKT의 전략을 도와주는 경우마저 왕왕 있다.

최근 '이동전화 보조금'과 '번호이동성 제도 개선'에 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SKT의 치밀한 전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이번 경우는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남몰래 여론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에 관해서다.

올 들어 방송통신 시장의 키워드는 '결합 상품'이다. 그동안 별개 상품으로 팔던 것을 묶어 요금을 할인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우위를 점한 서비스에서는 고객을 잠그고 열위에 있는 서비스에서는 상대방의 고객을 빼앗아 오는 게 결합상품 시장에서 싸움의 요체다.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요구되는 게임이다.

KT로서는 초고속인터넷과 집 전화 고객을 잠그고 SKT의 이동전화 고객을 앗아 와야 한다. SKT는 반대로 이동전화 고객을 묶고 초고속인터넷과 집 전화 고객을 앗아 와야 한다. KT는 이를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쓰려했다. KTF와 합병해 이동전화 고객을 앗아 오기 위한 예봉으로 세우고 IPTV 사업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초고속인터넷과 집 전화 고객을 잠그려 하였다. SKT는 이에 맞서 옛 하나로테렐콤을 인수해 공격의 첨병으로 내세웠다. 문제는 이동전화 고객을 효과적으로 잠그는 것이다.

최선의 대책은 무엇일까. 그렇다. 번호이동성의 제한이다. 강제적인 잠금 효과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정부가 결정해야하는 제도다. 더구나 후발 경쟁업체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로서도 쉬 결정할 수 없다. 따라서 자연스레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노골적으로 하다간 역효과다. 차근차근 준비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최고의 기회는 적이 먼저 다급해져 섣부르게 공격해올 때 생기는 법이다. 그때 결정적인 카운터펀치가 유용하다. 적의 공격이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면 언제든지 가드를 내려야 한다. 함정은 깊어야 한다. 그래야 깊게 들어온다. 그때 치는 것이다.

실제로 선공은 KT의 몫이었다. 공격의 예봉인 KTF가 맡았다. 보조금 규제 조치가 풀리자 대규모 공세로 나왔다. 올 상반기 이동전화 시장 최대 이슈였던 3G 가입자 유치 전쟁이었다. KTF는 2G에서는 졌지만 3G에서는 1등을 하자는 슬로건 아래 엄청난 보조금을 집행했다. KTF는 3G에서 단박에 1등으로 도약하며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그러나 SKT는 결코 무리해서 추월하지 않았다. 단지 간격을 두고 따라가며 압박만 했다.

그러다 하반기 들어 따라가는 것마저 포기(?)했다. 느닷없이 보조금 삭감 조치를 발표했다. 이번 여론전의 포인트가 여기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하기 힘든 곳은 SKT가 아니라 오히려 공격의 주체였던 KTF다. KTF는 먼저 건 싸움에서 완연한 승세를 굳히지도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멈췄다. 그리고는 적의 전략에 동승했다. '트로이의 목마' 같은 계책을 마련해놓지 않았다면 이렇게 행위해야 할 이론은 어느 병법에도 없다. 혹시 도덕군자를 가르치는 책에는 있을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SKT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으나 실컷 공격하던 KTF는 '트로이의 목마'도 없이 싸움을 멈췄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KTF는 SKT 전략에 말렸다. 사실은 이미 이때는 말렸다기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성급한 공격으로 총알(자금)이 떨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점이 중요하다. SKT가 느닷없이 보조금 삭감 조치를 발표한 까닭은 경쟁을 자제하기 위함이라고 보는 것보다 KTF의 총알이 바닥났음을 이미 훤히 간파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이다.

SKT는 이런 상황을 미리 상정한 것이고 KTF는 생각조차 안한 것이다.

당연히 KTF로서는 그 순간에 SKT가 느닷없이 추격을 포기한 진짜 뜻이 뭔지를 알아냈어야 했다. SKT가 최대 적인 KTF를 마냥 선의로 봐줄 리 만무하다. 특히 적이 공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확실한 승기를 잡지 않고 한 발 물러서는 데는 다른 뜻이 있음을 생각했어야 했다. 그건 아마도 대세를 결정지을 더 큰 전투가 다른 데 마련됐기 때문일 게다. 그게 무엇일까. 최근에야 드러난 바지만 그게 바로 ‘이동전화 번호이동제도의 개선’이다.

SKT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상반기 보조금 혈투 때 KTF의 공격에 맞서 적당한 수준에서 맞대응한 것이고 KTF의 총알이 떨어지자마자 먼저 전쟁을 멈춘 것이다. 그 과정에서 SKT가 얻은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이통 시장의 ‘흙탕물 싸움’을 주도한 것은 KTF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며, 둘째, 자신들은 그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고, 셋째 흙탕물 싸움의 주된 요인이 번호이동제도 때문이라는 점을 홍보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실제로 하반기에 이동전화 회사의 보조금 삭감 조치가 계속 발표되고 보조금이 줄어들자 시장은 안정구도로 접어들었다. 또 보조금 혈투 때 이동통신 시장의 흙탕물 싸움을 질타하던 언론들은 이동통신사의 자정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 이제야 이동통신 회사들이 장기 우량 고객을 더 우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긍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시장과 여론이 SKT가 원하는 구도로 급격하게 바뀐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이동전화 번호이동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기사가 잇따르고 SKT는 그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방통위에 건의문을 낸 상태다. 누구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사이에 번호이동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그러자 뒤늦게 일격을 당한 경쟁 업체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SKT의 뜻대로 될 경우 이통 시장의 점유율 고착화가 더 농후해지고 SKT의 고객 잠금 효과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황소의 거친 숨결이 영리한 여우의 덫에 걸린 형국이다.

(*참고로 이 글은 SKT가 건의한 ‘이동전화 번호이동제도의 개선안’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 쓴 게 아님을 밝힙니다. 이 글은 올 들어 벌어졌던 이통 시장의 경쟁 상황을 나름대로 알기 쉽게 복기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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