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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 정연주 KBS 사장의 진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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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권위는 절대 무시해서 안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또 정권이 내린 판단에는 한 치 오류도 없는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면, 정연주 KBS 사장은 필시 중죄인이다. 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리는 신문이 6일자에서 감사원 자료를 인용해 무려 두 페이지에 걸쳐 정 사장의 잘못 17가지를 대서특필했는데, 이 신문의 보도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실임을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정 사장은 물러나 역사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정 사장 또한 사람인 한 KBS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재직하면서 한 치의 흠 없이 완전무결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 사장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 정권과 몇몇 언론이 과거와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부정할 수 없는 한, 이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역사적 관점을 취하는 일이다. 당장에는 세(勢)대결을 통해 유리한 쪽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것을 승리라고 착각하는 게 과거 우리 위정자의 한계였고, 우리 정치가 후진적이었던 근본적 이유다.

정 사장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파악하려면, 첫째 혹여 있을 지도 모를 정 사장의 잘못이 과연 사퇴해야 할 만큼 중한 범죄인 게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 명백한 것이냐는 사실을 제대로 따져 보는 것이고, 둘째 그 따지는 일을 누가 해야 합당한 것인지를 명백하게 규정하는 것이며, 셋째 합당한 주체가 명백한 중죄를 사실로 입증했다는 전제 하에 사퇴를 처리하는 방법이 법과 민주적 절차에 근거하고 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최소한 그래야만 역사적 서술로 의미 있다 하겠다.

첫 번째 사안은 잘못과 그에 대한 책임의 정도의 문제다. 이를 테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흠결에 대해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머리 숙였다 해서 그것이 곧바로 대통령이 하야해야 할 이유라고 말할 수는 있는 일이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면 정치 공세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쇠고기 수입 파동과 촛불 정국에서 우리 국민은 그렇게 균형을 잡았고, 모르긴 하되, 역사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

정 사장의 문제도 이 관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잘못의 경중을 떠나 감사원이 정 사장의 잘못이라며 잡다하게 늘어놓은 내용들이 앞으로 법정에서 진위를 가려야 할 만큼 현재로서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 이런 문제로 인해 지금 당장 정 사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그가 공영방송의 총 책임자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 처리는 상당히 신중하게 하는 게 맞다. 사실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처리하려 한다면 이 또한 정치 공세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두 번째 문제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언론이라는 데서 나온다. 공영방송으로서의 언론의 기본적인 책무는 아마도 정권을 견제해 국민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다. 따라서 정권이 직접 공영방송 사장의 규명되지 않은 몇 가지 잘못을 핑계로 사퇴를 강요하는 게 온당한 것이냐의 문제가 발생한다. 정권에 의해 임명은 물론 퇴진까지 마음대로 결정된다면 언론의 독립은 애초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임명권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일부 상업 언론마저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청하는 게 우리 언론의 현실인 점을 부정할 수 없다면 정권이 임면을 마음대로 할 때 그 언론의 독립성을 논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 아니겠는가.

따라서 백번 양보해 정 사장한테 어느 정도 잘못이 있다고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감사원, 검찰, 방통위, 문화부 등 정부기관이 총체적으로 나서 정 사장 퇴진을 압박하는 것은 옳다고 말하기에 뭔가 찜찜한 일이다. 찜찜한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아니면 누가 보더라도 정권의 사욕을 의심할 만하다.

셋째 사안은, 정 사장의 잘못이 명백해지고 그것을 판단한 주체의 공정성에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연후라야 고민할 수 있는 질서의 문제다. 명백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법이 정한 바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법치의 근본이다.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감정과 당파적 폭력이 가져올 부작용을 막기 위해 사회적으로 합의한 내용일 테다. 그런데 정 사장 사퇴 추진 과정에 그런 절차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리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봐 아마도 없는 것 같다.

굳이 이렇게 분석해보지 않아도 역사가 이번 사건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어렵잖게 짐작해볼 수 있다. 정 사장 강제 퇴진 조치를 ‘이명박 정부의 KBS 개혁’으로 기록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만약 그렇게 기록되려면, 우선 개혁의 사회적 명분과 이를 위한 행위의 민주적 절차가 입증돼야 할 것이고 그로 인한 긍정적 성과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의 문제야 위에서 말한바 있고, ‘개혁’이 불러올 성과라는 게 무엇인지도 의문스럽다. 정 사장의 큰 잘못 중에 대표적인 게 부실한 경영이라고 주장하니, 돈버는 공영방송? 그게 개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고작 그거 하자고 반정부 세력의 활동을 부채질하며 이 난리를 펴야 하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개혁의 예상 성과를 모르겠고 역사도 그걸 찾아 기록할 만한 게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런 반면에 정권의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KBS는 정부의 시책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 있는 바, 이번 조치에 대해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언론 탄압으로 기록될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국제기자연맹(IFJ)이 정부 정책에 비난 성명을 발표한 것처럼 제3자의 눈은 그렇게 볼 가능성이 높고, 역사는 당대의 관계자보다 제3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판독하는 경향이 크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안타까운 것은 역사는 멀고 권력은 가까워 보인다는 점이다.

정연주 사장의 죄는 다른 게 아니다. 엄혹한 수사 속에서도 특별한 개인비리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집중적으로 매도돼야 하는 것은 ‘일사불란’을 큰 가치로 여기는 정권의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마저 죄라고 주장하는 막무가내가 아직도 통한다.

*이글은 정연주 사장이 KBS 사장 자리의 최적임자라거나, 그가 사장 일을 잘 했다거나, 그의 사장 임명 과정에 한 치의 흠이 없다거나, 하는 것을 주장하는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의 과거에 대한 평가와 상관 없이, 공영방송 사장인 그를 내보내는 방식에 있어 반민주성과 몰역사성을 말하고자 쓴 것이다.(필자주)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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