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린지도 오늘로 38일 째다.
쇠고기 촛불집회는 지난 4월 17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고 보름 후인 지난 5월 2일 처음 시작됐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쇠고기 논란은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선물로 졸속 협상을 했다'라는 정치 공방에 그쳤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논란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온라인 모임들이 형성됐다.
이후 4월 29일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
그 결과 5월 2일 미국산 쇠고기 반대 온라인 모임 연합으로 청계광장에서 첫 촛불집회가 열렸고, 10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1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어 5월 6일 1천500여개(6월 10일 현재 1천700여개) 시민단체들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이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결성하고, 촛불집회를 본격적으로 주도하기 시작했다.
◆쇠고기 졸속 협상이 시민 분노 가중시켜
이에 한미 양국 정부는 촛불집회에 대해 '괴담' 또는 '배후설' 등으로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광고'하는데 주력했지만, 이런 정부의 태도는 시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졸속협상에 대한 논란을 가속화시켰다.
지난 5월 7일과 13~14일 열린 쇠고기 관련 국회 청문회에서 정운천 농림식품수산부 장관,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 김종훈 외교통상교섭본부장 등은 광우병 위험 등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오역 등으로 졸속 협상을 벌인 것이 밝혀져 시민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뀌게 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5월 20일 미국과의 서신교환을 통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수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22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송구스럽다"고 사과까지 했지만, 재협상 불가 원칙은 여전히 고집했다.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이런 이명박 정부의 조치를 '미봉책'이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고, 분노한 시민들은 5월 24일 17번째 열린 촛불집회에서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는 거리집회를 시작했다.
◆촛불집회 '거리로 나서다'
이에 경찰은 불법행위에 대해 엄단하겠다고 경고하며 전경을 동원해 강제 진압에 들어갔다. 이날 연행된 시민들은 30여 명에 이르렀다.
시민들의 분노를 조기에 진화하려던 정부의 의도는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시민들은 경찰의 강경조치에 더욱 반발하며 정부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날을 전후해서 시민들의 구호는 한반도 대운하, 대학자율화, 공공부문 민영화 등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됐다. 시민들 사이에서 '독재타도',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의 탄핵 구호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맘 때다.

정부의 강경대응에도 시민들은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는 거리집회를 계속했고, 수백 명의 시민들이 연행되거나 다치기도 했다.
시민들은 경찰의 강경 진압에도 평화시위의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도, 청와대로 진출하려는 거리시위를 계속했다. 온라인 모임 운영자를 보호하기 위해 '날 잡아가라'고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갔고, 정부여당 홈페이지를 해킹하는 해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음에도 정부여당의 대응은 미숙했다.
5월 29일 정부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 강행'을 발표했고 정부여당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진정될 줄 알았던 촛불집회의 민심이 더욱 악화되고 위기감을 느낀 경찰은 소화기와 물대포를 동원하는 등 진압의 수위를 높여 시민들과 경찰 모두 부상자가 속출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악천후 속에서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숫자는 늘어갔다.
◆'6.10 촛불항쟁'…'제2의 6.29선언'으로 이어지나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부여당은 결국 6월 3일 장관고시를 철회하고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광우병 발병 여부와 관계없이 30개월 령 이상의 쇠고기 수출을 중단해달라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 미국 축산협회 등에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전면 재협상에 대해서는 불가 입장을 고수했고,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정부의 노력을 '기만책'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촛불집회를 주도해온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6월 5일부터 8일까지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를 열고 매일 밤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거리시위를 이어갔다. 그 결과 릴레이 촛불집회 마지막 날인 7일 저녁에는 주최측 추산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정부여당을 긴장시켰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측은 릴레이 집회에 이어, 1987년 6.10항쟁 21주년을 맞는 10일 전국(온라인 포함) 100만 명 규모의 촛불집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촛불집회는 성격이나 의미하는 바가 여느 촛불집회보다 강할 것으로 예상돼 이명박 정부는 중대 국면을 맞게 됐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제2의 6.29선언과 같은 극적인 조치 없이는 국정 위기는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이명박 정부에 조언하기도 했다.
/박정일기자 comj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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