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부 사항들이 의무공시에 묶이지 않아 투자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시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공시만 보면 회사 사정 알 수 없어"
7일 업계에 따르면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 소속 연예인들이 대거 이탈했거나, 이탈할 예정이다. 영화배우 이병헌씨가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대로 떠날 예정이고 이정재씨가 계약기간 만료 여부를 놓고 팬텀과 갈등을 빚고 있다. 또 지난해말 임창정씨, 류승범씨, 신은경씨, 김민희씨 등이 팬텀을 떠났다.
그런데도 팬텀은 이에 관해 공시하지 않고 있다. 연예인 계약 여부는 의무공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 지난달 19일 윤종신씨, 임백천씨 등과 전속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하는 등 '호재'엔 재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팬텀은 소속 연예인들이 대거 이탈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며 이날 8.17% 하락했다. 닷새만에 하락 반전한 것.
타법인 주식 취득도 자기자본 대비 일정량을 넘어서지 않으면 공시하지 않아도 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디시인사이드를 운영하는 디지탈인사이드에 투자했던 넥서스투자는 최근 지분을 전량 매각해 약 10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그러나 넥서스투자는 이에 관해 '계열사 변경'만을 공시했을 뿐 자세한 매각 내역을 알리지 않았다. 의무공시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법 아래에서는 상장사들이 자진공시하지 않으면 얼마에 매매했는 지, 누구와 거래했는 지 투자자들은 파악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달 데일리줌신문사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고 공시한 팬텀은 누구에게 지분을 팔았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전 내역을 찾아보니 데일리줌 지분을 취득했다고 공시한 적도 없었다. 11월에 계열회사 추가 공시만 내놨을 뿐이다. 계열회사 변경은 의무공시사항이다.
공시하지 않아 '묻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장외업체를 지나치게 비싸게 매입해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상장사도 있다.
또 대주주가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도 의무공시에 해당되지 않아 이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휴대폰단말기 제조업체 자강은 지난달말 최대주주가 이희재 대표이사에서 리플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이희재 대표가 보유 지분 중 280만주를 매각해 지분율이 7.25%로 낮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희재 대표가 직접 지분을 팔아치운 건 아니다. 담보권자가 임의 매도함으로써 지분이 감소한 것. 대표의 지분이 담보로 제공될 정도로 재무구조가 '열악'한데도 투자자들은 이를 제 때 파악할 수 없었다.
상여금 지급 역시 의무공시사항이 아니라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 CJ인터넷은 지난달 회사 임직원에 대한 상여금 지급을 공시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주가가 급락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로부터 'IR 미숙'이란 핀잔도 들어야 했다.
실적공시도 손질해야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현행 제도에서는 실적을 따로 공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실적이 나쁜 기업은 감사보고서, 분기보고서 등으로 실적 발표를 대체하고 있다. 되도록이면 부진한 실적을 감추려 하는 것이다. 또 4분기 실적이 나쁘면 지난해 실적으로 '묶어서' 발표하는 등 투자자들을 속이려 하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이밖에 대규모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한 후 이를 번복하거나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뒤 뒤집는 사례도 계속되고 있다. 이쯤 되면 '공시'가 아니라 '주장'인 셈이다.
◆기업부담 덜어주려다 투자자에게 해 끼친 꼴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4월 상장기업의 공시 의무를 대폭 경감해줬다. 공시수가 너무 많아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하고 상장사 입장에서도 번거롭다는 것.
금감원은 또 공시위반으로 관리종목에 지정된 후 누적 벌점을 얻을 경우 퇴출되는 삼진아웃제도를 폐지했다. 삼진아웃제도로 퇴출된 기업은 지난 2000년 이후 2개 기업밖에 없지만 상장사들이 부담을 느끼는만큼 폐지하는 게 낫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삼진아웃제도 폐지 이후 상장사들이 공시를 지나칠 정도로 '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공시를 어겨봤자 받는 처벌이라곤 벌금이나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규제당국이 '위엄'을 찾을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면서 "공시만으로도 기업의 내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 고민해봐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재만기자 ot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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