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 산업 경제
정치 사회 문화·생활
전국 글로벌 연예·스포츠
오피니언 포토·영상 기획&시리즈
스페셜&이벤트 포럼 리포트 아이뉴스TV

[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박태웅 자무스사장

본문 글자 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안녕하십니까,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코너입니다.오늘을 서른 네번 째 릴레

이인터뷰 주인공을 소개하겠습니다.

네오위즈 나성균 사장이 추천한 사람은 ㈜자무스 박태웅 사장입니다.박 사

장은 전자상거래 허브포털인 인티즌을 만든 CEO로 유명하죠.나 사장은 박

사장에 대해 “정신이 어떻게 저렇게 맑을 수 있을 까하는 생각이 드는 선

배”라고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인티즌을 그만둔 게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덕담을 하기도 했습니

다.자무스 박태웅 사장의 테헤란밸리 스토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자무스 박태웅(38) 사장은 최근 회사를 만들고,사업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지난해말 안연구소 투자를 받아 보안업체를 설립,한창 청사진을 그리

고 있다.

국내 최초 허브포털사이트인 인티즌을 설립,주목을 끌었던 그는 지난해 인

티즌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안연구소의 자문으로 일해왔다.서울 양재

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 사장은 스무명 남짓한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열심

히 사업계획서를 짜고 있었다.

회사이름은 '자무스'로 정했다.박 사장의 첫 인상은 공부를 정말 잘했을 모

범생 같은 느낌.자신의 생각을 펼쳐내는 화술은 논리정연하기 그지없다.삶

의 방식이나,일을 대하는 자세에는 나름의 철학과 원칙이 분명할 만큼 반듯

하다.

자무스는 현재 안연구소를 비롯해 벤처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자본금 13

억5000만원규모로 지난해말 출범한 신생 벤처기업.PKI관련 보안사업을 준비

중이다.

기자,그리고 타고난 기획자

hspace="10">서울대 경영학과(81학번)출신의 박 사장은 90년 한겨레신문사

에 입사,취재현장만 10년가까이 누빈 전직 기자출신 벤처기업가다.그 역시

여느 386세대처럼 젊은 시절,민주화라는 시대적 상황에 고민했고,그 연장선

상에서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잘나가던 경제부 기자였다.하지만 박태웅의 앞날은 93년 주간지인 '한

겨레21'창간준비팀으로 발령이 나면서 전혀 생각지 않은 쪽으로 펼쳐진다.

박 사장이 당시 해낸 일은 출판국 하나를 만드는 것과 흡사한 엄청난 작업

이었다.한겨레21을 어떻게 인쇄하고,전국에 배달하고 팔 것인 가하는 일을

총괄,추진했다.

지사를 설립해 전국적인 판매망을 갖추는 일이나,광고영업조직을 만드는

등 그가 한 일은 주간지라는 미디어상품을 팔기위해 인프라를 구축하는 만

만찮은 일이었다.

또 다른 일은 100쪽 풀컬러인쇄.100쪽에 이르는 주간지를 매주 풀컬러로 인

쇄해낸다는 것은 93년 당시로서는 국내 최초의 개념이었다.풀컬러인쇄란 주

간지를 컬러 제작하는 전과정을 컴퓨터로 처리한다는 의미.

당시 주간지를 만들 경우 모든 페이지를 PC로 제작할 수가 없어 상당수 페

이지를 활자나 사진 등을 오려 붙이는 수작업을 통해 제작하는 게 보통이었

다.그 시절 뉴스위크 한글판의 경우 가운데 32쪽이 흑백으로 나올 만큼 풀

컬러인쇄는 상상하기 힘든 작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마다 내놔야하는 주간지 성격상 엄청난 시간을 잡아

먹는 100쪽 풀컬러인쇄로는 도저히 마감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하지

만 박태웅은 모든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밀어붙였다.

그는 외주업체가 몰려있는 충무로를 샅샅이 뒤져 무려 30여개 업체에서 테

스트를 했다.문제는 비용.통상 주간지의 경우 인쇄는 물론 컴퓨터편집까지

외부업체에 맡기는 게 통례였다.하지만 박태웅은 직접하기로 결정하고,회

사 간부들을 설득했다.

"외주와 자체제작시 비용차이가 엄청났죠.안에서 해낼 수있겠더라구요"박

사장은 창간준비를 하면서 맥킨토시에 매달린 끝에 컴퓨터제작과 관련,나름

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실제 당시 충무로에서 주간지 제작에 필요한 웍스테

이션과 출력기,리핑기 등 전 분야기술을 두루 섭렵한 사람은 박 사장이 유

일할 정도였다.

"정말 공부 많이 했습니다.감이 잡히더라구요.하지만 국내 처음하는 일이

라 자체적으로 하기로 결정했지만 걱정 많이 했습니다"늘 사직서를 주머니

에 넣고 다녔다.잘 안되면 언제라도 책임을 질 생각이었다.

당시 주간지 1쪽의 데이터량은 25메가바이트정도.지금으로 치면 대략 2기가

정도 되는 엄청난 규모다.그의 판단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고,한겨레21은 주

간지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컴퓨터그래픽을 처음으로 쓴 잡지였던 만큼 한겨레21은 불티나게 팔려나갔

다.시사저널,중앙일보 등 경쟁지에서 너도나도 따라온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그는 한겨레21창간 일등공신으로 회사내에서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그가 해낸 판매와 광고,제작,편집 등 일련의 일은 회사를 하나 운영하는 것

과 맞먹는 방대한 작업이었다.창간후 그는 1년 6개월간 주간지기사로서 생

활을 이어갔다.

박 사장은 이 때 대중지에서 처음으로 인터넷기사를 소개하기도 했다.넷스

케이프가 아닌 모자이크를 웹브라우저로 쓰던 시절이었다.95년 편집국 경제

부로 복귀하자마자 박태웅에게 두번째 모험이 또 주어졌다.

95년,그는 경영진으로부터 영화주간지 '씨네21'준비팀에서 만든 최종사업계

획서에 대한 평가리포트를 올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놀라운 것은 당시 박태웅의 직관이었다.그는 이미 그 시절,멀티미디어시대

와 컨텐츠의 중요성을 리포트에 잔뜩 담아낼 만큼 '앞을 내다보는'사업가

적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기존 사업계획서는 말도 안되고,사람(기자)과 장비를 따로 쓰고,향후

온라인시대를 감안한 형태의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를 만드는 쪽으로 대폭 사

업계획서를 수정할 경우만 성공할 수있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제출했다.

박태웅의 평가보고서는 그대로 받아들여졌고,씨네21 역시 대성공을 거두며

단기간내에 영화주간지 시장을 석권했다.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class="table1">

colspan="2" class="table1" bgcolor="#F0F0F0">박태웅,그는 누구인가

width="23%" bgcolor="#F0F0F0">

취미

width="23%" bgcolor="#F0F0F0">

운동

width="23%"> 존경하는

CEO

valign="top" bgcolor="#FFFFFF">

63년생.경

북 포항생.경북고,서울대 경영학과졸.한겨레신문사 기자출신.99년 4월 인

티즌을 창업,벤처기업계에 뛰어든 기자출신 벤처기업가.빠른 두뇌회전과 넘

치는 아이디어가 강점.털털하고 활달한 성격에 달변을 자랑한다. 뛰어난

상황판단과 논리정연한 사고의 소유자

바둑(4급), 운동

color="#FF9900">■ 주량

소주 2

병(담배는 처음부터 배우지 않음)

농구를 특히 좋아

함.롤러블레이드

인성정보 원종윤 사장,안연구소 안철수 사장

size="1" color="#FF9900">■ 친한 IT맨

class="table1">나모인터랙티브 박흥호 사장, 코난테크놀리지 김영섬 사

장, 나눔기술 장영승 사장, 네오위즈 나성균 사장

color="#FF9900">■ 북마크

아이뉴스24

size="1" color="#FF9900">■ 10년후 모습

이 회사에서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성공을 이루면 좋은 사람들에게 물려주

고,주위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을 것이다.

박태웅의 선택

다시 경제부로 돌아온 박태웅.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있었다."기사만 잘써서 될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한겨레21과 씨

네21을 창간하면서 그는 스스로 기획업무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기자생활에 미련도 없었다.경영진에 사업을 할 수있게 해달라고 요

청했다.우여곡절끝에 96년부터 업무부로 발령이 났다.스스로 기자생활을 청

산하고,그가 처음 기획한 사업은 생존전략차원의 온라인미디어 비즈니스.

"한겨레가 살아 남으려면 인터넷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쇼핑몰도 가능

할 것같았죠.인터넷은 원가가 적게 들기 때문에 기존 유력 신문사와도 경쟁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곧바로 일을 벌리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보낸 3년은 박태웅의 타고난 사업가적 잠재력을 일깨운 동시에

가능성을 확인해준 기간이었다.카탈로그 통신판매를 기획했다.“물류만 있

으면 쇼핑몰을 할 수있겠더라구요.제품생산업체와 물류업체를 수소문해 연

결한 후,소비자들의 전화주문을 통해 배달,판매하는 개념이었죠”

하지만 내부 반대로 무산위기를 맞았다.경영진에 최후의 제안을 했다.주총

에 앞서 주주들의 위임장을 주주들에게 보내는 서류에 12쪽 통신판매카탈로

그를 넣자는 것이었다.

결과가 형편없으면 포기하고,괜찮으면 하자는 제안이었다.며칠밤을 샜다.결

과는 3억원의 매출.주주들을 대상으로 한 통신판매 매출이 단 숨에 3억원

을 기록하자 회사 경영진들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박 사장은 곧바로 통신판매사업부(한겨레마을)을 발족,카탈로그통신판매 사

업을 시작했다.대성공이었다.98년 매출 54억원을 기록했다.그는 신문사 사

업부 매출을 거의 도맡아 올리고 있었다.

기자에서 사업팀장으로 변신한 박태웅은 두번째 일을 성공적으로 일궈내며

승승장구했다.통신판매사업이 안정단계에 접어들자,그는 만성적자인 여행사

업부를 맡아 또한번 열정을 과시한다.

상품광고 카피,디자인편집을 직접하는 등 그는 편집디렉터도 기꺼이 해냈

다.그는 백두산순례상품을 기획,1회 여행상품을 3000 건이나 판매하는 등

여행사업부 매출을 두배로 올리며 단숨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잇따른 세번의 성공으로 박태웅은 사내에서 '보물'로 통했다.가는 곳마다

신사업을 성공시키고,매출을 쑥쑥 올려 놓으니,경영진의 입장에서는 기특

할 수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경영혁신팀장으로 발탁된 후 사내직원들의 반발과 권근술사장의 퇴

진은 박태웅의 새로운 길을 예고했다."경영혁신을 위해서는 기존 조직에 대

한 평가를 해야하는 데,밥그릇을 의식한 직원들의 반발이 심했죠”

박 사장은 수많은 적들과 '어린 나이에 너무한다'며 반발하는 직원들과의

마찰을 슬기롭게 풀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하지만 당시 박태웅은 정

면돌파밖에 몰랐다.그저 저돌적인 추진력을 갖춘 핵심브레인이었다.

곳곳에서 마찰이 생겼다.와중에 98년 사장선출로 권근술사장이 물러났

다."신문사밥 10년쯤 먹다보니 세상도 많이 바뀌었고,목숨걸 명분도 많이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또 배울만큼 배웠다는 생각도 들고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1년후 한겨레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게 금새 퍼져,외부에

서 스카웃제안이 잇따라 들어왔다.인터넷업체 세군 데서 제안을 받았다.

"자금은 얼마든 지 지원할 테니,제대로된 포털사이트 하나 만들수 있겠

소?"KTB네트워크 권성문 사장은 앞에 앉은 박태웅기자에게 정중하게 제안

을 했다.

"포털은 유행입니다.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가 앞으로 상당히

가능성이 있습니다.단순한 포털이 아닌 이런 개념의 사업이면 한번 해보겠

습니다"박 사장의 제안은 받아 들여졌고,인티즌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화려한 변신,그리고 좌절

99년 4월,박사장은 드디어 테헤란밸리에 입성,벤처기업 CEO로 화려하게 변

신한다.전자상거래와 커뮤니티를 묶는 그의 아이디어는 곧바로 허브포털사

이트 인티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국내 처음으로 허브포털개념을 들고나온 박 사장은 수십여 개 전자상거래업

체들을 모아 쇼핑몰과 커뮤니티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는 모험을 시작했

다.99년 11월 사이트오픈.또다시 돌풍이었다.

hspace="10">인티즌은 2000년 4월 100만회원을 돌파한 데이어 하루 페이지

뷰 700만,알렉사순위 300위 업체로 뛰어오르는 등 놀라운 성장세를 이어갔

다.그는 또 영화예매사이트인 맥스무비를 인수,공동대표를 맡았고,와우북인

수에 이어 임신출산육아사이트인 베베타운을 스핀오프시켰다.

삼성화재로부터 지분 일부를 내주고 100억원의 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그

는 당시 인터넷업계에 허브포털바람을 일으켰다.이후 허브포털사이트는 우

후죽순처럼 등장,현재 15개가 넘는다.

하지만 지난해 4월 KTB에서 전경련 산하 자유기업센터 공병호 소장을 인티

즌 공동대표로 영입하면서 박 사장은 인생의 첫 좌절을 맛보게 된다.신임사

장취임후 창업1세대들이 줄줄이 옷을 벗는 사태가 벌어진 것.

결국 창업멤버들을 지키지 못한 박 사장은 그해 5월 인티즌을 떠났다.그는

그러나 1년이 채안되는 인티즌 재직동안 CEO의 역할이 무엇인 가에 대해 많

은 공부를 했다고 위로한다.“책임지고 일을 해본 게 처음이었죠.스스로 능

력의 한계도 깨닫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후 '조건보다는 철저히 사람만 보고 판단하자'는 교훈을 얻었고,앞으로

는 절대 실수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다.그후 안연구소에 몸담았다.몇

몇 제안이 있었지만 "조건없이 같이 일하자"는 안철수 사장의 제안을 물리

칠 수없었다.

안연구소 자문으로 최근까지 일하고 있다."안 사장에게도 참 많이 배웠습니

다.CEO로서 일하는 자세,조직을 관리하는 노하우,일을 대하는 성실성 등에

놀랐습니다.장기적으로 저렇게 해야 살아남고,성공할 수 있구나하는 것을

느꼈죠"

그는 이런 점 때문에 누구보다도 안 박사를 존경한다고 말한다.테헤란밸리

CEO들은 "박태웅 사장이 왜 KTB네트워크 같은 데서 일하느 냐”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이에대해 박 사장은 KTB 권사장에 대한 외부의 평가를 의식한

듯 "권 사장은 나에게 좋은 기회를 줬고,지금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작

지난해말 창업한 것은 안 사장 도움이 컸다.'무엇이든 기획해보라.지원하겠

다'는 안 사장의 제안을 받고 고민했다."사실 보안쪽 사업을 하지 않고,다

른 쪽을 하면 안연구소에 민폐끼치는 것 아닙니까?”그는 파안대소하며 사

실 그동안 보안쪽 공부를 많이 했다고 털어놓는다.

안연구소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그가 준비중인 것은 역시 보안사

업."안연구소와 은행쪽 일을 같이 하게될 것입니다.안연구소로부터 기술적

지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상당한 부담감속에 살아간다.“말로 표현하기 어려울만치 책임감

을 느낍니다.평생 이렇게까지 부담을 느낀 건 처음인 것같아요"

"수익을 내는 회사로 키울 생각입니다.또 참한 조직을 만들고 싶습니다.멤

버 개개인이 자기발전을 하고,그리고 동료애가 철철 넘치는 기업문화를 만

드는 게 꿈입니다”3,4월부터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신문사 기자에서 벤처기업 CEO로 변신했던 박태웅.그는 번득이는 아이디어

와 넘치는 정열로 끝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젊은 CEO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 사장은 자신을 추천한 네오위즈 나성균 사장에게 "실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그는 자신이 아직 검증된 사람이 아니라고 극구 인터뷰를 사양

했습니다.자격이 없는데,기라성 같은 CEO와 똑 같은 대열로 소개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말입니다.그는 인터뷰후 정말 검증받은 사람이 있다며 다음

릴레이인터뷰 주인공을 추천했습니다.

/김광일기자 goldpar@inews24.com



주요뉴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alert

댓글 쓰기 제목 [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박태웅 자무스사장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댓글 바로가기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TIMELINE



포토 F/O/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