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재미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악성 댓글을 쏟아내는 악플러('악성 리플러'의 준말)들. 그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악플을 쏟아내는 것일까? 악플러들은 기사 속 인물들을 비하하기도 하고, 다른 댓글족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아이뉴스24는 갈수록 관심이 커지고 있는 댓글족 중에서 소위 '악플러'와 접촉했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악플을 집중적으로 올리는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한 결과 이 중 두 명과 e메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악플러들의 인식과 입장을 파악하기 위해 실제로 많은 악플러들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대부분 침묵을 지켰다.
e메일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반응이 재미 있어서 악플을 단다"고 털어놨다.
◆ "내 글에 반응하는 것이 재미있다"
"제 글에 반응하는 것이 재밌더라고요."
한 포털사이트에서 활동(?)하는 19세 '악플러' 김정호씨(남, 가명). 아이뉴스24의 인터뷰에 응한 김씨는 올해 19세로 고등학교 3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본인은 재차 아이디까지 공개해도 좋다고 했으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김 씨는 '일본을 너무나 좋아하고, 한국을 싫어하는' 속성 때문에 대다수 네티즌들로부터 악플러로 분류돼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씨의 블로그에는 수많은 욕설이 난무한다. 그렇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댓글을 남기고 난 다음, 다른 사람이 제 글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재밌더라고요."
김 씨는 독도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 최근 한 프랑스 방송국이 '독도'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일본이 이를 방송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압력을 넣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가 단 댓글은 도발적이다 못해 자극적이었다.
"불쌍한 조선인들. 러시아랑 다른 나라에서 지켜주고, 철도 깔아주고, 근대식 건물 지어주고, 쌀 생산량 15배 올려주고, 우수한 일본 제국인의 아이까지 낳는 기회를 주었는데. 조선인은 일본제국의 다케시마까지 지들 거라고 우기기나 하고, 세상 말세다. 국가의 세뇌교육 받은 조센징들이 정신차려라!"(댓글 내용은 대부분 살리되, 철자법은 일부 바로 잡았다 - 편집자)
6월 18일부터 8월 31일까지 그가 작성한 댓글은 모두 68개. 대부분의 댓글들이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다. 그는 정말 일본을 좋아하고 한국을 싫어하는 걸까?
"가끔은 제 생각일 때도 있지만 주로 재미로 올리는 경우가 많아요. 댓글을 달기 전에는 정말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었는데, 댓글을 쓴 후로는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미도 느끼죠."
기사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으며 그것에 중독 됐다는 것. 실제로 조국에 대한 증오심이 뿌리깊어서 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반한 감정을 자극할수록 반응이 커지고, 바로 그런데서 오는 재미를 즐긴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일부러 나쁜 척 하는 위악(僞惡)의 심리다.
그가 댓글을 쓰는데 쏟아붓는 시간은 하루 5시간 정도. 여러 개의 아이디로 하루에만도 평균 무려 50~60개의 댓글을 달고 있다. 댓글을 한 달 평균 70건 이상 올리면 '슈퍼 댓글족'이라고 하는데, 이 기준에 비춰보면 김 씨는 '슈퍼 울트라 댓글족'인 셈이다.
인터넷 속에서는 수백명의 사람들과 말싸움을 즐기는 김 씨. 하지만 평소 그의 성격은 내성적인 편이라고 했다.
"평소 성격은 활발함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익명의 인터넷 세상과는 반대로 주위 사람들은 저에게 소심하다고들 많이 하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듯, 그가 생각하는 인터넷의 매력은 익명성이다.
"댓글의 매력은 익명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이 실시간으로 내 댓글을 읽고, 그에 대한 댓글을 단다는 게 커다란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의 댓글을 보고 다시 반박하는 댓글을 달기도 하고, 또 비하하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미 댓글에 중독돼 있다고 털어놨다. "댓글의 반응을 즐기는데 중독이 됐어요. 세월이 흘러도 계속 댓글족으로 활동할 겁니다."
◆ "가식 보일 땐 악플 단다"
악플 공세를 퍼붓는 상당수 댓글족들은 김 씨와 비슷한 심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주장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악플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악플러에 가깝다고 한 컴퓨터 관련 자영업자인 박해남씨(가명, 38세, 남). 그는 "댓글을 달 때 배설의 쾌감같은 것을 느낀다"면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박 씨는 주로 연예 기사에 악플 공세를 한다고 털어놨다. 연예인을 비하하거나, 모독하는 내용의 댓글을 쓴다는 것.
그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여론을 조성하고 홍보성으로 거짓말하는 것이 빤히 보일 때 댓글을 답니다. 화장실벽에 낙서하는 심리랄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자신이 악플러라고 인정했다. "연예기사 쪽은 거의 악플입니다. 왜냐하면 홍보성 거짓말이 빤히 보이니까요. 정치면에는 평소 내 생각을 밝힙니다."
김 씨와 마찬가지로 박 씨 역시 댓글의 내용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발언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싫은 사람은 안 보면 그만이죠. 인터넷 댓글 가지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수많은 미성년자들 또한 책임감을 느끼고 댓글을 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악플러들은 관심받고 싶어한다"
고려제일신경정신과의 김진세 원장은 "익명성을 통해 개인이 갖고 있는 정체성이 여러가지 댓글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때로는 나쁜 마음을 투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악플러들은 댓글을 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면서 "그들에게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악플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 가장 좋다"고 덧붙였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도 "악플러들은 자신이 믿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며 상대에게 강요한다"면서 "댓글은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는 하수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댓글이 토론보다 쉽고 편하게 자기 감정을 배출할 수 있기 때문에 호응이 높다"면서 "특히 한국인들은 생각 공유가 힘들고 자기 감정을 배출하는 것을 즐긴다"고 견해를 밝혔다.
황 교수는 또 "악플러의 경우 무엇보다 관심을 받으려는 심리가 강하다"고 덧붙이면서 "그러나 쉽게 질리는 한국인의 행동패턴을 볼 때 결국 댓글 이용자도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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