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독과점 사업자가 원가가 내려도 가격을 내리지 않고 버티는 행위가 가격남용으로 규율된다. 사문화됐던 가격남용 조항은 성립 요건이 '현저한 상승'에서 '상당한 상승'으로 완화된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소비자 착취행위를 규정하는 조항도 처음 생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6일부터 12월 16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를 다루는 시행령 제9조는 2001년 이후 개정된 적이 없다. 공정위는 법제처 심사를 거쳐 2027년 상반기 중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가격남용 규정이다. 공정거래법은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유지·변경'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시행령은 이 가운데 '변경'만 규정하고 있다. 법이 위임한 범위를 시행령이 스스로 좁혀 놓은 셈이다.
개정안은 가격남용 유형을 두 가지로 나눴다. 첫째는 가격을 공급 비용보다 상당히 높게 정하고, 그 가격이 다른 시장의 같은 상품이나 유사 상품의 통상 가격보다도 상당히 높은 경우다. 해외보다 국내 판매가를 부당하게 높게 매기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수급이나 비용 변동에 비해 가격을 상당히 올리거나, 근소하게 내리거나, 그대로 유지하는 행위다. '유지'가 새로 들어갔다. 원가가 오를 때는 바로 가격을 올리고, 원가가 내릴 때는 오른 가격을 유지하는 행위를 겨냥한 것이다.
성립 요건도 바뀐다. 현행 시행령은 가격의 '현저한' 상승을 요구한다. 공정위는 "현저성의 입증이 지나치게 어려워 가격남용 조항 자체가 사실상 사문화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업활동 방해 규정은 체계를 다시 짠다. 현행 시행령에 있는 방해 유형은 원재료 구매방해, 필수인력 채용, 필수요소 접근제한 등이다. 거래거절이나 차별 같은 유형은 하위 고시인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심사기준'에만 있다. 그런데 실제 집행은 고시 유형이 24건으로 시행령 유형 6건보다 훨씬 많았다.
개정안은 거래거절, 타당성 없는 조건 제시, 가격·거래조건 차별, 불이익 강제를 시행령으로 끌어올렸다. 집행 실적이 거의 없는 필수인력 채용은 고시로 내린다. '원재료 구매방해'는 '유·무형의 재화 또는 용역에 대한 구매·접근·이용 또는 이동 방해'로 바뀐다. 제조업을 전제로 한 조항을 전 산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넓힌 것이다.
새로 생기는 유형은 세 가지다. △자기 상품을 공급하면서 다른 상품을 자기나 자기가 지정한 사업자와 거래하게 하는 경쟁제한적 끼워팔기 △거래상대방과 거래하면서 생성하거나 수집한 비공개 정보를 그 상대방과의 경쟁에 부당하게 이용하는 행위 △거래상대방이 자기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거나 소비자에게 정보를 주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 등이다.
공정위는 "현행 시행령 대부분은 전통적 제조업을 기반으로 마련돼 새로운 유형의 남용행위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공정위는 특정 업종을 지목하지 않았다. 다만 새 유형은 플랫폼 거래 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입점업체의 판매 데이터를 자체 상품에 활용하는 행위나, 입점업체가 외부 채널로 소비자를 유도하지 못하게 막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지난 6월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의 최혜대우 요구 사건에서 두 회사의 동의의결 신청을 기각하고 제재 절차에 들어갔다. 쿠팡이츠에 대해서는 끼워팔기 혐의도 함께 심사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소비자이익 저해행위'를 금지하고 구체적인 유형을 시행령에 맡겼다. 하지만 시행령에는 해당 유형이 없었다. 공정위 스스로 '입법 공백 상태'라고 표현했다.
개정안은 제9조 제6항을 새로 만들었다. 소비자에게 타당성 없는 거래조건을 부과하는 행위와, 소비자에게 현저히 불리하게 품질을 떨어뜨리는 행위가 포함됐다. 가격은 그대로 두고 품질을 낮추는 이른바 '스킴플레이션'도 규율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소비자의 선택을 부당하게 제약하거나 현저한 불이익을 주는 행위도 금지 유형에 들어갔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