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재의 족보 이야기] ② 안동권씨족도와 안동권씨세보

[이양재의 족보 이야기] ② 안동권씨족도와 안동권씨세보

[아이뉴스24 박정민 기자] 안동 권씨(安東權氏)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문의 하나이다. 시조 권행(權幸)은 고려 태조(太祖, 재위 918~943) 왕건(王建)의 개국공신 김행(金幸)인데, 고려 태조로부터 권씨의 성을 하사받아 권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 후손들이 대대로 권씨의 성을 사용하였다.

1454~1456년 사이에 만들어진 '안동권씨족도'. [사진=한국족보유산센터]

안동권씨족도(安東權氏族圖)

1454년부터 1456년 사이에 작성한 '안동권씨족도'가 현전한다. 이 족도는 사대부 문중에서 만들었기보다는 조선 왕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안동권씨족도는 권여온(權呂溫)을 기점으로 4대의 내외 후손들을 수록한 족도이다. 크기는 세로 61.3cm, 가로 219.8cm이며, 조선 초기(1454~6년경)에 제작되었다. 1401년 '해주오씨족도'에 비하면, 이 족도는 초고를 만든 후에 비단 바탕에 붉은 괘선을 그려 그 행에 계보를 정서(淨書)했으며, 궁중의 격식에 따라 가늘게 자주색 비단을 댄 장정을 하였다.

이를 보면 이 안동 권씨의 족도(族圖)는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 재위 1452~1455)의 혈통을 밝히기 위해 재위 기간에 왕실에서 작성한 단종의 외가 계통 계보(가계도)로 보인다. 국가 차원에서 제작한 현존하는 족도로는 가장 오래된 족도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작성한 것이기는 해도 이 족도의 계보는 고려 말에 작성된 사가(私家)의 것을 가져다 정리한 것임은 분명하다.

안동권씨족도에는 문종의 비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안동권씨 현덕왕후(顯德王后)의 고조인 권여온(權呂溫)과 그의 자녀 자손 340여 명의 관계를 명시한 족도이다. 그러나 이 족도에는 권여온 후손인 현덕왕후와 단종이 원래 포함됐었지만, 이들이 사육신 사건과 관련해 폐위됐기에 의도적으로 그 이름을 떼어낸 흔적이 있다.

한편, 1476년 '안동권씨세보(安東權氏世譜'(성화보)에도 권여온 및 권백종(權伯宗)의 가계 일부가 작성되어 있으나, 이들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안동권씨세보에서는 이들이 사육신 사건으로 폐위되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안동권씨족도는 처음에는 권여온을 기점으로 단종을 포함한 내·외손들을 수록한 족도의 상태로 만들어졌지만, 앞부분이 떨어져 나가 손상된 상태이다. 하지만, 이 족도는 자녀를 출생 순에 따라 기록하였고, 각 인물은 이름과 관직만을 소략하게 기재하고 있다. 이것은 14~16세기의 전형적인 족도와 세보, 족보의 등재 형식이다.

그런데, 이 단종의 외가 족도 이외에도 경주 옥산 여주 이씨 독락당에 1600년대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월성손씨(月城孫氏)와 안동권씨족도(安東權氏族圖)' 합부 1점이 소장돼 있다. 여주 이씨 이번(李蕃, 1463~1500)이 처가인 경주 손씨(慶州孫氏) 손사성(孫士晟) 가계의 족도와 손사성의 처가 안동 권씨 권명리(權明理) 가계의 족도가 열록(列錄)되어 있다. 이에 관해서는 '여주이씨족도'와 '경주손씨족보'를 다루며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1476년 편찬된 '안동권씨세보' 초간보, 일명 '성화보'. [사진=한국족보유산센터]

안동권씨세보(安東權氏世譜) 초간보(성화보)

1476년 '안동권씨세보(安東權氏世譜)'는 목판본 3권 3책이며,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엽광곽은 31*23.5cm이다. 서문은 11행20자이며, 계보는 6단 횡보(橫譜)로 하였고, 판심은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다. 책 크기는 42.5*29cm이고 오침(五針) 선장본(線裝本)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전하는 최고본 세보(世譜)로서, 일명 '성화보(成化譜)'라고도 하는 초간보이다.

안동권씨세보 초간보는 조선 초기에 의정부 좌찬성과 예조판서를 지낸 바 있는 권제(權踶, 1387~1445)가 중국 소동파(蘇東坡)의 '소씨보(蘇氏譜)'를 모방하여 편찬한 것을 그의 아들 권람(權擥, 1416~1465)이 자료를 수집하여 보완하였으나 일을 마치지 못하고 사망하자, 권제의 생질인 대제학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상주판관 박원창(朴元昌)과 대구부사 최호원(崔灝元, 1431~?)의 도움을 받아 다시 편집, 교열한 뒤 1476년에 경상감사 윤호(尹壕, 1424~1496)를 시켜 안동부(安東府)에서 간행하도록 하였다. 편찬부터 간행까지 무려 30년이 넘게 걸렸다.

이 족보는 자(子)와 녀(女)를 등재하는 데 있어 출생 순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딸을 등재할 때는 여부(女夫)라 쓴 다음에 사위의 성명을 썼다. 또한 딸이 재혼하였을 경우 후부(後夫)라 하여 재혼한 남편의 성명도 함께 등재하고 있다. 또한 본손(本孫)뿐만 아니라 편찬 당시까지 출생한 외손도 본손과 같이 대를 이어서 전부 등재하고 있다. 모두 약 9000명의 인물이 등재되어 있는데, 자녀가 없는 사람은 이름란 밑에 '무후(無後)'라고 기록하였고, 양자한 사실은 한 건도 찾아볼 수 없다.

태조(재위 1392~1398)로부터 1481년(성종 12)까지 90년간에 치른 과거 74회에 걸쳐 급제한 사람의 수가 1794명이었는데, 이 중 성화보에 등재된 인물이 901명으로 전체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 고위 관리로 등용된 사람이 거의 70%에 이른다.

성화보는 본손과 외손 모두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므로, 고려 중기 이래 조선 초기까지 활약한 여러 성씨의 만성보(萬姓譜)라 평가할 수도 있다. 이보다 상당히 늦은 16세기나 17~18세기에 족보를 편찬하여 초간보를 간행한 여러 문중의 상대(上代) 기록도 담고 있어, 그 여러 문중도 초보로서의 족도가 이미 안동권씨세보 초간보 이전에 정리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성화보는 현전하는 15~17세기 옛 족보의 전형적인 모본(母本)이라 할 수도 있다.

성화보는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간행본 족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으며, 1476년도에 처음 판각한 판목으로 인쇄한 초판본이다. 인쇄된 글자 획을 살펴보면 (떨어져 나간) 목니가 거의 없는데, 이것으로 보아 1476년 판각 후 20~30년 이내에 인출한 거의 완벽한 고본(古本)이다.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1654년 편찬된 안동권씨세보 재간보 일명 '삼찬보'. [사진=한국족보유산센터]

안동권씨세보 재간보(삼찬보)

1476년 안동권씨세보 초간보가 목판본으로 간행된 이후, 재간보는 초간보가 나온 지 178년 후인 1654년에 목판본 1책으로 간행한다. 초간보와 재간보 사이에 유성룡의 문인인 학자 권기(權紀, 1546~1624)에 의하여 재간보 편찬이 시도된다.

시조 권행의 23대손 권기는 1588년에 아버지의 명으로 재간보 편찬에 착수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초고를 잃는다. 이후 도원수 권율(權慄, 1537~1599)과 안동권씨 문중의 합의를 얻어 8년 만인 1605년에 초본을 완성한다. 1476년 초간보가 나온 지 129년 만이다.

그러나 당시 전란 직후의 어려운 사회 · 경제적 사정으로 실제 간행되지는 못하고 초고본으로만 전해지다가, 1654년 외손은 제외하고 본손(本孫) 중심으로 가계를 추려서 1654년 갑오보를 간행한다.

본손 중심의 족보 편찬은 1613년에 쓰인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의 '신편광주이씨동성지보' 서문에 의하면, 1562년에 이준경(李浚慶, 1499~1572)이 편찬한 광주이씨의 '광릉세보(廣陵世譜)'부터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본손 위주의 계보는 1562년으로부터 92년 후 1654년 안동권씨 재간보가 나오기까지는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었고, 일부 문중에서는 17세기 말 까지도 외손을 상세하게 다룬 족보를 출간하였다. 이것은 15~16세기 초기 족보를 17세기에서도 그대로 전승하였기 때문이다.

이 갑오보가 세 번째로 편찬하였으나, 판본으로는 재판본이다. 1476년 초간보가 나온지 178년 후이다. 1605년에 편찬한 초고본은 현전이 영본(零本) 1책이라도 확인 된 바 없고, 1654년 갑오보 만이 1책 현전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양재 한국족보유산센터 대표. [사진=한국족보유산센터]

◇이양재 한국족보유산센터 대표는?

이양재 대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애서운동가이자 계보학자·회화사학자다. 1990년 한국애서가클럽 상임이사, 2000년 한국고전문화진흥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세계고서연맹 정회원, 고려미술연구소 대표, 한국족보학술위 상임위원장, 혜원신윤복기념사업회 상임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애서운동가 백민 이양재의 옛 족보이야기', '고려불화와 돈황사경을 찾아서', '오원 장승업의 삶과 예술', '제주미래담론', '안견 재조명' 등이 있다.

/박정민 기자(pjm8318@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