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문채린 기자] 1973년, 열일곱 살 소년이 고등학교 졸업장 한 장을 들고 부산은행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학 졸업장도, 든든한 배경도 없었다. 그 소년은 53년이 지난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을 경험한 금융인이자 『커리어 서바이벌』의 저자 신동기 레이니어파트너스㈜ 사장이다.
신 사장은 부산은행에서 금융 인생을 시작해 뱅커스 트러스트와 도이치은행, 골드만삭스 등을 거쳤다. 뉴욕과 서울, 홍콩을 오가며 일했고, 53년 동안 열두 번 명함을 바꿨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단순한 성공담이 아닌 '생존의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겉으로는 순탄한 성장 과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기와 좌절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던 순간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 사장은 출발부터 불리했던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며 "결핍은 벽이 아니라 엔진이었다"고 강조했다.
고졸 행원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하면서 공부했고, 영어도 단순한 시험 과목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무기로 익혔다. 특히 어머니가 들려준 "되로 배워 말로 쓰고, 말로 배워 섬으로 써먹어라"는 말은 53년 동안 그를 이끈 원동력이 됐다.
가장 큰 위기는 도이치은행을 떠나야 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해고된 지 72시간 만에 호주 NAB은행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급여는 이전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지만, 업무에 임하는 자세와 실력만큼은 줄이지 않았다.
이후 골드만삭스 홍콩에서 도이치은행 시절의 두 배에 달하는 급여를 제안받고 전무로 합류했다.
신 사장은 이 경험을 통해 조직을 떠났다고 해서 개인의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경쟁력은 현재의 자리를 지키는 능력뿐 아니라, 자리가 사라진 뒤에도 다시 길을 만들어 내는 힘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사람의 중요성이다. 시험을 앞두고 기출문제지를 건넨 선배, 서울행 기차표를 선물한 후배, 자신을 서울 국제부로 이끌어 준 상사 등 인생의 고비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신 사장은 힘든 순간일수록 혼자 견디기보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이 자리를 잡은 뒤에는 다음 사람에게 기차표 한 장을 건네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흔이 된 지금도 그는 투자 업무를 이어가며 웹소설을 쓰고 인공지능(AI)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배우기를 멈출 때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신 사장은 "명함에는 유효기간이 있지만, 이름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며 "어떤 위기 앞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커리어 서바이벌』에는 17세에 부산은행에서 금융 인생을 시작해 도이치은행 뉴욕·서울·홍콩과 골드만삭스 홍콩 등 글로벌 투자은행을 거치기까지, 53년간의 커리어 경험과 위기를 극복한 과정이 담겼다.
그는 아직 자신의 명함이 없는 청년들에게도 작은 약속을 지키고 서툰 일을 하나씩 익혀가라고 당부했다. 오늘의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의 첫 장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인천=문채린 기자(crmo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