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영국이 영주권 취득에 필요한 거주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다만 고소득자는 3년, 인력난이 심각한 돌봄 노동자는 5년으로 예외를 뒀다.
복지 지출을 줄이면서 필요한 노동력은 확보하려는 조치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주 종속과 노동 착취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영주권 취득에 필요한 기본 거주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며 이미 영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
핵심은 경제 기여도다. 연소득 12만5000파운드를 넘는 고소득자는 3년 만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연소득 5만271파운드 이상 근로자와 의사·간호사·교사 등 일부 공공서비스 종사자는 5년이 적용된다.
반면 별도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노동자는 기본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범죄 경력과 영어 능력, 세금 관련 채무, 사회보험료 납부 이력 등도 심사한다.
샤바나 마무드 영국 내무장관은 "가장 많이 기여할수록 가장 빨리 정착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고 밝혔다.
돌봄 노동자는 예외⋯인력난에 한발 물러서
주목할 부분은 돌봄 노동자에게 적용한 예외다. 영국 정부는 당초 돌봄 노동자의 영주권 취득 기간을 최대 15년으로 늘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노동계와 집권 노동당 내부에서 반발하자 기존 5년을 유지하기로 했다.
예외 대상은 2025년 5월 이전에 입국해 비자 요건을 충족하고, 연소득 2만5000파운드 이상을 받는 돌봄 노동자다.
정부가 이들에게 예외를 두는 까닭은 인력난 때문이다. 영국 보건정책 연구기관 킹스펀드(The King's Fund)에 따르면 2025~2026회계연도 돌봄 분야 신규 인력 중 외국인이 47%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돌봄 분야에서는 6만5000명 규모의 인력 부족이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외국인 인력 유입마저 줄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해 7월 해외 돌봄 노동자의 신규 채용을 막았기 때문이다. 킹스펀드는 해외 출신 돌봄 인력 신규 채용 규모가 2023~2024회계연도 10만5000명에서 2026~2027회계연도 1만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50만명 취득 지연⋯노동 착취 우려 ↑
영국 정부는 이번 개편으로 외국인 50만명 이상의 영주권 취득이 늦춰질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통해 수십억파운드 상당 복지 지출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영주권 취득이 늦춰지더라도 외국인 체류 규모가 곧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내무부는 대상자들이 임시 비자를 갱신해 계속 체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영주권 취득 전까지는 취업비자 후원 등 체류 조건에 따른 제약이 유지된다.
이 경우 외국인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의존하는 기간도 길어진다. 영국 하원 내무위원회는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영주권 취득을 늦추기 위해 임금 인상을 억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영주권을 취득하면 비자 제약 없이 이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 부당 대우도 확인됐다. 영국 정부는 최근 관련 규정을 위반한 고용업체 약 1800곳의 비자 후원 자격을 박탈했다. 지난달에는 고용주가 돌봄 노동자에게 비자 유지를 조건으로 매달 400파운드를 요구한 사례도 적발됐다. 해당 노동자는 근무 기회를 거의 받지 못한 채 비자 취소 위협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정 절감 효과에 대해서도 이견이 나왔다. 영국 싱크탱크 공공정책연구소(IPPR)는 영주권 취득을 늦추면 단기적으로 복지 지출은 줄지만, 장기적인 재정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영주권 취득을 미뤄도 노동자가 은퇴한 뒤 받을 연금과 의료서비스 비용은 발생하기 때문이다. IPPR는 2026~2030년 영주권을 취득할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인 노동자와 이들 성인 가족이 영국 재정에 기여할 금액을 1150억파운드로 추산했다. 이들이 납부할 세금 등 재정 기여가 공공 지출을 그만큼 웃돈다는 의미다.
IPPR는 "단기적으로 복지 지출을 줄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재정 부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취득 시점과 관계없이 향후 연금과 의료서비스 등에 따른 지출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