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3일부터 5일까지 한국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위한 연례협의를 진행한다고 재정경제부가 3일 밝혔다. 협의단은 토마스 룩마커(Thomas Rookmaaker) 국가신용등급 아시아태평양 총괄과 사가리카 찬드라(Sagarika Chandra) 국가신용등급 담당 이사 등으로 꾸려졌다. 협의단은 재경부와 기획예산처, 통일부, 한국은행,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을 찾는다. 정부는 이형일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과의 대면 면담도 추진하고 있다.
재경부는 이번 협의 결과를 반영한 등급 평가가 올해 4분기 중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피치의 직전 평가는 지난 1월 30일이었다. 당시 피치는 한국 등급을 AA-, 전망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예상대로 4분기에 발표가 나오면 1년 안에 두 번째 평가가 된다.

협의의 핵심은 재정이 될 전망이다. 피치는 이미 2027년 예산안에 대한 판단을 내놓았다. 정부가 예산안을 의결한 지 1주일 뒤인 9월 8일(현지시간) 발간한 보고서다. 제목은 '한국 2027년 예산, 지표는 강화됐지만 개선은 일시적일 수 있다'였다.
피치는 우선 재정지표가 예상보다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내년 총지출을 올해 본예산보다 12.8% 늘린 821조원으로 잡았다. 같은 기간 국세수입은 390조2000억원에서 584조4000억원으로 49.8% 늘어난다고 봤다. 세수 증가 속도가 지출 증가를 크게 앞선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3.9%에서 0.1%로 줄어든다. 피치가 재정 성과를 볼 때 선호하는 통합재정수지로는 GDP 대비 1.9% 흑자다.
국가채무 전망도 피치 예상보다 낮다. 정부는 2027년 국가채무를 1519조8000억원, GDP 대비 48.3%로 제시했다. 피치의 기존 기본 전망은 1542조5000억원, 51.7%였다. 피치는 기본 전망대로 가더라도 ‘AA’ 등급 국가들과 비슷한 추세이고 중간값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했다. 현재 등급이 어느 정도의 부채 증가는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피치는 지표 개선이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수 증가가 AI·반도체 실적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피치는 법인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들었다. 세수 증가가 소수 업종에 쏠려 있는 만큼 실적 증가세가 꺾이면 재정지표 개선도 일시적으로 끝날 수 있다고 봤다. 반도체 세수 효과가 사라지면 재정적자는 다시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흑자는 구조적 변화가 아니라 이례적으로 강한 경기적 세수 여건을 반영한 것이라는 진단이다.
피치가 꼽은 진짜 쟁점은 지출의 효과다. 피치는 중기적으로 신용에 미치는 영향은 일시적인 재정지표 개선보다 지출 확대가 한국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는 1월 평가에서 밝힌 등급 하향 요인과 같은 맥락이다. 피치는 당시 재정 투자를 늘려도 잠재성장률은 높아지지 않고 정부부채만 계속 늘어나는 경우를 하향 요인으로 꼽았다.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2.1%에서 1.9%로 낮췄다.
정부가 새로 만드는 기금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부는 내년 초과 세수 가운데 약 162조원(GDP 대비 5.4%)을 신설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한다. 이 가운데 약 45조원은 2027년 예산안에서 성장산업, 지역 발전, 교육·청년 사업 등에 쓰인다. 피치는 기금을 잘 운용하면 반도체 경기에 따른 재정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고 봤다. 이번 협의에서 기금 운용 원칙이 집중 점검 대상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성장률 전망도 크게 고쳐야 할 상황이다. 피치는 1월 한국의 2026년 성장률을 2.0%로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내놓은 전망치는 3.3%다.
피치는 2012년 9월 한국 등급을 AA-로 올린 뒤 14년째 같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3대 신평사 가운데 가장 낮다. S&P는 지난 4월 한국 등급을 AA(안정적)로 유지했다. 무디스의 Aa2 역시 AA에 해당한다. 성장률이 오르고 부채비율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피치가 등급이나 전망을 바꿀지도 관심사다. 다만 9월 보고서의 논리를 따르면 일시적인 세수 효과만으로 등급이 오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방문 기관에 통일부가 들어간 점도 눈에 띈다. 피치는 1월 정부의 긴장 완화 노력에도 북러·북중 관계가 강화되고 있어 단기간에 긴장이 완화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피치 협의단의 방한은 IMF 연례협의(3~17일)와 일정이 겹친다. 경제부총리와 재경부는 같은 주에 두 국제기관을 상대로 한국 경제를 설명해야 한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