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아이] 의회 뺏겨도 정책은 밀어붙인다⋯트럼프의 '플랜B'

[월드아이] 의회 뺏겨도 정책은 밀어붙인다⋯트럼프의 '플랜B'

백악관, 4월부터 추가 관세·비자 규제 등 독자 정책 추진 준비
민주당 의회 장악 대비⋯거부권·예산 집행권으로 견제 돌파 구상

[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할 경우에 대비해 의회 승인 없이 정책을 추진하는 방안을 준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추가 관세와 이민 규제, 연방정부 예산 집행 등이 대상이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더라도 행정권을 활용해 국정 운영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REUTERS/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지난 4월부터 민주당의 의회 장악 가능성에 대비해 독자적 정책 추진 방안을 검토해 왔다. 백악관 관계자 등 3명이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논의에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 윌 샤프 백악관 법률고문 등이 참여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관련 내용을 보고받고 직접 논의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률고문실은 의회 승인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정책과 법적 근거를 검토하는 한편, 소송에 대비한 대응책도 마련 중이다.

핵심 광물·풍력터빈 관세부터 비자 규제까지

백악관이 검토 중인 정책은 무역과 이민, 주택, 재정 등 크게 네 분야다. 상당수는 기존 정책을 의회 협조 없이 확대하는 방식이다.

우선 핵심 광물과 풍력터빈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핵심 광물은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군사 장비 등에 사용되는 원자재다. 미국은 중국 등 해외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입 규제를 강화해 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핵심 광물 수입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며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대응을 지시했다. 해당 조항은 특정 제품 수입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에게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부여한다.

당시 백악관은 교역국과 협상해 핵심 광물의 최저 수입가격을 설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협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관세 등 추가 수입 규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풍력터빈도 같은 법률에 따른 규제 대상이다. 외국산 장비의 사이버보안 문제와 레이더·항공 운항 방해 가능성, 해외 공급망 의존 등이 이유다.

다만 즉각적인 추가 관세 대신 교역국과 협상을 진행하고 180일 이내에 결과를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협상 결과에 따라 관세 부과 등 후속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민 정책에서는 유학생과 임시 취업비자 소지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비자 발급과 체류·취업 관련 요건을 행정 조치로 강화하는 방식이 검토 대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관련 규제를 추진해 왔다. 9월에는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이용하는 일부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에 대해 고용주가 10만달러를 납부하도록 하는 제한을 1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에는 유학생이 미국에서 취업 실습을 하려면 최소 7만달러를 납부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렸다. 학업 중이거나 졸업 후 일정 기간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취업실습제도(OPT)를 겨냥한 조치다.

주택 분야에서는 건설 비용과 주거비를 낮추기 위한 행정 조치가 검토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주택 건설을 지연시키는 인허가 절차와 환경 규제를 완화하도록 지시했다.

최근에는 주택담보대출 보험료와 대출 갈아타기 비용을 줄이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백악관은 이 같은 조치를 통해 주택 공급을 늘리고 가계의 부담을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기존 예산 활용하고 보조금 배분에도 개입

OMB는 이미 승인 예산으로 어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민주당이 예산 증액에 반대하더라도 기존 재원을 활용해 핵심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취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뉴스]

주목할 부분은 연방 보조금 배분 권한이다. 의회가 예산을 승인하더라도 실제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는 행정부 재량이 작용한다. 백악관은 이 권한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실제 OMB는 지난 5월 연방 보조금 지급 규정 개정안을 공개했다. 모든 재량 보조금에 대해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 인사가 지급 전 심사하도록 하고, 대통령 정책 방향에 부합하는지도 평가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관련 전문가 등 심사 결과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는데, 이번 개정안은 이들 평가를 권고 수준으로 두고 임명 인사의 판단에 무게를 실었다. 이미 지급하기로 한 보조금도 정부 정책과 맞지 않으면 중단할 수 있다.

또 연방정부 각 기관은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정책 제안과 법률 검토 결과를 백악관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분석기관 인사이드일렉션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권을 최대한 활용하려 해왔다"며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더라도 이런 방식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은 조사권으로 견제⋯트럼프는 거부권·예산 통제로 맞불

민주당 역시 의회 조사권을 활용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권한을 이용해 자신이나 측근, 후원자에게 이익을 제공했는지 조사하는 방안이다. 청문회와 증인 소환, 자료 제출 요구 등이 주요 수단으로 거론된다.

당장 탄핵을 추진하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기업과 금융회사 거래 내역을 조사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백악관이 자료 제출을 거부할 가능성이 큰 만큼, 민간기업을 통해 관련 정보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이에 백악관은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의회의 소환장과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한 대응 요령을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에는 대통령과 민간 자문 인사 간 대화에 행정특권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를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통과시킨 법안에 한두 달간 거부권을 행사하면 결국 협상을 끌어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거부권을 무력화하려면 상·하원에서 각각 출석·투표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더 큰 쟁점은 의회의 예산 통제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예산 취소 요청 후 최대 45일간 집행을 보류할 수 있는 규정을 이용해, 회계연도 말까지 지급을 미루는 이른바 '포켓 삭감(pocket rescission)' 방식을 활용해 왔다.

이 경우 의회가 예산을 승인해도 집행 시한을 넘겨 사업을 무산시킬 수 있어 민주당 견제에도 한계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하웰 잭슨(Howell Jackson)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예산을 취소할 수 있다면 의회에서 이뤄진 합의는 구속력을 잃는다"고 지적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