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압 다음은 배전…전력기기 3사, AI 데이터센터 안으로

초고압 다음은 배전…전력기기 3사, AI 데이터센터 안으로

송전망 구축 이어 AI 데이터센터 내부 배전망 투자 확산
HD현대일렉, 청주 1980억 증설⋯LS일렉, 북미 기지 확장 속도
빅테크 '초고압+배전' 통합 발주⋯양사 배전 포트폴리오 다각화

[아이뉴스24 설재윤 기자] 국내 전력기기 업계들이 호황기를 지나고 있는 초고압 변압기를 넘어 미래 먹거리인 배전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투자가 늘면서 발전소에서 대규모 전력을 끌어오는 송전설비뿐 아니라, 확보한 전력을 시설 내부에 나눠 공급하는 배전설비 수요까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HD현대일렉트릭과 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은 중저압 변압기와 배전반, 차단기 등의 생산능력과 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초고압 전력기기 이후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송전부터 배전까지 아우르는 통합 공급 역량을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시카고 맥코믹 플레이스에서 열린 북미 최대 전력 산업 전시회 ‘IEEE 2026’에서 관람객들이 HD현대일렉트릭 전시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HD현대일렉트릭의 3분기 실적에서도 나타났다. 올해 3분기 배전기기·신사업 매출은 32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5.8% 증가했다.

국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배전변압기 납품이 늘었고 북미에서는 데이터센터용 중저압 차단기 매출이 확대됐다. 지난해 수주한 전남 신안 안좌도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프로젝트 매출 1250억원이 반영된 점도 외형 성장에 영향을 줬다.

앞서 구축한 청주 중저압 차단기 스마트팩토리의 가동도 본격화했다. 생산능력이 늘면서 북미 데이터센터 등에 공급하는 진공차단기(VCB)를 비롯한 배전기기 매출이 증가했다.

HD현대일렉트릭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공급계약 체결한 배전 변압기(왼쪽)와 전력 변압기(오른쪽)

HD현대일렉트릭은 수요 증가에 대응해 청주 배전캠퍼스에 1980억원을 추가로 투자하기로 했다. 스마트팩토리와 물류 자동화 시설을 구축해 연간 2500억원 규모의 매출 증대 효과를 거두겠다는 목표다.

배전 분야의 전통 강자인 LS일렉트릭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3분기 LS일렉트릭의 배전반 매출은 5416억원으로 전년 동기 2464억원보다 119.8% 증가했다. 양산형 제품인 배전기기 매출도 3058억원으로 31.6% 늘었다.

배전반은 외부에서 들어온 전력을 시설 내부의 설비별로 나눠 공급하고, 이상 전류가 발생하면 전원을 차단해 장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대규모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설비로 꼽힌다.

LS일렉트릭 부산 초고압 변압기 사업장 전경. [사진=LS일렉트릭]
LS일렉트릭 UL인증 데이터센터향 배전 솔루션. [사진=LS일렉트릭]

LS일렉트릭은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과 1689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배전 솔루션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2027년부터 2028년까지이며 우선 38킬로볼트(㎸)급 고압 배전반을 공급한다.

고압 배전반에 이어 저압 배전반과 배전급 변압기, 고압가스 부하개폐기(RMU) 등 추가 제품 공급도 논의하고 있다.

북미 생산·공급 체계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유타주 시더시티와 텍사스주 배스트럽의 생산기지를 활용해 영업과 설계, 생산, 사후 서비스까지 현지에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전경. [사진=효성중공업]

효성중공업도 데이터센터용 배전 기술을 차세대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의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1조7406억원, 영업이익은 243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2%, 10.8% 증가했다.

효성중공업은 지난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전력망협의회 행사 '시그레(CIGRE) 2026'에서 초고압 직류송전(HVDC)과 함께 데이터센터용 직류 배전 솔루션을 선보였다.

회사가 독자 개발한 반도체 변압기인 SST(Solid State Transformer)를 활용해 데이터센터 내부에 직류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이다. 기존 전력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줄이고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LS일렉트릭 UL 인증 배전 기기 [사진=LS일렉트릭]

전력기기 3사가 배전 사업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전력망 구축의 구조와 빅테크 기업의 구매 방식 변화가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까지 보내려면 전압을 높여 장거리로 운반하는 송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후 현장에 도착한 전력을 각 건물과 서버, 생산설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전압을 낮추고 나눠주는 것이 배전이다.

AI 데이터센터 건설 초기에는 외부에서 대규모 전력을 끌어오기 위한 초고압 변압기와 차단기 등 송전단 설비 확보가 우선이었다. 데이터센터 건설이 본격화하면서 배전반과 중저압 변압기, 차단기 등 내부 전력설비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송전설비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전력 인프라 투자의 범위가 송전망에서 시설 내부 배전망까지 넓어지는 구조다.

빅테크 기업들이 공급 부족에 대비해 장기공급계약을 확대하는 점도 배전시장 성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일부 고객은 초고압 전력기기와 배전변압기, 차단기 등을 묶어 발주하는 패키지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전력기기 업체 입장에서는 개별 제품을 공급하는 데서 나아가 데이터센터의 외부 전력망부터 내부 설비까지 통합해 공급할 기회가 커지는 셈이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제품 단가와 수익성은 글로벌 공급사가 적은 초고압 전력기기가 월등히 높다"면서도 "노후 송전망 교체와 신규 송전 프로젝트에 이어 배전설비 수요도 본격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청주 중저압 차단기 스마트팩토리 가동으로 생산능력과 매출이 늘고 있다"며 "지속적인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2단계 증설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설재윤 기자(jyseol@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