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대신 평양냉면"…지역의 진짜 이야기 담는 그들

"도파민 대신 평양냉면"…지역의 진짜 이야기 담는 그들

류복열·이평수 LG헬로비전 책임PD 인터뷰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에도 충분한 재미"
'눈에 띄는 그녀들' 1억2000만뷰 돌파…지역 밀착형 콘텐츠 인기
2040세대까지 시청층 확대…"플랫폼보다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

[아이뉴스24 서효빈 기자] "특별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지역 콘텐츠의 차별점입니다."

(왼쪽부터) LG헬로비전 이평수 PD, 류복열 PD [사진=LG헬로비전]

이평수 LG헬로비전 IP제작파트 책임PD는 지역채널만의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유명 연예인이나 자극적인 소재가 없어도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만으로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9일 경기 고양시 LG헬로비전 본사에서 만난 류복열·이평수 책임PD는 지역 콘텐츠의 경쟁력으로 '진정성'을 꼽았다. 두 사람은 10년 넘게 전국 곳곳을 누비며 지역 주민들의 삶과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류 PD는 여성 직업인의 삶을 조명하는 '눈에 띄는 그녀들'과 오래된 식당의 이야기를 담은 '당골집' 등을 제작했다. 이 PD는 '고두심이 좋아서'와 '김석훈의 어?! 여기봐라!' 등을 거쳐 현재 방송인 김대호와 함께하는 '어디든 간대호'를 연출하고 있다.

두 PD가 추구하는 방향은 같다. 유명 관광지나 특별한 인물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재미있다"…평범한 이웃이 주인공

류 PD가 연출한 '눈에 띄는 그녀들'은 지역의 평범한 여성들이 자신의 직업과 삶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다. 2022년 첫 방송 이후 시즌9까지 제작됐다. 지하철 기관사와 선박 용접사 등 여성 직업인 109명의 삶을 조명했다. 올해에는 '2026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을 수상했다.

'눈에띄는그녀들' 류복열PD가 9월 1일 열린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모습 [사진=LG헬로비전]

프로그램의 출발점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제작을 거듭하면서 출연자를 선정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류 PD는 "처음에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여성들을 주로 찾았다. 하지만 시즌9까지 제작하면서 직업의 특수성보다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주목하게 됐다"며 "이제는 시청자들이 응원하고 싶어지는 인물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래된 식당을 조명하는 '당골집' 역시 비슷한 철학에서 출발했다. 유명인이 음식을 먹고 평가하는 기존 맛집 프로그램과 달리 식당 주인과 단골손님의 일상을 오랜 시간 관찰하는 방식을 택했다.

류 PD는 "기존 맛집 프로그램처럼 유명인이 음식을 먹고 맛을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며 "오랜 시간 식당을 관찰하면서 주인과 손님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담는 것이 진정성을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PD는 "카메라가 출연자 바로 옆에 붙어서 촬영하기보다 멀리서 관찰하는 방식을 택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서다"라고 덧붙였다.

지역채널이 가진 강점은 현장과의 거리다. 전국 각지에 구축된 취재망을 통해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찾기 어려운 인물과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PD는 "전국 각지에 지역 기자와 제작진이 있다. 지역 주민들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왔고 마을 이장님들을 통해 출연자를 소개받기도 한다"며 "다른 방송사가 인터넷 검색으로 소재를 찾는다면 우리는 직접 발로 뛰면서 이야기를 발굴한다"고 말했다.

LG헬로비전 오리지널 로드다큐 '당골집2' 스틸컷 [사진=LG헬로비전]

노년층만 본다는 편견 깨져…2040세대 유입 확대

이 같은 지역 밀착형 콘텐츠는 젊은 시청층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과거 고령층 중심의 채널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2040세대까지 시청층이 확대되고 있다.

LG헬로비전이 자체 분석한 결과 올해 하반기 지역채널 고정시청자 규모는 상반기보다 모든 연령대에서 60% 이상 증가했다. 고정시청자는 전체 TV 시청 시간 가운데 지역채널 시청 비중이 5% 이상인 시청자를 뜻한다. 특히 2040세대의 증가 추세가 5060세대와 70대 이상 시청층과 비슷하게 나타났다.

유튜브에서도 젊은 시청층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LG헬로비전의 유튜브 채널 '헬로라이프' 조회수 가운데 65세 이상 시청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7%다. 특히 4050세대가 전체 조회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18~44세 시청자 비중도 약 28%에 달했다.

이 PD는 "과거 지역채널은 주로 60~70대 시청자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하지만 젊은 층을 겨냥한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예상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며 "지역채널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LG헬로비전의 대표 유튜브 채널 '헬로라이프'는 지난해 국내 유료방송 플랫폼 최초로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올해 10월 기준 누적 조회수는 14억회를 넘어섰다.

LG헬로비전 오리지널 로컬 탐방 예능 '어디든간대호' 스틸컷 [사진=LG헬로비전]

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지역채널을 바라보는 방송업계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지역 방송사라는 이유로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에는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을 인정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PD는 "과거에는 방송사나 채널의 인지도가 출연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플랫폼보다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다"라며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출연자와도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관광지가 아니라 그곳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콘텐츠 만들 것"

(왼쪽부터) LG헬로비전 이평수 PD, 류복열 PD [사진=LG헬로비전]

두 PD는 앞으로 사람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역의 풍경이나 관광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시청자가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기억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PD는 "지금까지는 지역의 관광지와 볼거리를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깊이 있게 발굴하고 싶다"며 "좋은 관광지가 있어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특별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방문하고 싶어지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류 PD 역시 지역채널이라는 구분을 넘어 콘텐츠 자체로 경쟁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지역채널이라는 단어를 빼면 우리도 다른 방송사 PD들과 고민하는 지점은 같다"며 "앞으로는 지역채널이라는 한계를 의식하지 않고 다른 방송사들과 콘텐츠 자체로 경쟁하면서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 PD는 자극적인 소재를 추구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방송사들이 자극적이고 독특한 소재를 찾는다면 우리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며 "평양냉면처럼 자극적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계속 찾는 프로그램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서효빈 기자(x40805@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