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설래온 기자] 인공지능(AI)이 식품업계의 제품개발 방식을 바꾸고 있다. 소비자의 입맛을 분석해 새로운 메뉴를 제안하고 원료 배합비까지 계산하면서다. 연구원의 경험과 반복적인 실험에 의존하던 식품 개발 과정에 AI가 가세하면서 제품 기획 속도와 탐색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AI가 개발에 참여한 떡볶이와 아이스크림이 실제 상품으로 등장했고 해외에서는 AI가 설계한 햄버거가 소비자 시식평가에서 기존 제품보다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기업들은 개발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재료 조합까지 발굴하고 있다.

2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자체 개발한 '푸드 AI 360'을 활용해 소비트렌드 분석부터 신제품 기획, 시장반응 예측까지 AI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의 입맛 변화를 제품개발에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분석은 실제 판매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비비고 연어 스테이크'는 AI가 단백질 식품 소비가 육류에서 수산물 등으로 다변화되는 흐름을 포착해 기획한 제품으로, 판매 반년 만에 140만개를 돌파했다. 지난 6월 선보인 '말차 햇반' 역시 AI가 분석한 소비트렌드를 제품 기획에 반영한 사례다.
프레시지는 2024년 AI를 활용해 '황금레시피 떡볶이' 5종을 선보였다. 식혜맛과 고구마 떡볶이 등 이색 조합을 제안한 것이 특징이다. 회사 측은 누적 데이터 15억건을 활용해 기존 2~3개월이 걸리던 시장분석과 관능평가 등 일부 개발절차의 소요시간을 약 2시간30분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배스킨라빈스도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활용해 '트로피컬 썸머 플레이'를 개발했다. AI가 색상별로 어울리는 과일과 풍미를 제안하면 연구진이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원재료 배합에도 AI가 활용된다. 삼양사의 '3S 솔루션'은 당류 저감률과 원가 조건 등을 입력하면 AI가 알룰로스 등 대체 소재의 배합비를 제안한다. 설탕을 줄이면서 기존 제품의 단맛과 식감을 유지하는 데 활용하기 위한 기술이다.
해외에서는 AI가 소비자의 입맛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6월 국제학술지 'npj Science of Food'에는 생성형 AI로 햄버거 레시피를 설계하고 소비자 평가를 진행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연구진은 사람이 만든 햄버거 레시피 2216개를 학습한 AI로 새로운 재료 조합과 사용량을 생성했다. 이후 AI가 만든 햄버거와 맥도날드 빅맥을 101명이 블라인드 방식으로 평가했다.
맛을 중심으로 설계한 AI 햄버거 2종은 풍미 평가에서 각각 7점 만점에 5.8점을 받았다. 빅맥의 5.4점보다 높은 결과다. 이 가운데 한 제품은 전반적인 선호도에서도 5.7점으로 빅맥의 5.3점을 앞섰다.
다만 모든 AI 햄버거의 평가가 기존 제품보다 높았던 것은 아니다. 영양을 중심으로 설계한 콩 기반 햄버거는 영양평가 점수가 빅맥의 약 두 배였지만 맛과 식감, 전반적인 선호도에서는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 맛과 영양, 환경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글로벌 식품기업 몬델리즈는 AI를 활용해 글루텐프리 '골든 오레오'를 개발하고 '칩스아호이' 쿠키의 원료 배합을 개선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AI가 제안한 비스킷 배합안의 약 60%는 영양과 원가 등에서 개선된 결과를 보였다.

식품기업들이 AI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짧아진 먹거리 유행주기와 커진 신제품 개발 부담이 있다. 소비자 취향이 빠르게 바뀌면서 제품을 적기에 시장에 내놓는 속도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새로운 맛을 개발하려면 여러 원료의 조합과 배합비를 바꾸며 시제품 제작과 관능평가를 반복해야 한다. 개발기간이 길어질수록 인건비와 연구비 부담이 커지고, 제품이 완성될 무렵에는 유행이 지나갈 위험도 있다.
AI는 방대한 소비자 데이터와 기존 연구 결과를 분석해 시장성이 높은 제품 후보와 원료 조합을 빠르게 추려낼 수 있다. 연구원이 모든 가능성을 직접 시험하는 대신 AI가 우선순위를 제시해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식이다.
원재료 가격 변동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기후변화와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주요 식품 원료의 가격과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기존 제품의 맛을 유지할 대체 소재를 찾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다양한 원료의 특성과 배합비를 분석해 원가를 낮추면서도 기존 제품과 유사한 맛을 구현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한계도 있다. AI가 수치상 적합한 조합을 제안하더라도 실제 제품에서는 예상과 다른 향이나 식감이 나타날 수 있다. 같은 맛을 두고도 국가와 연령, 식문화에 따라 소비자의 반응이 달라진다.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가 특정 지역이나 제품군에 치우쳤다면 AI의 제안에도 같은 편향이 반영될 수 있다.
AI가 재료와 사용량을 제안하더라도 조리 온도와 시간, 가공 과정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변화까지 모두 예측하기는 어렵다. 소량의 시제품에서 구현한 품질이 대량생산 과정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원료의 안정적인 수급과 제조공정의 적합성, 품질관리까지 고려해야 한다. AI가 제품개발의 가능성을 넓히더라도 최종적인 상품성은 연구원의 검증과 소비자 평가를 거쳐야 하는 셈이다.
식품 연구개발(R&D) 관계자는 "AI를 활용하면 제품개발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조합도 발굴할 수 있다"며 "다만 식품은 소비자의 취향과 감각이 중요한 만큼 기술에만 의존하기보다 연구원의 전문성과 결합해 제품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설래온 기자(leonsig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