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문화인사이트]김동률 공연, 오케스트라 없어도 중저음만 있으면 무장해제

[서병기 문화인사이트]김동률 공연, 오케스트라 없어도 중저음만 있으면 무장해제

데뷔 이래 첫 오케스트라 없는 무대…7년 만의 세종문화회관 콘서트 ‘오래된 노래’ 성료

[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고민과 정성 많이 들인 결과물을 들고 다시 돌아올게요. 우리 조금만 더 늙어서 곧 만나요.”

가수 김동률이 공연 말미에 했던 이 말은 관객들에게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그는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콘서트 ‘오래된 노래’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이번 공연은 지난 10월 17일부터 25일까지 총 7회에 걸쳐 열렸다.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 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피케팅'을 통과한 총 2만1,000여 명의 관객이 함께 한 가운데, 밀도 높은 음악적 경험을 선사했다.

김동률의 콘서트 '오래된 노래' [사진=뮤직팜엔터테인먼트]

이번 콘서트의 특징은 김동률이 1993년 ‘전람회’ 데뷔 이래 처음으로 대규모 풀 오케스트라 편성을 배제하고, 밴드 사운드와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한 무대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공연 시작 전 김동률 팬임을 자처한 배우 공유가 미리 녹음된 안내방송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2014년 ‘그게 나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공유는 “김동률 씨가 오케스트라 없이 공연에 나서는 걸 칼과 방패를 내려놓고 전쟁에 나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고 재치 있게 소개했다.

그렇다면 오케스트라를 내려놓은 김동률 공연은 어땠을까? 결과부터 말하면, 오케스트라 없는 김동률표 발라드도 매우 좋았다는 것이다. 본인은 칼과 방패 없이 전쟁에 나간다고 했지만, 묵직하면서 감미로운 중저음만 있으면 어떤 상대도 무장해제시킬 수 있었다.

김동률도 “그동안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선곡이나 무대 연출의 제약이 있었다”면서 이번 공연에서는 평소 잘 부르지 않던 소외된(?) 곡들까지 세트 리스트에 올려 차별화를 기할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빈 자리에 김동률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밴드 율밴의 탄탄한 연주력과 소규모 관현악 편성에 간결한 브라스 섹션까지 들어오면서 관객들은 김동률의 섬세한 목소리와 밴드 사운드의 미세한 결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피아노, 기타, 반도네온, 코러스 소리가 더 잘 들렸다. 그래서 ‘여름의 끝자락’과 ‘Moonlight’때는 재즈클럽에 온 것 같았고, 고상지의 반도네온 사운드를 잘 살린 ‘뒷모습’과 ‘낙엽’을 부를 때는 탱고 춤을 추는 중남미로 관객을 이동시켰다.

간결해진 악기편성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특유의 정교한 음향과 밀도 높은 공간감이 합쳐져 김동률의 보컬은 더 잘 들렸고, 음악 본연의 깊이를 온전히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그래서 2~3곡씩 비슷한 톤으로 이어져 금세 진행되는 공연들과는 달리, 노래 한 곡 한 곡을 맛깔나게 음미해볼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김동률. [사진=뮤직팜엔터테인먼트]

김동률은 2~3곡씩 부르고 나면, 직접 노래를 만든 배경과 연출 등에 대해 설명하고 해설하는 시간을 가져 ‘렉처 콘서트’ 같은 분위기가 됐다. 노래뿐만 아니라 멘트까지도 고급스럽고, 클래시컬했다.

김동률은 주무기인 묵직한 중저음을 구사하며 발라드를 불러 많은 팬들을 확보했지만, 음역대가 생각보다 넓다. 나긋나긋한 노래가 아니다. 노래방에서 김동률의 노래를 불러보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어떨 때는 격정적(激情的)이다. 김동률은 결코 중저음만으로 자신을 매력화시킨 게 아니라는 얘기다. 높은 옥타브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중저음을 냈을 때, 그 대비 효과는 배가된다.

첫 곡은 피아노 한 대만 놓인 간결한 무대에서 김동률이 목소리만으로만 들려준 ‘겨울잠’이었다. 관객들이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김동률은 이어 ‘그림자’를 부른 후 “이번 공연은 2년 전 ‘산책’ 콘서트와 함께 세트로 기획했던 무대”라며 “7년 만에 극장 공연으로 돌아왔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그후 부른 ‘오래된 노래’는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3중주의 소박한 편성과 잘 어울렸다. 또한, 이소라가 불렀던 김동률 작곡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도 앉아서 불렀다.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는 기타 연주자 김동민의 감성적인 핑거링이 인상적이었다.

‘여름의 끝자락’과 ‘Moonlight’ 무대에서는 막으로 가려졌던 무대가 열리며 푸른 밀밭과 민들레 홀씨가 흩날리는 하늘을 형상화한 무대가 펼쳐져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AI 시대에 손쉽게 무대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김동률은 “기획사 식구들과 함께 한 땀 한 땀 밀 모형을 직접 심어 완성한 아날로그적 무대”라며 제작 과정을 소개했다.

김동률 콘서트 '오래된 노래'. [사진=뮤직팜엔터테인먼트]

클래식과 재즈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건반 연주도 돋보였다. 멜로망스의 정동환은 고난도의 곡들을 섬세한 터치로 소화하며 오케스트라의 빈자리를 채웠다. 김동률은 “클래식과 재즈를 오가며 극강 난이도의 곡을 치느라 정동환 씨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정말 훌륭하게 연주해 줬다”며 극찬했다.

이어 ‘낙엽’을 고혹적인 탱고 스타일로 재해석한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와의 오랜 인연도 소개했다. 김동률은 “2008년 프롤로그 공연에서 ‘뒷모습’으로 프로 무대에 첫 데뷔했던 고상지 씨와 어느덧 18년째 함께하고 있다. 반도네온과 함께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계속 늘려가는 과정이 매우 뜻깊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퍼커션 연주자 김진환의 아이디어가 돋보인 ‘뒷모습’ 무대의 연주자 전진 배치, 트럼펫 연주자 조정현이 2년간 연습해 완성한 ‘출발’의 휘슬 연주 등 각 연주자의 개성과 역량이 드러나는 무대가 이어졌다. 다양한 악기를 소화하며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한 밴드 멤버들에게도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15분간의 인터미션 후 재개된 2부에서는 베란다 프로젝트 시절 불렀던 ‘Bike Riding’을 시작으로 ‘출발’, ‘같은 꿈’, ‘첫사랑’, ‘기필코’ 등이 이어지며 공연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첫사랑’은 슬픈 노래지만, 박수 치며 부를 수 있게 과감하게 복고 스타일로 편곡했다. ‘출발’에 대해서는 “히트를 예상하지 못하고 만든 동요 같은 곡으로, 당시 TV에 소풍예능들이 많이 제작돼 이 노래가 자주 깔리는 바람에 히트할 수 있었다”고 소개하기도.

김동률 콘서트 '오래된 노래'. [사진=뮤직팜엔터테인먼트]

이어 김동률의 대표 발라드인 ‘취중진담’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가 울려 퍼지며 객석은 환호와 감동으로 가득 찼다. 이 노래를 들으려고 기다린 관객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는 수천번을 불렀을 이 노래들도 최선을 다해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김동률은 “이 노래들을 부르고 나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앙코르곡 ‘그 노래’와 ‘동행’까지 총 20곡의 세트리스트가 이어지는 동안 관객들은 김동률의 음악에 깊이 몰입했다. 존박이 불렀던 김동률표 발라드 ‘그 노래’의 ‘밤새 들었던 이 노래를 핑계 삼아 널 그리워하는 내모습’ 가사가 귀에 정확하게 들어왔다.

김동률은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음악 환경을 빠르게 바꾸는 시대에도 연주자들의 호흡과 섬세한 연주를 중심으로 ‘아날로그 음악’의 매력을 펼쳐 보였다.

김동률은 공연을 마무리하며 “음악 환경과 정의가 너무 빠르게 변해 따라잡기 힘들고 고민도 많지만, 휩쓸리지 않고 너무 들뜨지도 않고 묵직하게 저만의 속도로 음악을 해나가고 싶다”며 “다소 낯선 구성이었음에도 이 큰 극장을 가득 채워주신 여러분 덕분에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우리 조금만 더 늙어서 다시 만나자”고 말해 관객들에게 위로와 여운을 남겼다.

/서병기 기자(wp@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