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반 30년, 밥상의 변화]②"밥도 사먹나요?"에서 68억개 판매…햇반이 바꾼 30년

[햇반 30년, 밥상의 변화]②"밥도 사먹나요?"에서 68억개 판매…햇반이 바꾼 30년

일본서 가능성 확인한 무균포장밥…100억원 설비 투자
초기 핵심 고객은 직장인 아닌 전업주부…맛과 광고로 인식 전환
쌀통 닮은 보관함까지 등장…국내외 누적 68억4000만개 판매

[아이뉴스24 구서윤·설래온 기자] "밥을 왜 돈 주고 사 먹어?"

밥솥에 쌀을 안치고 끼니에 맞춰 밥을 짓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 한 그릇씩 포장한 밥이 등장했다. 1996년 12월 출시된 CJ제일제당의 햇반이다.

밥을 돈 주고 사 먹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상온에 오래 두는 밥이 갓 지은 집밥만큼 맛있을지 의문이 뒤따랐다.

1996년 햇반 출시 광고. [사진=CJ제일제당]

30년이 지난 지금 햇반은 필요할 때 꺼내 먹는 일상식이 됐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출시 이후 지난해 말까지 국내외 누적 판매량은 약 68억4000만개다. 이를 210g 제품 용기 지름인 13.7㎝를 기준으로 나란히 놓으면 지구 둘레를 약 23바퀴 돌 수 있는 양이다. 지난해에만 약 7억7100만개가 팔렸다. 하루 평균 약 211만개꼴이다.

밥 짓는 수고를 덜어준다는 편리함만으로 이뤄낸 변화는 아니다. 집밥에 익숙한 소비자가 받아들일 맛을 구현하고, 사 먹는 밥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과정이 필요했다.

일본에서 확인한 가능성…밥맛에 100억원 투자

햇반 이전에도 간편하게 먹는 밥은 있었다. 냉동밥과 레토르트밥 등이 출시됐지만 시장을 크게 넓히지는 못했다. CJ제일제당도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알파미와 동결건조미 등을 검토했으나 맛과 식감에서 한계를 겪었다.

회사가 택한 해법은 무균포장 방식이었다.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클린룸에서 밥을 생산·포장해 쌀의 수분과 식감을 살리고, 냉동실이 아닌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1996년 햇반을 판매하는 마트 모습. [사진=CJ제일제당]

일본의 선행 사례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988년 무균포장밥이 출시된 뒤 1990~1995년 시장 규모가 약 580% 성장하며 레토르트밥을 앞질렀다. 밥맛을 살린 상품이라면 소비자가 지갑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생산설비 구축에 필요한 투자금만 당시 100억원이었다. 앞서 나온 상품밥의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에 대한 사내 우려도 나왔다.

소비자 시식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회사가 전한 시식 사례에서 주부와 여대생 수십 명 앞에 햇반과 전기밥솥으로 갓 지은 밥이 놓였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맛있다고 고른 밥이 즉석밥이라는 설명에 놀라움을 보였다고 한다.

출시 전 소비자 200명 조사에서도 제품 콘셉트 수용도는 시식 전 47%에서 시식 후 56%로 높아졌다. 전반적인 맛 평가는 햇반과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 모두 5점 만점에 4.1점이었다. 윤기와 외관에서는 햇반 시제품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회사는 1996년 3월 설비 투자를 결정했고, 같은 해 12월 '방금 지은 맛있는 밥'이라는 뜻의 햇반을 출시했다. CJ제일제당은 이재현 회장 등 경영진이 단기 손익보다 소비자의 생활 변화에 주목해 선제적 투자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직장인보다 전업주부부터 설득했다

초기 마케팅의 핵심 고객은 30대 전업주부였다.

직장인이나 맞벌이 가정은 편의성 때문에 즉석밥을 구매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이들로 고객층을 한정하면 시장 규모가 제한될 수 있었다. 매일 직접 밥을 짓는 전업주부까지 제품을 받아들여야 상품밥 시장을 넓힐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소비자 조사에서도 자신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제품이라고 생각했던 전업주부들이 시식 후에는 한 번쯤 사용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햇반의 과제는 편리함이 필요한 소비자만 찾는 제품을 넘어 집밥을 주로 먹는 가정의 선택지가 되는 것이었다.

햇반 사각용기. [사진=CJ제일제당]

광고도 단계적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배우 김혜자를 내세운 '제일제당에서 밥이 나왔어요'로 제품을 알렸다. 이어 배우 홍진희와 방송인 최유라가 출연한 ‘가끔은 햇반이 좋다’ 광고를 통해 밥이 부족하거나 직접 밥을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 햇반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출연진이 햇반을 먹는 광고에서는 즉석밥을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친숙한 제품으로 표현했다. 광고의 무게중심이 제품의 존재를 알리는 데서 ‘사 먹는 밥’에 대한 거리감을 낮추는 방향으로 옮겨간 것이다.

상온 보관에 대한 소비자의 의문도 풀어야 했다. 냉장하지 않은 밥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보존료나 방부제 사용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회사는 고온·고압 살균과 클린룸 생산, 외부 공기 유입을 차단하는 다층 포장재 등 무균포장 기술을 알리며 제품 안전성과 품질에 대한 신뢰를 쌓는 데 주력했다.

밥이 모자랄 때에서 매일 꺼내 먹는 밥으로

출시 초기 햇반은 손님이 갑자기 찾아와 밥이 모자라거나 여행지에서 활용하는 비상식 성격이 강했다. 회사는 이보다 쓰임새를 넓히기 위해 2002~2009년 '엄마가 해주신 밥'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직접 밥을 짓지 않는 데 대한 심리적 부담을 낮추고, 평소 식사에도 선택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품질 개선도 병행했다. 2010년에는 당일 도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미를 백미로 깎은 뒤 시간이 지나면서 신선도와 수분이 떨어지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쌀은 품종과 생산지, 수확 연도는 물론 계절과 기후에 따라서도 상태가 달라진다. CJ제일제당은 원료의 상태에 맞춰 도정 정도를 달리하며 일정한 밥맛과 식감을 유지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햇반 백미 210g 제품. [사진=CJ제일제당]

2018년 7월에는 ‘매일 햇반 박스’를 선보였다. 쌀통에서 착안한 보관용기로 햇반 10개를 담고 아래쪽에서 하나씩 꺼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측면의 투명한 창을 통해 남은 수량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요할 때 한두 개씩 사는 제품에서 집에 여러 개를 비축하고 일상적으로 꺼내 먹는 제품으로 소비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판매 규모도 빠르게 커졌다. 출시 10주년인 2006년 누적 판매량은 약 4억개였다. 2019년 말에는 30억개를 넘어섰고, 이후 약 6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 지난해 말 약 68억4000만개에 도달했다.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약 6억5500만개로 2021년보다 25% 증가했다. 해외 판매도 같은 기간 빠르게 늘면서 연간 국내외 판매량은 2021년 5억8600만개에서 지난해 7억7100만개로 31.6% 증가했다.

"밥을 왜 돈 주고 사 먹느냐"는 질문을 받던 햇반은 이제 집에 쌓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 먹는 밥이 됐다.

출시 당시 기술과 광고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던 '사 먹는 밥'은 30년이 지난 지금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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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구서윤 기자(yuni2514@inews24.com),설래온 기자(leonsig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