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인 줄 알았는데 케이크?"⋯2만2900원 '비빔빵' 먹어보니 [식후감]

"비빔밥인 줄 알았는데 케이크?"⋯2만2900원 '비빔빵' 먹어보니 [식후감]

멜론은 무생채, 초콜릿은 고기⋯비빔밥 닮은 케이크
새콤한 과일에 달콤한 크림⋯섞을수록 살아나는 맛
외국인은 외형·먹는 방식에 주목⋯비빔밥 특징 살려
상미당 80주년 기념제품⋯광화문1945점에서만 판매

[아이뉴스24 설래온 기자] 지난 16일 점심시간을 맞은 서울 광화문. 파리바게뜨 광화문1945점은 빵으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려는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진열대를 따라 빵을 살펴보다 뜻밖의 음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알록달록한 나물과 고기 고명, 가운데 놓인 반숙 달걀까지 영락없는 비빔밥 한 그릇이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밥도 나물도 아니었다. 밥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시폰 케이크와 크림이 들어 있었고, 나물처럼 보이는 고명은 과일과 초콜릿으로 만들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독특한 외형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K파바 비빔 케이크'다.

파리바게뜨 비빔케이크. [사진=설래온 기자 ]

가격은 2만2900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금액이지만 비빔밥을 케이크로 구현했다는 발상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눈앞에 놓인 알록달록한 고명들이 어떤 맛을 낼지도 궁금했다. 제품을 구매해 자리에 앉아 비빔밥을 먹듯 숟가락을 들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케이크 한가운데 얹힌 달걀이었다. 흰자와 노른자의 경계가 선명한 데다 윤기까지 돌아 실제 반숙 달걀을 올려놓은 듯했다. 흰자를 살짝 떠서 입에 넣자 부드럽게 무너지면서 고소한 우유맛과 은은한 코코넛 향이 퍼졌다.

대만에서 먹었던 코코넛 푸딩이 떠오를 만큼 부드럽고 진한 맛이었다. 가운데 노른자는 오렌지 같기도, 황도 같기도 한 상큼한 과일맛이었는데 입안에서 살짝 뭉개지는 질감까지 반숙 노른자를 닮았다.

파리바게뜨 비빔케이크. [사진=설래온 기자 ]

달걀 옆에는 가늘게 채 썬 나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특히 무생채를 연상시키는 멜론은 실제 채소를 썰어놓은 것처럼 굵기가 일정했다. 한 가닥 집어 씹어보니 과일 특유의 단맛보다 아삭한 식감이 먼저 느껴졌는데, 눈을 감고 먹으면 무생채나 애호박나물이 떠오를 정도였다. 과일로 채소의 모양뿐 아니라 식감까지 표현한 점이 흥미로웠다.

고기 고명에서는 또 다른 맛이 기다렸다. 초콜릿 과자를 잘게 부숴 뭉쳐놓은 듯한 모양에 한입 베어 물자 바삭한 식감이 느껴졌다. 견과류의 고소함과 미세한 짠맛이 뒤따랐고, 어렴풋하게 쿠키앤크림 과자를 연상시키는 풍미도 스쳤다. 초콜릿 특유의 단맛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아 다른 재료와도 무리 없이 어울렸다.

과일 고명에서는 재료 간 조화가 돋보였다. 망고는 꼬들꼬들한 식감을 잘 살렸지만 단맛은 다소 부족했다. 그러나 숟가락을 조금 더 깊숙이 넣자 아래쪽에 깔린 잘 익은 망고가 달콤함을 더했다. 윗층이 씹는 재미를 살렸다면 아랫층은 풍미를 보완하며 맛의 균형을 잡은 셈이다.

버섯을 연상시키는 블루베리도 마찬가지였다. 단독으로 먹으면 얼굴이 살짝 찌푸려질 만큼 신맛이 강했지만 아래에 깔린 포도와 함께 먹자 달라졌다. 포도의 달콤한 과즙이 블루베리의 강한 산미를 누그러뜨리며 조화를 이뤘다. 두 재료 모두 윗층과 아랫층이 서로의 부족한 맛을 보완하도록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비빔케이크가 전시돼 있다. [사진=설래온 기자]

딸기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새콤함이 강하게 느껴졌지만 아래쪽의 우유 크림과 폭신한 시폰 케이크를 함께 떠먹으니 오히려 입안이 산뜻해졌다. 부드러운 크림이 입안을 감싸는 순간 딸기의 산미가 느끼함을 덜어내는 식이었다. 자칫 달고 묵직하게 끝날 수 있는 케이크의 맛을 잡아주는 역할이었다.

진가는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먹었을 때 드러났다. 이번에는 비빔밥을 먹듯 달걀과 과일, 초콜릿 고명, 크림을 골고루 섞어 숟가락에 듬뿍 올렸다. 첫맛은 과일의 새콤달콤함이었지만 곧이어 크림의 부드러움과 초콜릿의 고소함이 뒤섞였고, 곳곳에서 아삭하거나 꼬들꼬들한 식감이 살아났다. 분명 케이크를 먹고 있는데 묘하게 비빔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먹는 듯한 감각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어느 재료도 지나치게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로 먹으면 지나치게 시거나 다소 심심했던 토핑들이 한데 섞이자 오히려 균형을 이뤘다. 과일의 산미는 크림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초콜릿의 고소함은 전체적인 맛에 깊이를 더했다. 여러 나물과 고기, 양념이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완성하는 비빔밥의 특징을 케이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파리바게뜨 광화문1945점. [사진=설래온 기자 ]

아쉬움도 있었다. 비빔밥을 본뜬 메뉴인 만큼 젓가락도 함께 구비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광화문1945점은 식당을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꾸며졌는데, 정작 비빔밥 모양의 케이크를 일반적인 디저트처럼 먹는 과정은 다소 어색했다. 젓가락으로 고명을 집어 먹거나 재료를 직접 섞는 방식까지 구현했다면 재미가 더해졌을 법하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대신할 소스가 없다는 점도 아쉬웠다. 딸기나 라즈베리 소스로 고추장을 표현하고 꿀로 참기름을 대신했다면 어땠을까. 직접 소스를 뿌리고 고명을 섞어 먹는 과정까지 더했다면 비빔밥을 재현한 경험이 한층 풍성해졌을 것이다. 다만 이미 과일과 크림의 조화가 잘 잡혀 있는 만큼 소스의 단맛을 절제하는 것이 관건이다.

가격도 고민거리다. 2만2900원이면 웬만한 식당에서 비빔밥 두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빵이 아닌 과일이 넉넉하게 올라간 케이크로 생각하면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하다.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비빔밥의 모습을 정교하게 구현한 데다 맛과 식감까지 세심하게 고려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간식보다 하나의 체험형 디저트에 가까웠다.

파리바게뜨 광화문1945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한국 색을 입힌 상품과 굿즈. [사진=설래온 기자 ]

외국인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한국의 대표 음식을 디저트로 재해석한 제품인 만큼 베트남인 짱 씨와 미국인 에밀리 씨에게도 직접 맛보게 하고 반응을 물었다. 같은 케이크를 앞에 두고도 두 사람이 관심을 보인 부분은 달랐다.

베트남 출신 짱 씨는 실제 비빔밥을 닮은 외형에 주목했다. 특히 멜론으로 표현한 무생채와 달걀 모양의 토핑을 살펴보며 한국 음식을 과일로 재현한 발상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짱 씨는 "베트남에도 과일을 활용한 디저트가 많지만 한국 음식을 이렇게 케이크로 표현한 것은 신기하다"며 "모양뿐 아니라 나물의 아삭한 식감까지 살린 점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에밀리 씨는 여러 재료를 섞어 먹는 방식에 더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는 각각의 토핑을 맛보다가 크림과 과일을 함께 떠먹은 뒤 맛의 차이를 언급했다.

에밀리 씨는 "재료를 따로 먹을 때보다 함께 먹으니 맛이 훨씬 풍부하다"며 "여러 재료가 섞여 하나의 맛을 낸다는 점에서 비빔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파리바게뜨 비빔케이크와 한복케이크가 전시돼 있다. [사진=설래온 기자 ]

이처럼 비빔밥을 케이크로 재해석한 배경에는 외국인을 겨냥한 파리바게뜨의 전략이 숨어 있다. 광화문1945점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식재료를 활용한 'K파바' 특화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한국적 요소를 빵과 디저트에 접목하고 있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광화문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인 만큼 한국 전통의 미(美)와 색(色)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을 선보이고자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비빔 케이크는 파리바게뜨의 전신인 상미당 80주년을 기념해 만든 제품이다. 한정제품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판매 종료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광화문1945점에서만 판매하며 현재 다른 매장으로 확대할 계획은 없다.

특정 지점에서만 판매한다는 점은 접근성을 제한하는 요소다. 더 많은 매장에서 경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이곳을 직접 찾아야 한다. 아울러 일부 토핑은 신맛이 강했고, 비빔밥을 재현한 외형에 비해 식기 구성은 다소 평범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재료가 맛의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한 점은 인상적이었다. 밥 한톨 들어가지 않았지만 비빔밥의 매력만큼은 고스란히 담아낸 한 그릇이었다.

/설래온 기자(leonsig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