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설래온 기자] 한국 베이커리 업체들이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의 현지 매장을 합하면 500곳을 넘어섰고 매출도 꾸준히 늘면서 베이커리가 새로운 K푸드 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
다만 라면의 불닭볶음면이나 과자의 초코파이처럼 해외 소비자가 한국을 떠올릴 만한 대표 제품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현재의 성장이 개별 상품보다 브랜드와 매장 확대를 중심으로 이뤄진 만큼 해외 진출이 본격화할수록 'K빵'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도 커지고 있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CJ푸드빌의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는 미국에서 각각 200개, 3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양사 모두 2030년까지 북미 매장 1000개를 확보한다는 목표다.
수출 실적도 성장세를 뒷받침한다.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베이커리 수출액은 2017년 2억3000만달러에서 지난해 4억3000만달러로 87% 증가했다. 미국이 전체 수출액의 약 33%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특히 뚜레쥬르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CJ푸드빌의 지난해 미국법인 매출은 1946억원으로 2021년 510억원보다 약 3.8배 늘었다. 2018년 첫 흑자 전환 이후 8년 연속 흑자도 유지하고 있다.


뚜레쥬르는 한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미국에서도 거의 그대로 선보이는 전략을 택했다. 뚜레쥬르는 한국 매장에서 판매하는 상품과 운영 방식을 미국에서도 비교적 그대로 선보인다. 단팥빵과 꽈배기, 김치고로케 등 한국 소비자에게 익숙한 제품을 판매하고 고객이 진열대에서 여러 종류의 빵을 직접 골라 담는 방식도 적용했다.
서양식 식사빵이나 한 종류의 제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현지 베이커리와 달리 달콤한 빵과 짭짤한 조리빵, 케이크, 음료를 한 매장에서 함께 고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반면, 파리바게뜨는 현지 소비문화와 기념일에 맞춘 상품 개발에 적극적이다. 지난 1월에는 미국 최대 스포츠 행사인 슈퍼볼을 겨냥해 미식축구공 모양의 도넛과 케이크를 선보였다.
한국식 제품과 매장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미국 소비자가 익숙하게 느낄 수 있는 행사와 디자인을 활용해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매장 수에서는 파리바게뜨가 앞서지만 수익성은 엇갈린다. 파리바게뜨 미국법인인 '파리바게뜨 봉두'는 지난해 매출 3888억원을 기록했지만 54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다만 두 회사는 법인 구조와 가맹점 비중, 신규 매장 및 생산시설 투자 규모가 달라 매출과 순이익만으로 사업 성과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해외 사업 초기에는 물류망과 생산시설, 가맹 지원 조직 등에 투자가 집중돼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 시점이 다를 수 있다.
브랜드는 커졌지만 '대표 K빵'은 아직
한국 베이커리 업체들이 미국에서 매장을 확대하고 있지만 'K빵'을 무엇으로 정의할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빵 자체가 한국에서 탄생한 음식이 아닌 데다 국내 베이커리의 주요 제품 가운데 상당수도 해외에서 유래했다. 크루아상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이고 단팥빵은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기업이 만들고 판매하는 빵과 한국 고유의 빵을 완전히 같은 개념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다른 K푸드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 분명하다. 라면에서는 불닭볶음면, 과자에서는 초코파이처럼 해외 소비자가 한국 브랜드와 연결해 인식하는 대표 상품이 있다. 특정 제품이 인기를 얻으면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몰 등을 통해 판매 지역을 빠르게 넓힐 수도 있다.
반면 한국 베이커리는 아직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를 넘어 독립적으로 인지되는 대표 제품이 뚜렷하지 않다. 특정 빵보다 한 매장에서 수십 가지 제품을 고를 수 있는 구성과 화려한 케이크, 카페를 결합한 운영 방식이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현재 해외에서 확산하는 것은 하나의 'K빵'이라기보다 한국식 베이커리 문화에 가깝다. 달콤한 빵과 조리빵, 케이크를 한 공간에 진열하고 소비자가 트레이와 집게를 들고 직접 고르는 방식이 현지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신선도가 경쟁력인 동시에 확장의 걸림돌
베이커리 제품의 특성도 대표 상품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한다.
라면이나 과자는 장기간 보관할 수 있고 해외 배송도 비교적 쉽다. 한 제품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면 기존 유통망을 활용해 여러 국가에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

반면 빵과 생크림 케이크는 신선도 유지가 중요하다. 생산 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짧고 운송 과정에서 모양과 식감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냉장·냉동 배송이 필요한 제품은 물류비 부담도 커진다.
SNS에서 특정 제품이 인기를 얻더라도 현지에 매장이나 생산시설이 없으면 수요를 실제 판매로 연결하기 어렵다. 한국 베이커리 업체들이 제품 수출과 함께 현지 매장과 공장, 물류망 구축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가맹점 중심의 빠른 매장 확대는 소비자 접점을 늘릴 수 있지만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도 따른다. 국가와 지역이 달라도 빵의 맛과 신선도, 매장 경험을 비슷한 수준으로 제공해야 브랜드 신뢰를 지킬 수 있다.
대표 상품 개발과 현지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도 필요하다. 한국적인 맛과 형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현지 소비자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고, 현지 취향에만 맞추면 다른 글로벌 베이커리와 구분되는 정체성이 약해질 수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한국 베이커리의 해외 성장은 분명 의미 있는 성과지만 빵 자체가 한국 고유의 음식은 아니라는 점에서 K빵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할지가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매장 확대를 넘어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 상품을 만들고 현지 소비자가 꾸준히 찾도록 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설래온 기자(leonsig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