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대한유화의 최대주주인 케이피아이씨코포레이션(KPIC)이 지주회사 시절 벤처캐피탈(VC) 지분을 사들였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받았다. 지분 보유 사실을 보고서에서 빠뜨린 행위도 적발됐지만 고발은 면했다. 공정위는 KPIC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발하지 않은 사유로 들었다. 대기업집단 규제 밖에 있는 중견그룹 오너 개인회사가 이번에도 규제 문턱을 비켜간 셈이다.
공정위 제1소회의는 지난달 21일 KPIC의 지주회사 행위제한규정 위반행위에 대해 재발방지 시정명령과 과징금 3100만원을 의결했다. 지주회사 사업내용 보고서를 허위로 제출한 행위에는 고발 대신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의결서에 따르면 KPIC는 2023년 7월 5일 스파크랩파트너스가 새로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 33만3333주(지분율 6.67%)를 약 5억원에 취득했다. 스파크랩파트너스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 그룹의 VC다. 공정위는 이 회사를 기타 금융투자업을 영위하는 금융회사로 판단했다.
공정거래법은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가 국내 금융·보험회사 주식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지주회사로 전환할 당시 이미 보유하던 주식에만 2년의 유예기간을 준다. KPIC는 2013년 12월 지주회사로 전환했고, 이 지분은 그로부터 10년 뒤 새로 취득했다. 유예 대상이 아니다.
KPIC는 2024년 지주회사 사업내용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소유주식명세서에 이 지분을 적지 않았다. 공정위는 이를 허위 보고로 판단했다.
과징금은 위반액 5억원에 부과기준율 8%를 적용한 약 4000만원에서 출발했다. 심의 협조와 약식심의 결과 수락으로 각각 10%씩 감경돼 최종 3100만원으로 정해졌다.
허위 보고는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규정만 있는 위반이다. 공정위가 택할 수 있는 조치는 고발 아니면 경고였고, 공정위는 경고를 택했다.
공정위는 '기업집단 관련 신고 및 자료제출의무 위반행위에 대한 고발지침'에 따라 KPIC의 인식가능성과 위반의 중대성을 모두 '상당'으로 평가했다. 현행 지침은 인식가능성이 '현저'하거나, 인식가능성 '상당'에 중대성 '현저'일 때 원칙적으로 고발한다. 둘 다 '상당'이면 고발 대상이 아니다.
공정위는 KPIC의 지분율이 6.67%에 그치고 지배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어 금산분리 원칙이 실질적으로 훼손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주식을 고의로 누락할 경제적 동기나 유인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KPIC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 2024년 말 지주회사에서 제외된 점도 함께 고려했다.
이 판단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공정위 스스로 보고서 누락과 금산분리 위반이 "병행하여" 이뤄졌다고 적었다. 보고서에 지분을 적었다면 위반 사실이 곧바로 드러났을 것이다. 공정위는 KPIC가 "직접 소유하고 있던 주식"을 누락했다는 점을 인식가능성 판단 근거로 들었지만, 결론은 '현저'가 아닌 '상당'에 그쳤다.
공정위는 지난 8월 이 고발지침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은 인식가능성과 중대성이 모두 '상당'인 경우도 원칙적 고발 대상에 포함했다. 개정안은 아직 시행 전이어서 이번 사건에는 현행 기준이 적용됐다.
대한유화 계열은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기준(자산 5조원)에 못 미친다.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면 총수 일가 사익편취 금지 규정과 각종 공시 의무가 적용되지만, 대한유화 계열은 이 규제를 받지 않는다. KPIC의 연결 기준 자산총계는 2025년 말 2조8158억원이다.
KPIC는 이순규 대한유화 회장이 지분 약 89%를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다. 대한유화 지분 32.63%를 가진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대한유화 제품을 사들여 해외에 파는 무역업이 주력이다. KPIC의 2025년 대한유화 상품 매입액은 1조5380억원이다. 대한유화와의 거래가 매출 대부분을 차지해 '통행세' 논란이 이어져 왔지만, 사익편취 규제 대상은 아니다.
KPIC가 2025년 말까지 스파크랩파트너스 지분을 처분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KPIC의 2025년 감사보고서에는 2025년 말 기준으로 비상장주식 4억9999만9500원이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으로 남아 있다. 의결서상 장부가액과 원 단위까지 같다.
KPIC는 2024년 12월 31일 지주비율(자산총액 중 자회사 주식가액 비중)이 50%에 못 미쳐 지주회사에서 제외됐다. 지주회사가 아니면 금융회사 주식을 보유해도 위법이 아니다. 공정위의 시정명령도 주식 처분명령이 아니다. 다시 지주회사가 될 경우 같은 행위를 하지 말라는 재발방지 명령이다. 공정위는 2025년 말 지주비율 등을 근거로 KPIC가 장래에 다시 지주회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지주회사에서 빠진 시점은 오너 3세 회사에 대한 자금 대여가 급증한 시기와 겹친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KPIC는 2024년 에이원상사에 619억9000만원을 빌려주고 425억5000만원을 돌려받았다. 대여금 잔액은 2023년 말 76억원에서 2024년 말 272억원으로 늘었다. 에이원상사는 이 회장의 아들로 알려진 이교웅 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감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지주비율을 계산하면 2023년 말 53.3%에서 2024년 말 49.3%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늘어난 자산 337억원 가운데 약 195억원이 에이원상사 대여금 증가분이다. 대여금이 2025년 말 71억원으로 줄자 지주비율은 52.4%로 다시 50%를 넘었다.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사유로 든 지주회사 제외가 3세 회사 대여금 증감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KPIC는 같은 해인 2023년 블록엑스 합자조합에도 50억원을 출자했다. 이 지분에는 2025년 22억8000만원의 손상차손이 반영됐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