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윤 기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의 신원정보를 유출할 경우 실제 행위자뿐 아니라 해당 업무를 수행한 법인에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진보당 손솔 국회의원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손 의원은 개정안을 이른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정보 유출 기업 처벌법’으로 명명했다.
이번 개정안은 최근 불법촬영물 피해자들이 플랫폼에 제출한 삭제 요청 정보가 외부에 공개되면서 2차 피해 우려가 제기된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손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9월 구글이 불법촬영물 피해자들의 삭제 요청 정보를 미국의 협업 연구기관에 제공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개인정보가 외부 사이트에 공개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공개된 정보에는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 직장, 학교, 휴대전화 번호를 비롯해 피해 사실과 삭제를 요청한 내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불법촬영물의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피해자 스스로 제출한 삭제 요청 정보가 오히려 신원 노출과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통로가 됐다는 지적이다.

사건이 알려진 이후 정부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와 지원기관 관련 정보에 대해 긴급 차단 조치에 나섰다. 성평등가족부는 성폭력처벌법과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등의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정보 제공 규모와 항목, 제공 기간 등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 의원실은 과거에도 유사한 문제가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2020년과 2021년 구글 고객센터 등에 불법촬영물 삭제를 요청한 피해자들이 연구기관 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이 공개됐다며 삭제와 비식별 처리를 요구한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피해자가 구글에 제출한 영상 삭제 요청서를 외주업체가 검토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알려지면서 피해자 개인정보 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책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피해 영상 삭제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이름과 이메일, 연락처, 피해 영상 주소 등 민감한 정보를 플랫폼에 제출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정보가 적절하게 보호되지 않을 경우 불법촬영물의 재유포와 별개로 피해자의 신원과 일상생활까지 위협받는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손 의원은 현행법상 피해자 신원정보를 공개한 개인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지만 해당 행위가 기업의 업무 과정에서 발생했을 경우 법인에 직접 형사책임을 묻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24조 제2항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주소·성명·직업·학교 등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법 제51조의 양벌규정 적용 대상에는 제24조 제2항 위반행위가 포함돼 있지 않아 기업의 대표자나 대리인, 사용인, 종업원이 업무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원정보를 공개하더라도 법인에 형사책임을 묻는 데 제도적 공백이 있다는 게 손 의원 측 설명이다.
개정안은 이 같은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성폭력처벌법 제51조의 양벌규정 적용 대상에 제24조 제2항 위반행위를 추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법인의 대표자나 대리인, 사용인 또는 종업원이 법인의 업무와 관련해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의 신원정보를 공개할 경우 실제 행위자뿐 아니라 해당 법인에도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현행 양벌규정 체계에 따라 법인이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다한 경우에는 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공포 즉시 시행하도록 했다.
손 의원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영상을 지워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곳에서 오히려 이름과 학교, 전화번호가 공개됐다면 심각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피해자 정보를 대규모로 처리하는 글로벌 플랫폼일수록 그에 상응하는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은 피해자 신상정보 보호를 기업의 선의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자는 취지”라며 “정부도 정확한 피해 규모와 2차 유포 여부를 조사하고 피해자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수원=이윤 기자(uno2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