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권서아 기자] 내년 고대역폭메모리(HBM) 가격 협상이 이달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삼성전자가 가격과 출하량을 동시에 끌어올리며 시장 선두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범용 D램 가격 상승으로 HBM 공급사의 협상력이 커진 데다 삼성전자가 생산능력을 확대하면서 내년에는 출하량과 매출 모두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손인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6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 2026' 반도체 산업 전망 세션에서 "HBM 가격 협상이 시장 예상보다 훨씬 잘 되고 있고 10월 정도가 협상이 마무리되는 기간"이라며 "특히 삼성전자가 가격 상승을 잘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량 기준으로 보든 매출 기준으로 보든 내년부터 삼성전자가 HBM 시장 1등이 되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내년 HBM 가격 121%↑…삼성이 협상력 부각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 HBM 혼합 평균판매가격(ASP)을 기가비트(Gb)당 3.84달러로 전망했다. 올해 1.74달러보다 121% 높은 수준이다. 직전 세대 제품인 HBM3E(5세대)는 2.3~2.5달러, 현재 세대인 HBM4(6세대)는 3~5달러, 다음 세대인 HBM4E(7세대)는 5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손 연구원은 기존 증권가에서는 내년 HBM4 평균가격을 3.5달러 수준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협상은 이보다 강하다고 봤다. 삼성전자의 HBM4 계약 가격은 4달러 안팎에서 4달러 후반 수준까지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도 일부 고객사와 HBM 가격 재협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경쟁사보다 낮게 논의됐던 HBM4 일부 물량은 3달러 초반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는 현재 협상 과정에서 거론되는 수준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확정한 공식 가격은 아니다.
범용 D램 가격 상승도 HBM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두 제품이 같은 D램 생산능력을 나눠 쓰는 만큼 범용 제품의 수익성이 높아지면 HBM도 그에 맞는 가격을 받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격뿐 아니라 물량에서도 삼성전자의 반등이 예상됐다. 유진투자증권이 인용한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HBM 출하 점유율은 올해 32%에서 내년 40%로 높아질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47%에서 39%, 마이크론은 20%에서 21%로 예상했다.
삼성 파운드리, 내년 4분기 흑자 전망
삼성전자 내 반도체를 맡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메모리 사업부가 실적을 끌고 있지만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부는 아직 적자다. 손 연구원은 삼성 파운드리의 흑자 전환 시점을 내년 4분기로 예상했다.
매출은 올해 4분기부터 늘어날 것으로 봤다. 테슬라의 차세대 AI 칩 AI5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2700과 테슬라 AI6가 더해지고, 2028년부터는 미국 반도체 기업 AMD 차세대 제품 물량도 반영될 수 있어서다.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는 AI 반도체 주문이 급증하면서 선단공정 생산능력이 빠듯하다. 손 연구원은 "TSMC 캐파(생산능력)가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과 삼성 쪽으로 물량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팹(공장)은 AI 반도체 물량 확대의 핵심 거점이다. 테슬라 AI5와 후속 AI6 생산도 삼성전자가 맡는다. 엔비디아가 지난해 우회 인수한 AI 반도체 기업 그록의 언어처리장치(LPU) 등 AI 추론용 반도체 물량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HBM5엔 2나노 이하…하이닉스는 인텔 가능성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쌓고 가장 아래에 신호와 데이터를 처리하는 '베이스다이'를 넣는다. SK하이닉스는 HBM3E까지 베이스다이를 자체 공정으로 만들었지만 HBM4부터는 TSMC의 첨단 로직 공정을 활용하고 있다.

손 연구원은 HBM5부터 2나노 이하 선단공정 활용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봤다. 그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TSMC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텔 베이스다이도 함께 활용하는 그림이 될 것"이라며 인텔 오하이오 팹 활용 가능성도 언급했다. 다만 SK하이닉스는 관련 협력설에 대해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모두 갖춘 만큼 HBM용 D램부터 베이스다이까지 한 회사 안에서 대응할 수 있다. 손 연구원은 HBM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이 같은 턴키 경쟁력이 부각될 것으로 봤다.
eSSD·테라팹에 소부장도 기회
메모리 증설이 이어지면서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도 수혜가 예상됐다. 손 연구원은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수요가 강하다며 SSD 컨트롤러 업체 파두를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꼽았다. 테스·브이엠·예스티와 테스트 부품업체 ISC 등도 언급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가 추진하는 초대형 반도체 생산 프로젝트 '테라팹'도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봤다.
손 연구원은 현재 골조 공사가 진행 중이며 내년 1분기부터 장비가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초기에는 인텔 팹을 '마더 팹'으로 삼아 기존 공정과 장비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다만 테슬라가 로직(연산) 반도체와 메모리를 모두 자체 생산하기는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장기적으로는 인텔이나 TSMC 등 기존 반도체 업체와 협력하는 방식이 현실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권서아 기자(seoahkw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