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홍성효 기자]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이상을 수용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유연접속을 활용한 전력망 혁신에 나서면서 국내 전력기기 업체의 사업 기회도 넓어질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기존 전력망의 활용도를 높이는 ESS와 전력변환장치(PCS), 에너지관리시스템(EMS) 수요가 먼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중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실제 건설되면 변압기와 배전반, 차단기 등 송·배전기기 수요도 뒤따를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제시한 전력망 수용능력 확대분이 모두 신규 설비 발주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접속권 회수와 계통 운영기준 변경 등 제도 개선 효과도 포함돼 있어 실제 업체 수주는 ESS 구축 규모와 전력망 보강 계획, 개별 사업의 발주 시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9일 ‘전력망 혁신대책’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이상을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전력망 체계를 개편하기로 했다.
재생에너지 수용능력은 송전단 기준 현재 119GW에서 2030년 171GW로 52GW 늘어난다. 배전단 기준으로는 84GW에서 110GW로 26GW 확대된다. 송전단과 배전단은 전력계통의 서로 다른 단계를 나타내는 지표인 만큼 두 수치를 합산해 전체 수용량으로 볼 수는 없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신규 송전선로가 완공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현재 운영 중인 전력망의 여유 용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계통 혼잡 시간에 발전량을 줄이는 조건으로 연결하는 유연접속을 확대하고 ESS를 설치해 재생에너지 출력이 집중되는 시간대의 전기를 저장한다.
전력망 접속권을 확보하고도 장기간 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발전사업자의 물량을 회수하고, 실제 사업 이행률을 반영해 접속 가능 용량을 다시 산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이행하는 데 2030년까지 5GW 이상의 ESS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는 배전망 ESS와 변전소 ESS 등 대책에 포함된 일부 물량으로, 전체 전력계통에 필요한 최종 ESS 규모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확정할 예정이다.
LS일렉트릭, PCS부터 구축·운영까지 사업 기회
LS일렉트릭은 국내외에서 ESS 사업을 수행하며 PCS 공급부터 설계·조달·시공(EPC), 운영·유지보수까지 사업 영역을 갖추고 있다.
PCS는 배터리에 저장되는 직류전력과 전력망에서 사용하는 교류전력을 서로 변환하는 장치다. ESS가 전력망과 연결돼 충전과 방전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설비다.
정부가 변전소와 배전망에 ESS를 확대하면 PCS와 EMS, 계통 연계 설비를 함께 공급할 수 있는 LS일렉트릭의 사업 기회도 늘어날 수 있다. 회사는 국내외 ESS 시장의 발주 규모와 수익성이 확보되면 관련 사업 참여와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LS일렉트릭은 최근 차세대 ESS용 PCS ‘G2’ 양산을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계통연계형 ESS의 EPC와 운영 사업을 수행하는 등 해외 실적도 쌓고 있다.
ESS는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낮이나 바람이 강한 시간대에 생산한 전기를 저장한 뒤 발전량이 줄거나 전력수요가 증가할 때 공급하면 출력제어를 줄이고 기존 전력망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LS일렉트릭은 ESS와 함께 배전 솔루션 수요도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규모 발전소에서 수요지까지 일방향으로 전력을 보내던 기존 구조와 달리 태양광 등 분산형 전원이 여러 지역에 설치되면 전력 흐름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배전기기와 운영 시스템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HD현대일렉트릭, 국내 첫 배전망 ESS 사업 참여

HD현대일렉트릭도 ESS와 전력기기를 함께 공급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다.
회사는 지난 7월 국내 첫 배전망 ESS 구축지원 사업자로 선정됐다. 재생에너지 IT 솔루션 기업 에너닷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전북 고창지역 3개 대상지에 총 12MW·60MWh 규모의 ESS를 구축한다.
해당 사업에는 자회사 HD현대플라스포가 생산하는 PCS가 적용된다. HD현대일렉트릭은 설비 구축에 더해 향후 20년간 운영·유지보수(O&M)와 가상발전소(VPP) 운영을 담당할 계획이다.
배전선로에 ESS를 직접 연결해 대규모 송·배전설비를 즉시 증설하지 않고도 재생에너지 수용능력을 높이는 사업이다. 정부가 이번 전력망 혁신대책에서 제시한 기존 망 효율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 10여년간 국내 약 150개 사업 현장에 총 1.6GWh 규모의 ESS를 구축했다.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는 업체는 아니지만 PCS와 전력기기, 설비 구축 및 운영 솔루션을 묶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회사 측은 국내 ESS 시장이 확대되면 신규 프로젝트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배터리 전용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구조가 아닌 만큼 대책의 효과는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보다 시스템 구축과 운영사업의 기회가 늘어나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ESS 다음은 변압기·배전기기…실제 발주가 관건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늘어나면 ESS뿐 아니라 변압기와 차단기, 배전반 등 전력기기 수요도 증가할 수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발전 가능 지역이 기존 수요처나 송전망에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발전량이 날씨에 따라 변하는 특성도 있어 전력을 안정적으로 보내고 계통을 보호할 설비가 필요하다.
HD현대일렉트릭은 초고압변압기와 배전변압기, 차단기, 배전반 등 송전부터 배전까지 전력기기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필요한 구간에서 전력망 보강이 이뤄지면 관련 제품 수요도 발생할 수 있다.

호남권에서는 지난 1일부터 계통관리변전소 지정이 해제됐다. 정부는 기존에 접속을 기다리던 사업자의 조기 접속 신청을 우선 지원하고 2027년 1월부터는 개편된 제도에 따라 신규 사업의 접속을 재개할 계획이다.
호남지역의 재생에너지 수용능력은 2030년까지 송전단 기준 37GW에서 64GW로, 배전단 기준 18GW에서 30GW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다만 수용능력이 커진다고 같은 규모의 변압기와 송전선로가 새로 발주되는 것은 아니다. 유연접속과 접속권 재배분, 발전원별 우선순위 조정 등을 통해 확보하는 용량도 상당 부분 포함된다.
또 ESS 사업도 설치 규모와 발주 방식, 장기 운영수익이 확정돼야 업체가 투자와 입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정부가 제시한 5GW 이상 물량의 구체적인 설치 지역과 시기, 사업비 분담 방식도 추가로 마련돼야 한다.
결국 전력기기 업계의 실적을 좌우하는 것은 정책상 수용능력 목표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ESS와 송·배전설비가 언제, 어떤 규모로 발주되느냐다. 단기적으로는 기존 망의 활용도를 높이는 ESS·PCS·운영 솔루션이, 중장기적으로는 실제 재생에너지 설비 증가에 따른 변압기·배전기기 수요가 성장 동력이 될 전망이다.
/홍성효 기자(shhong0820@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