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 위기 해법은 규제 혁신…"20세기 방송 프레임 벗어나야"

유료방송 위기 해법은 규제 혁신…"20세기 방송 프레임 벗어나야"

"콘텐츠만으로는 생태계 유지 어려워…플랫폼 정책 병행해야"
전문가들 "통합미디어법 기다리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규제부터 손봐야"

[아이뉴스24 서효빈 기자] 국내 유료방송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방송 중심 규제 체계에서 벗어나 시청각 미디어 중심으로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확산으로 미디어 시장의 경계가 무너진 만큼 유료방송을 단순 콘텐츠 유통사업자가 아닌 국내 미디어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방송학회는 30일 '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와 규제 혁신'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유료방송 산업의 위기와 규제 개선 방안을 이같이 논의했다.

홍종윤 서울대 교수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세미나 '지속 가능한 미디어 생태계와 규제 혁신'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서효빈 기자]

"유료방송은 기간 미디어 플랫폼…20세기 방송 프레임 벗어나야"

홍종윤 서울대 교수는 국내 방송 규제가 여전히 과거 매체별 규제 체계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블TV와 위성방송, IPTV가 잇따라 등장하는 과정에서 각 사업자에 서로 다른 법과 규제가 적용됐고 이 구조가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2016년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을 기점으로 국내 미디어 시장이 글로벌 경쟁 체제로 재편됐다고 봤다. 홍 교수는 "이제 국내 시장만 따로 떼어 보기 어렵다. 국내 사업자들도 글로벌 시장 안에서 해외 사업자들과 함께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장 변화에도 규제 체계가 과거 방송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TV와 주문형비디오(VOD), 비디오공유플랫폼(VSP) 등을 서비스 성격에 따라 구분하는 수평적 규제 체계로 전환했지만 국내에서는 방송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을 중심으로 한 체계가 유지되고 있다.

홍 교수는 "국내 미디어 규제는 여전히 20세기 방송 프레임에 갇혀 있다"며 "방송 중심 규제에서 벗어나 시청각 미디어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이 같은 규제 전환과 함께 유료방송의 정책적 위상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상파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홈쇼핑 등 방송 생태계 전반의 콘텐츠 유통과 대가 거래가 유료방송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2024년 기준 지상파 전체 방송사업매출 가운데 13%가 유료방송에서 발생한다. PP까지 포함하면 비중은 21.7%다. 홈쇼핑 PP도 유료방송을 통해 약 3조4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약 2조4000억원을 송출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다.

홍 교수는 "유료방송은 단순한 콘텐츠 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간 미디어 플랫폼'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도 유료방송의 역할을 콘텐츠 산업과 분리해 볼 수 없다고 봤다. 유료방송으로 유입되는 재원이 줄면 콘텐츠 제작과 유통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도 약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 소장은 "플랫폼 생태계가 무너지면 콘텐츠 생태계의 기초 체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유료방송은 K-콘텐츠와 K-컬처를 지탱하는 기반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 총론만 반복…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꿔야"

이날 전문가 토론에서는 규제 완화의 구체적인 방식과 우선순위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곽규태 순천향대 교수는 유료방송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모든 사업자의 생존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시장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업자에게는 경쟁 여건을 만들어주는 한편 경쟁력을 상실한 사업자가 시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경쟁력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사업자에게는 규제를 완화하고 싸울 의지나 역량이 없는 사업자가 시장에서 엑시트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동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박사는 시장 악화 속도에 비해 제도 개선이 지나치게 더디다고 진단했다. 현재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에서 유료방송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해관계 조정 등의 문제로 개선 폭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곽 박사는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며 "3~4년 뒤에는 규제 개선을 해서가 아니라 규제 개선을 할 대상이 없어져 이런 토론회 자체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건훈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통합미디어법 등 대규모 법제 개편과 별개로 단기간에 손댈 수 있는 규제를 먼저 개선하는 '패스트트랙'을 제안했다. 법 개정 없이 고시나 승인제도 또는 행정 운영 변경만으로 가능한 과제를 우선 추진하자는 것이다.

김 수석전문위원은 "요금 신고 관행이나 재허가 이행 점검 같은 것은 1년 안에도 바꿀 가능성이 있다"며 "요금과 상품, 채널, 광고, 커머스 규제를 묶어 제한적으로 실증한 뒤 데이터를 토대로 확대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용희 선문대 교수는 규제의 필요성과 효과 자체를 주기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시장 구조를 전제로 도입된 규제가 시장 환경이 달라진 뒤에도 관성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진흥 정책에는 일몰제가 있는데 규제에는 일몰제가 없다"며 "규제가 목표를 달성했다면 일몰시키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종합토론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는 "유료방송 산업의 가입자 감소와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방송통신 발전기금과 전파사용료 등 정부에 직접 납부하는 비용도 변화된 시장환경을 반영해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효빈 기자(x40805@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