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문채린 기자] 오랜만에 추석 특선 화제작을 개봉 첫날 관람했다. 10년 전만 해도 일상이었던 부지런함을 타인의 손을 빌려 흉내 내는 처지라 낯뜨겁기도 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겠다.

아무리 <외출>이나 <덕혜옹주> 같은 후속작이 있었다 한들, 다작을 하지 않는 허진호 감독에게는 여전히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가진 특유의 담백한 멜로적 자장이 강하게 남아 있다. 10년 전 <덕혜옹주>로 역사적 인물을 다루며 500만 관객을 돌파했음에도, 관객들에게 그는 여전히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연출가로 인식되어 있다.
그런 그가 2026년 추석,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들고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공개된 <암살자들>은 어떤 영화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의성도, 설득력도 부족하다.
영화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라는 확실한 공분 지점에서 출발해 관객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택시운전사> 역시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되는 민초들을 바로 목도하게 하며 분노를 유발한다. 그러나 <암살자들>에는 애초부터 그런 선악의 대립 구조나 감정 이입의 요소가 결핍되어 있다. 1974년 8·15 사건은 선과 악, 명확한 '빌런'을 특정하고 덤벼들기엔 대단히 애매하고 한계가 분명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선악의 구도가 흐릿하다 보니 관객은 형사(유해진 분)에게 일체감을 느끼기도, 기자(박해일 분)를 마냥 응원하기도 어렵다. 극 중 문태광으로 지칭되는 문세광(박정민 분)에게는 더더욱 감정을 줄 수 없다. 어처구니없이 희생된 육영수 여사나 경호실의 총구에 목숨을 잃은 여고생 등 안타까운 비극이 존재할 뿐, 이를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청와대의 자작극이라 강변하기엔 제시하는 근거가 너무나 초라하다.

그럼에도 허진호 감독은 대단치 않은 몸부림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신파적 눈물을 쥐어짜려 한다.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을 핍박하는 정권을 악마화하여 분노를 강요하려 하지만, 주장하는 진실 자체가 모호하고 자신 없다 보니 영화의 화력은 이미 죽어 있다.
만약 감독이 진정으로 1974년의 그 사건을 청와대의 자작극이라 확신했다면, <암살자들>처럼 주변부만 맴돌 것이 아니라 35년 전 올리버 스톤 감독이 영화 에서 보여준 수준의 몰아치는 연출을 참고했어야 한다. 문세광의 네 번째 총성은 빗나갔고 정작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총탄은 제3의 인물에게서 나왔다는 음모론을 정교하고 빠른 편집으로 밀어붙였어야 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설득력 있는 논픽션 스릴러 연출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마지막에는 실제 기록 필름이 짧게 지나간다. 기록에 따르면, 저격당한 육영수 여사를 경호원들이 안고 나갈 때 여사의 벗겨진 고무신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두 손으로 주워 들고 따라가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물론 그 누구도 이 슬픈 역사의 단면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결국 폭넓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음모론에 힘을 실으려면 영화의 만듦새라도 긴박했어야 한다. 창작진 스스로가 믿고 싶어 하는 진실에 다가갈 용기가 없어 주춤거렸고, 도처에 떠도는 의문점을 재탕하며 변죽만 울리다 끝났다. 기꺼이 선동될 준비가 된 관객마저 만족시키지 못한,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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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채린 기자(crmo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