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지난 23일 개봉해 많은 관객들이 보고 있는 영화 '암살자(들)’이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이면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 행사도중 박정희 대통령을 향한 총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총상을 입고 사망한 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하는 사극은 얼마든지 권장된다. 극적 재미와 갈등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

‘암살자(들)’ 제작진도 “당시 사건과 관련해 공개된 기록과 자료, 서적, 다큐멘터리 등을 폭넓게 조사했으며, 이러한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라며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제작진은 ‘암살자(들)’이 역사적 사실(fact)과 만들어낸 이야기(fiction)를 합친 ‘팩션’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팩션이라 해도 사극에서 역사적 사실과 달라서는 안 되는 선이란 게 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는 역사적 사실을 상상력이 너무 앞서나가는 경우도 위험하다. SBS 100부작 사극 ‘연개소문’(2006~2007)에서 안시성 전투를 연개소문이 지휘했다고 한 것은 무리가 따랐고, 연개소문이 고구려가 멸망하는 순간까지 살아있었던 것 또한 역사왜곡이다.
오랜 기간 사극을 만들어온 이병훈 PD는 MBC 사극 ‘이산’(2007~2008)에서 반전 효과를 노리기 위해 시도한 정순왕후의 쿠데타를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정순왕후가 정조 시기 쿠데타의 주모자라니.
너무 먼 과거와 비교하면 실감이 덜 날 수 있으니까, ‘암살자(들)’의 제작사가 만들었던 ‘서울의 봄’과 비교해봐도 무리수가 나온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서울이 봄’(2023)은 불과 40여년전의 우리 역사지만 어느 정도 정리가 돼 있다.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이 군대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태신(정우성) 수경사령관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반란군에게 체포된다.
김성수 감독은 반란군과 진압군 등 다양한 군상들의 욕망의 발현과 충돌을 실감나게 들춰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만약 영화속에서 연상되는 실제인물이 “나 저때 저러지 않았는데”라고 말한다고 해서 역사왜곡이 되는 건 아니다.
이에 비해 ‘암살자(들)’은 범인인 문세광(영화에서는 문태광) 외에는 별로 아는 사실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육영수 여사를 사망하게 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필자는 그 때가 중학교 3학년이라 조금 기억은 있지만, 검열이 심했던 시대의 신문에는 정부 발표만 실는 등 제대로 된 보도가 없었고, 뒷북 뉴스만 나왔다. 당시 수사 당국은 북한과 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문세광의 단독 범행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6발의 총성은 제대로 규명되지도 못했다.
천장을 뚫은 총알은 그렇다 치더라도 육 여사 머리를 향한 총알이 공개되지도 않았던 건 문제다. 오래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총탄 소리와 탄도 분석을 통해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 아니라 현장 경호원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밝혀진 핵심부분이 아주 미미한 상태에서 상상을 덧붙이다 보니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헷갈릴 정도다. 사라진 ‘총탄 두 발’이 다른 암살자의 존재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건 시사다큐에서 실마리를 제공했으니, 극영화에서는 시도해볼만하다.
실제로 당시 서울경찰청 감시계장이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탄두를 회수하면 누가 쏜 것인지 알 수 있는데, 청와대 경호실에서 탄두를 쓸어가 기회를 놓쳤다”면서 “두 발이 범인의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중앙정보부가 사건의 배후에 있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게 만든 게 결정적인 논란거리를 제공했으며, 논란은 정치권으로 확대됐다. 영화에서는 청와대 경호실장(엄태웅)이 비표도 없는 문태광(박정민)을 경축 행사장에 들여보내도록 강압적으로 지시한다.
제작진은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라고 이미 설명했지만, ‘픽션’ 사이 사이에 당시 뉴스나 다큐 화면이 등장해 오해를 키울 수도 있다.
'암살자(들)'을 형사 박철구(유해진)와 동성일보 사회부장 김재환(박해일), 신입 기자 한영일(이민호)이 각자의 위치에서 사건의 숨겨진 배후를 밝히려는 미스터리 추적극으로 만든 건 좋은 영화적 장치다. 한영일의 대사인 “기자는 원래 멋있는 건데, 인간이 이상해져”는 충분히 공감할만하다. 이에 대한 추적보도를 못하게 하자 김재환 사회부장이 주동이 되어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번지게 된 것은 생략과 비약이 따르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암살자(들)’ 첫 장면에서는 당시 시대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박정희 정권이 1972년 10월 유신으로 영구집권 계획이 실패하자, 김대중을 일본으로 납치했는데, 이 마저도 실패하면서 긴급조치 등을 발동했다. 일본은 김대중 사건 수사중지에 유감을 발표하는등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에 있었다.
‘암살자(들)’의 주요 사건이 이런 상황 논리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전개됐으면 역사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일외교문제 등 당시 시대적 배경과 ‘한일경협’ 등을 연상시킬 수 있게 했지만, 당시 시대상황 설명과 메인사건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듯 했다.
결국 ‘암살자(들)’ 논란은 표현의 자유와 영화적 상상력의 문제다. 역사적 사실을 극화할 때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은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해석과 관점의 시각에서는 상상력의 커트라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번 논란이 잘 보여주고 있다.
/서병기 기자(wp@inews24.com)